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5-23 07:00:00
■기사가 뽑은 최고 맛집 ‘동백스타’
2025 택슐랭 가이드는 경력 10년 이상 베테랑 택시 기사 248명이 추천한 원도심 식당 500여 곳 가운데 상위 28곳을 선정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고급 레스토랑 위주여서 예약이나 방문이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에 택슐랭 가이드는 현지 맛집 전문가가 소개하는 가성비와 접근성이 좋은 맛집 리스트라고 하겠다. 또한 돼지국밥이나 밀면, 복국, 생선회 같은 부산의 향토 음식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요리를 경험하고자 하는 미식가들에게는 미쉐린 가이드가 유용하겠지만 부산사람들이 좋아하는 맛과 다양한 가격대의 맛집 정보가 필요하다면 택슐랭 가이드가 제격이라고 하겠다. 택슐랭은 추천 수와 분류 기준에 따라 4개의 인증마크를 부여했다. 택시기사들이 선택한 최고의 맛집 7곳에는 ‘동백스타’, 시간을 내어 방문해도 좋을 만큼 매력적인 경치와 분위기를 갖춘 맛집은 ‘바퀴구르망’이다. 술과 함께 즐기기 좋은 반주 맛집에는 ‘술맛도심’, 혼자서도 훌륭한 미식을 즐길 수 있는 맛집은 ‘혼밥식당’으로 구분했다.
택슐랭 가이드 최고의 맛집인 동백스타에는 도날드, 막둥이네 양곱창, 맛나기사식당, 신발원, 원조일미기사식당, 제주복국, 초량갈비 등 7곳이 뽑혔다. 이들에게는 지난 16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택슐랭 오픈 세레머니에서 조선 시대 궁중 요리사인 대령숙수가 사용했던 칼을 현대 공법으로 제작해서 선사했다. 다음은 동백스타 리스트와 추천 메뉴, 추천 이유 등이다.
1.도날드(한식)=즉석떡볶이 전문점으로 다양한 사리를 저렴하게 추가해서 먹을 수 있다. 식사 후 뻥튀기와 아이스크림을 함께 즐기는 ‘뻥크림’도 별미다. 추천 메뉴는 즉석떡볶이(3000원)와 뻥크림(1500원). 쫄깃쫄깃 달달해 중독성이 있는 맛이다. 주문 시 오징어를 꼭 추가하라는 조언이다. 부산 영도구 꿈나무길 267 1층.
2.막둥이네 양곱창(한식)=신선한 재료와 깔끔한 조리 과정으로 바삭하고 쫄깃한 양곱창의 진한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추천 메뉴는 양곱창(1접시 기준 5만 원). 친절하며 가성비가 좋고 맛있다. 부산 중구 자갈치로59번길 5-20 1층.
3.맛나기사식당(한식)=30년 전통 기사들의 단골 맛집이다. 진한 국물에 푸짐한 속살, 속까지 시원하게 풀리는 대구탕이 시그니처 메뉴다. 추천 메뉴 역시 대구탕(9000원). 1인 1냄비로 각자의 입맛에 맞게 먹을 수 있고 국물이 깊고 시원하다. 부산 서구 대영로74번길 58.
4.신발원(중식)=1951년 작은 노포로 시작해 70년 전통의 만두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얇고 쫄깃한 만두피와 엄선된 재료가 어우러져 풍미와 육즙이 대단하다. 추천 메뉴는 군만두(5300원), 찐만두(4500원), 새우만두(6500원). 만두피가 바삭하고 짭조름해서 맛있고 포장해도 좋다. 부산 동구 대영로243번길 62.
5.원조일미기사식당=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기사식당으로 저렴한 가격이지만 질 좋은 재료로 손님 입맛에 맞게 맞춰서 요리한다. 추천 메뉴는 선지국수(5000원)와 비빔밥(5000원). 우선 양이 많고, 국물을 한 입 마시면 속이 시원해진다. 부산 중구 흑교로 16-1.
6.제주복국=다양한 복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은은한 미나리 향과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에 이리가 뽀얗게 풀어져 있다. 숙취 해소 메뉴로 강력 추천한다. 추천 메뉴는 참복지리탕(2만 2000원).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생각이 난다. 부산 영도구 절영로 481.
7.초량갈비=초량갈비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50년 전통 갈비 전문점이다. 잘 밴 양념과 부드러우면서도 육즙이 풍부한 숯불갈비로 노포 감성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추천 메뉴는 양념돼지갈비(1인분 1만 5000원)와 생갈비(1인분 1만 1000원). 좋은 고기를 써서 육질이 부드럽고, 식사용 된장국수가 맛있다. 부산 동구 초량로 17-7.
이들 동백스타를 포함해 중·동·서·영도구 별로 각각 7곳씩 리스트에 올랐다. 중구에서는 개미집 본점, 돌고래 순두부, 막둥이네 양곱창, 물꽁식당, 원조일미기사식당, 이재모피자 본점, 할매복국이 선정됐다. 동구에는 고관함박, 마가만두, 부광숯불갈비, 신발원, 청기와식당, 초량갈비, 초량돼지국밥이 포함됐다. 서구에는 골목 손칼국수, 꽃마을지리산어탕, 맛나기사식당, 영남냉면밀면, 옛날오막집, 왕밀면냉면 본점, 흑산도횟집이 올랐다. 영도구에는 그라치에, 도날드, 멍텅구리, 영도미학, 왔다식당, 제주복국, 희열이 선정됐다.
■부산의 운전 극강 코스 소개도
택슐랭 가이드는 맛집 외에도 부산에서 열리는 축제를 월별로 소개하고 있다. 일 년 내내 열리는 축제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축제의 도시 부산에 놀러 가고 싶어진다. 부산축제조직위가 만든 가이드북답다. 택슐랭 가이드에는 부산의 운전 난이도 극강 코스라는 별도의 에피소드도 실렸다. 첫 번째가 ‘산복도로 드리프트’ 구간이다. 산이 많은 부산의 산복도로는 좁고 경사가 가팔라 운전 난이도가 최상급이다.
특히 시내버스가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모습은 마치 자동차 경주의 고난도 기술인 드리프트를 떠올리게 해 ‘산복도로 드리프트’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 급경사와 급커브를 오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주행, 그 밑으로 펼쳐지는 꿈같은 야경은 부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풍경이다.
두 번째는 누가 먼저 들어가는지를 두고 눈치 싸움이 치열한 동서고가로이다. 동서고가로 진입 구간에서는 운전 기술보다 눈치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서로가 흐름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섞이는 순간, 그 복잡한 흐름 속에서 부산의 독특한 리듬이 느껴진다. 빠르지만 급하지 않고 복잡하지만 어딘가 여유로운 도시가 부산이다.
■동백스타에 빛나는 고관함박
왜? 택슐랭이 지난해 동백스타로 선정된 고관함박에 미쉐린 스타 셰프를 연결해 신메뉴를 개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의아했다.
사실 고관함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첫째, 항상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 둘째, 그야말로 대문짝만한 간판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폰트 쓰는 함박스테이크집, 잘하면 해운대에서도 간판이 보이겠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압도적인 크기의 간판 앞에 맨날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기사들 눈에 띄고, 입에 오르지 않을 수가 없겠다. 막상 기다려 보면 회전율이 높아 생각보다 대기시간이 길지는 않다.
황은영 대표는 줄 서는 맛집의 비결을 묻자, 처음부터 그랬다고 시크하게 대답했다. 2019년 영업 첫날 하루치 준비한 것을 1시간만에 다 팔고, 다음날 더 준비했지만 점심시간에 끝나버리는 식이었다. 별도의 홍보나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손님들의 후기가 다 좋았다는 것이다.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을 요즘 찾아보기 힘든 점도 한몫했다. 함박스테이크라는 메뉴는 황 대표의 남편이 돼지고기 유통업을 하고 있어서 정한 것이라고 한다. 아내 가게에 납품하며 감히(?) 마진을 얼마나 붙일까. 가격 경쟁력이 여기서 나온다. 고관함박의 함박스테이크는 홈페이지를 통해 1분에 1개씩 불티나게 팔린단다.
램지 이규진 셰프와 협업으로 개발된 메뉴는 ‘택슐랭명란마라함박’이란 이름으로 지난 17일부터 판매 중이다. 두툼한 돼지고기 함박스테이크를 부산 특산물 명란이 들어간 마라 크림소스가 포근하게 감싼 모습이다. ‘되는 집안엔 가지 나무에 수박 열린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맛이 났다. 황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대전에는 성심당이 유명한데, 부산 동구 하면 고관함박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라고 당차게 말했다. 지난해 동백스타 고관함박은 택슐랭이 나은 최고의 스타였다.
■택슐랭, 어디까지 성장할까
‘로컬과 미식의 연결’이라는 기치 아래 미쉐린 셰프와 동백스타 식당을 중매해 새로운 시그니처 메뉴를 탄생시킨 스토리가 흥미롭다. 택슐랭에 참여한 택시기사가 맛집까지 안내하는 미식 택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택슐랭의 새로운 도전은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이다.
하지만 택슐랭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다. 부산원도심활성화축제의 일환으로 탄생했기에 원도심인 중·동·서·영도구 4개 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그렇다.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택시 기사들이 지역을 정해 두고 밥을 먹지는 않지만, 추천은 원도심 식당에 한정되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도심에 국한하면 택슐랭이 거듭될수록 밑천을 드러내고 중복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원도심이 아닌 다른 구에서도 택슐랭에 포함시켜 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고 있다.
대안은 둘 중 하나로 보인다. 택슐랭의 범위를 원도심 밖으로까지 확대하든지, 아니면 제2의 택슐랭 같은 로컬 맛집 가이드북이 새로 나오는 것이다. 택슐랭과 미쉐린이 밀고 당기는 부산 미식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궁금해진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