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07-15 15:34:26
올 상반기 극장가는 어느 때보다 찬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상반기 ‘파묘’(1191만), ‘범죄도시4’(1150만) 등 두 편의 천만 영화가 연이어 등장하며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것과는 달리, 올해는 단 한 편도 관객 400만 명을 넘기지 못했다. 흥행의 전선이 무너지고, 거장 감독과 스타 배우도 통하지 않게 되면서 영화계는 다시 근본적인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관객 수만 봐도 위기는 분명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보면 올해 상반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야당’의 관객 수는 337만 명에 머물렀다. 올해 상반기 개봉작으로 범위를 넓혀도 관객 수 300만을 넘긴 작품은 톰 크루즈가 주연한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334만 명), 봉준호 감독의 복귀작 ‘미키 17’(301만 명) 등 단 세 편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라면 ‘중박’에 해당하는 성적이 이제는 흥행작으로 분류될 만큼 시장 자체가 축소됐다. 또 다른 개봉작인 ‘히트맨2’(254만 명), ‘승부’(214만 명), ‘검은 수녀들’(167만 명) 등은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기거나 근접했지만, 산업 전반의 회복세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 상반기 성적표가 지난해보다도 저조해 영화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제작사 대표는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한국영화의 미래라는 말이 존재할까 싶다”며 “신규 작품 투자도 메마른 상황이라 회복이 힘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말이 계속 나왔지만, 지금은 위기를 넘어서 고사 직전이라 상황을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국영화 연간 총 관객 수는 7147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평균(1억 1323만 명)의 63.1% 수준에 불과했다. 올해는 상반기 최고 흥행작 관객 수가 지난해 상반기보다 절반 이상 줄어들면서 최종 관객 수가 더 적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이 위축되자 영화 투자 수익률도 낮아졌다. 문제는 영화 수익률이 저조해지면서 투자사·배급사들이 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 기간 제작된 이른바 ‘창고 영화’까지 바닥을 드러내면서 투자, 제작, 개봉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로 손꼽히는 CJ ENM은 올 상반기 투자·배급 작품을 단 한 편도 내놓지 않았고, 하반기엔 임윤아, 안보현 주연의 ‘악마가 이사왔다’와 이병헌, 손예진 주연의 ‘어쩔수가없다’만 개봉할 예정이다. 내년에 촬영에 들어가는 작품도 ‘국제시장2’ ‘타짜4’ ‘교산’ ‘칼, 고두막한의 검’ 정도다. 이대로라면 당장 내년부터 스크린에 올릴만한 영화가 없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화 ‘공작’ ‘베를린’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을 만든 윤종빈 감독은 “한국이 유독 회복이 더딘 것 같다. 세계는 팬데믹 이전의 70~80%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한국은 아니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없으면 정말 극장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두 시간짜리 작품을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영화의 존재 이유는 극장이다”라고 했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생존을 위한 카드를 하나둘 꺼내 들었다. 업계 2·3위 사업자인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이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지난 5월 체결하고 위기 타파에 나섰다. 두 회사는 당시 “합병을 통해 영화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침체된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밝혔다. 1위 사업자인 CJ CGV 역시 자금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해 5월 무보증 사채를 발행한 데 이어, 오는 21일 또 한 차례 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극장 관객 수 회복이 더디고 콘텐츠 투자에 대한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대형 배급사조차 운영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실정이다. 이는 영화 산업 전반이 단순한 불황을 넘어 구조적인 유동성 위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기대작으로 꼽혔던 작품들이 생각보다 흥행하지 못하면서 극장 상황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며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을 넘어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체질 개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올 하반기 개봉작들에 마지막 희망을 건다. 여름 개봉작으로 안효섭·이민호 주연의 판타지 액션 ‘전지적 독자 시점’과 조정석 주연의 ‘좀비딸’ 등이 대기하고 있다. 이어 하반기엔 임윤아·안보현의 ‘악마가 이사왔다’ ‘정가네 목장’ ‘행복의 나라로’ 등도 개봉을 준비한다. 한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이제는 스타 캐스팅, IP, 대규모 제작비만으로는 흥행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재밌으면 보고, 잘 만들면 보는 시대라 개봉작들의 흥행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