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냉동 컨테이너서 농사 짓고 관광까지?!

푸드 스타일리스트 아내, 배 타던 남편
스마트팜 재배 송이 향 표고버섯 반해
냉동 컨테이너 농사 ‘도시농사꾼’ 시작
가성비 스마트팜 폴란드까지 수출 인기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7-18 09:00:00


‘도시농사꾼’ 전정욱 대표가 냉동 컨테이너에서 재배한 저온 표고버섯 은화고를 들어 보이고 있다. ‘도시농사꾼’ 전정욱 대표가 냉동 컨테이너에서 재배한 저온 표고버섯 은화고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런 곳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도시농사꾼’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니 주소가 부산 남구 용호동 용호별빛공원을 가리킨다. 용호별빛공원? 2019년에 러시아 선박이 광안대교를 들이받고 도주하다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당시 선장이 음주 운전을 했다. 그 뒤 부두 운영이 중단되고 남구가 용호부두 재개발 전까지 관리권을 위임받아 조성한 곳이 용호별빛공원이다. 2018년에 설립한 농업회사법인 ‘도시농사꾼’은 광안대교가 훤히 보이는 바닷가에 컨테이너 건물 16동으로 길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농사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여기서 어업이 아니라, 농업을 한다고?”

도시농사꾼은 체험관광 회사 ‘딜라잇비’까지 두고 있지만, 해상운송용 ISO 냉동 컨테이너를 활용해 만든 스마트팜 플랫폼 ‘큐브팜’ 제작과 스마트팜 운영이 본업이다. 일반 컨테이너에 비해 3배 이상 비싼 냉동 컨테이너는 온도에 민감한 신선식품을 운송하는 데 이용된다. 그래서 일반 컨테이너와는 달리 내부 온도를 -25°C에서 25°C까지 조절하는 냉각 시스템과 습도 조절 기능을 갖췄다. 컨테이너 안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생각만 바꾸면 다른 데 가서 이만큼 훌륭한 농업 시설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도시농사꾼은 푸드 스타일리스트였던 전정욱 대표와 기술 부문을 책임진 남편 현영섭 CTO가 호흡을 맞춰 회사 경영을 이끌고 있다. 음식에 조예가 깊은 전 대표가 어느 날 낯선 표고버섯을 맛본 게 발단이었다. 분명히 표고버섯인데 자연산 송이버섯의 향이 강하게 느껴졌고, 뜻밖에도 스마트팜에서 재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송이버섯은 양식이 되지 않는다. 송이버섯 향이 강한 표고버섯은 머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냉동 컨테이너를 활용해 농사를 짓자는 생각은 ‘30년 냉동 컨테이너 인생’ 현 씨에게서 나왔다. 충남 공주 출신의 현 씨는 어려서부터 지켜본 농사일이 아주 징글징글했다. 부산에 와서 해양대 기관공학과를 졸업하고 배를 탄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다. 상선에서 컨테이너를 주로 담당했던 그는 30대에 배에서 내린 후에는 냉동 컨테이너 관련 사업을 했다. 현 씨는 회사 직원들이 퇴직하고 나서 복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냉동 컨테이너를 농사에 접목할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용호동 바닷가에서 냉동 컨테이너에 농사를 짓다 보니 ‘농사와 바다’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진단다.


송이 향이 나는 저온 표고버섯 ‘은화고’. 송이 향이 나는 저온 표고버섯 ‘은화고’.

전 대표의 안내로 해상 운송에 사용하던 냉동 컨테이너 속으로 들어갔다. 스테인레스 재질의 냉동 컨테이너는 오래됐지만 녹슨 데가 어디 한 구석도 없었다. 한여름 땡볕에 있다 ‘냉동고’ 속에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없다 싶었다. 첫 번째 컨테이너에서는 로메인 같은 유럽 상추 등 엽채류를 키우고 있었다. 부산시장애인일자리통합센터와 협약을 맺어 장애인이 직접 씨앗을 심어 보고, 수확도 하는 체험 교육장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두 번째 컨테이너에서는 저온성 표고버섯 ‘은화고’를 재배 중이었다. 은화고는 고온에서 자라는 일반 표고버섯과 달리 밀폐된 공간에서 저온으로 자라 대가 굵다. 송이버섯처럼 은은한 향이 나고 육질이 단단해 고기와 비슷한 맛이 나는 점이 특징이다. 게다가 20일이면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빨리 자란다. 단열이 좋은 냉동 컨테이너에서 키워 수익을 내기에 최적의 작물인 셈이다. 토마토와 딸기는 물론이고 키우기 힘든 묘삼(苗蔘)을 비롯해 화훼 쪽으로는 장미나 ‘아나벨’ 같은 수국 등 적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새로운 작물 개발이 도시농사꾼의 당면 과제인 것 같다.

초록 초록한 냉동 컨테이너 속에 오래 있다 보니 한여름인데도 추워지기 시작했다. 냉동 컨테이너 내부는 여름에는 너무 시원하고, 겨울에는 외부에 비해 상당히 따뜻하다. 온도 제어는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하다. 한 달에 2주만 일하면 된다니, 농사를 한번이라도 지어본 사람이라면 너무 편해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 가끔 젊은층에선 “스마트폰이 농사 다 지어준다고 해놓고 왜 말이 다르냐”는 철없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도시농사꾼은 의도치 않게 B2C(기업이 개인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이나 서비스 판매)보다 B2B(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나 B2G(기업과 정부 간의 거래)가 많아지게 되었다고 했다. 경성대 새싹삼 연구단지, 부산과학기술대 실습단지,전북 고창 상하목장, 울산 테크노파크 스마트팜 단지, 동아대 생명자연과학대, 동원과학기술대 등에 큐브팜이 들어가 있다. 지난해에는 폴란드 푸드뱅크와 수출 협약을 맺고, 지난 2월에 큐브팜을 첫 수출했다.

유럽 국가인 폴란드로의 첫 수출은 도시농사꾼 큐브팜의 가격 경쟁력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스마트팜 및 빌딩 자동화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네덜란드 ‘프리바(PRIVA)’에 비해 초기 설치비가 훨씬 저렴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도시농사꾼의 40피트 냉동 컨테이너 판매 단가는 자동화 설비를 모두 포함해서 한 동당 5000만 원으로, 프리바의 3분의 1 수준이다. IT기술이 발달했고, 수출로 밥먹고 살지만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의 특성 덕분이다.

냉동 컨테이너 농사는 전기료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농업용 전기를 사용하고 양액 재배로 수돗물 사용량도 적다. 전기료에 물값까지 포함해도 한 달에 드는 비용은 10만~15만 원 선이다. 도시농사꾼이 키웠거나 수매한 은화고는 서원유통의 탑마트와 홈쇼핑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도시농사꾼’ 냉동 컨테이너에 들어와 체험을 하고 있다 . 외국인들이 ‘도시농사꾼’ 냉동 컨테이너에 들어와 체험을 하고 있다 .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도시 관광의 가능성이다. 도시농사꾼의 체험관광 회사 ‘딜라잇비’가 운영하는 체험 관광 코스는 내년까지 예약이 차 있다고 할 정도로 인기다. 특히 외국인들은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플러깅을 한 뒤 도시농사꾼에 와서 환경 교육을 듣고, 스마트팜에서 체험하고 직접 수확한 것을 들고 올라가 바비큐를 먹는 코스를 사랑한다. 오래된 냉동 컨테이너를 스마트팜으로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업사이클링(버려지는 제품이나 쓰레기에 디자인이나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제품으로 재탄생)’이고, 요즘 관심 많은 ESG 경영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도시농사꾼은 농업(1차산업)과 식품, 특산품 제조가공(2차산업) 및 유통·판매·문화·체험·관광 서비스(3차산업)와 연계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6차 산업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국내에 스마트팜 보급률이 아직 높지 않은 이유가 스마트팜을 주로 농촌에 설치한 뒤 농촌 체험 관광 식으로 진행되는 까닭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마트팜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사실 도시에 있는데 말이다. 도시농사꾼은 스마트팜을 농촌이 아니라 도시나 도시 근교에서 농촌 융복합 6차 산업으로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시농사꾼 큐브밤은 폴란드로 수출됐다. 사진은 폴란드 현지 언론사가 도시농사꾼 전정욱 대표를 취재하고 있다. 도시농사꾼 큐브밤은 폴란드로 수출됐다. 사진은 폴란드 현지 언론사가 도시농사꾼 전정욱 대표를 취재하고 있다.

현영섭 CTO는 “초창기에는 B2C를 시도했지만 어려웠다. 비닐하우스 농사에 비하면 진짜 쉽지만, 사람들이 ‘올인’을 안 하더라. 스마트팜 공급만 하고 끝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한국남부발전과 훈련 센터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 전정욱 대표는 “우리의 꿈은 실버팜 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병원 안에서 얼마나 답답하겠나. 스마트팜의 식물을 보면서 치유도 하고, 건강에도 좋은 식재료로 직접 만들어서 먹으면 좋겠다.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그런 시설을 만드는 게 마지막 목표다”라고 말했다.

도시농사꾼은 인천관광공사와 섬마을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인천 앞바다 덕적도에는 관광객이 많이 오지만 즐길 거리가 없는 탓에 바로 나가서 고민이라고 했다. 도시농사꾼은 이 섬에 스마트팜을 설치하고 마을 주민들이 카페도 운영하는 식으로 해서 오래 머물도록 하는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즐길 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곳이 어디 인천 덕적도 뿐일까.

냉동 컨테이너 스마트팜은 장점이 많다. 다단 적재를 할 수도 있고, 사정이 생기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혹시 냉동 컨테이너 스마트팜에 관심이 있다면 설비나 소프트웨어가 물론 중요하지만 농업이나 관광까지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뭘 하든 멀티 능력을 요구하는 요즘 세상이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도시농사꾼’은 남구 용호동 용호별빛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농사꾼’은 남구 용호동 용호별빛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지면보기링크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 사회
  • 스포츠
  • 연예
  • 정치
  • 경제
  • 문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