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단위로 뉴스·정보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거기에 ‘허위 왜곡 콘텐츠’도 횡행합니다. 어지럽고 어렵고 갑갑한 세상. 수천 년간 동양 최고 고전인 ‘주역’으로 한 주를 여는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주역을 시로 풀어낸 김재형 선생이 한 주의 ‘일용할 통찰’을 제시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4월 1일 만우절에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명 전환’ 종합 잡지 사상계가 재창간된 겁니다.
사상계는 1950~60년대 한국의 대표 잡지였습니다.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시민 의식 진화에 기여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폐간된 지 55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도 편집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사상계는 복간 창간호만 가지고 3000명의 독자를 모았고 모금 앱에서 3억 원의 기금을 모았습니다.
이런 일은 돈으로 되지 않고, 의욕으로 하는 게 아니고, 지식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 요소가 이어지고 시대정신과 통합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1일 재창간 2호가 발간되어서 시작할 때보다는 안정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을 이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주역의 46번째인 승괘(升卦)는 지풍승(地風升)으로 읽습니다. 상징은 땅속에서 자라는 나무 싹입니다(地中生木 升).
나무가 될 싹은 보기에는 여려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나무가 될 힘을 다 가지고 있어서 어느 시점이 되면 괄목할 성장을 하게 됩니다.
승괘 3효에 승허읍(升虛邑)이라는 상징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읽으면 ‘빈 마을에서 오른다’ 정도인데 내면화한 의미는 ‘빈틈을 찾아냈다’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종이 잡지는 안 될 것 같은데 빈틈이 있었습니다. 이런 빈틈을 찾아내는 건 삶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사상계를 재창간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이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사상계가 문명 전환의 큰 나무가 될 것을 알았습니다.
사상계는 어려운 잡지 시장의 상황을 감안해서 서점에 납품하지 않고 정기구독자한테만 판매합니다. 인연이 닿길 기도합니다.
象曰 地中生木 升 君子以 順德 積小以高大(상왈 지중생목 승 군자이 순덕 적소이고대).
땅속에서 나무의 싹이 움터 자라나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나는 삶의 과제를 순히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작은 성과를 성실히 쌓아 나무처럼 크고 높아진다.
3효. 九三 升虛邑(구삼 승허읍)
象曰 升虛邑 无所疑也(상왈 승허읍 무소의야)
텅 빈 마을을 오른다. 서로 믿고 도우며 의심하지 않는다.
빛살 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