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07-17 15:34:41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실검)가 ‘세상을 보는 창’으로 대접받던 시대, ‘쌔그럽다’라는 단어가 급상승 검색어 톱 10에 올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쌔그럽다’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엔 ‘새그럽다’로 올라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뜻은 ‘시다’의 방언(경상, 충청). 이 단어가 실검에 등장한 건 그룹 엑소 멤버 백현이 자신의 SNS에 올린 “딸기빙수의 딸기가 좀 쌔그러웠어!”라는 글 때문으로, 백현도 “쌔그럽다 무슨 일이야 실검에 있어?”라며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부산을 포함해 영남권에서 주로 쓰이는 ‘새그럽다’는 단순히 시다나 시큼하다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거 왜 이렇게 신데?”보다 “이거 와 이리 새그러븐데?”가 좀 더 생생하게 와닿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예능프로에서 신맛이 강한 음료를 마신 출연자가 “아우 셔”라고 하자 부산 출신 안보현이 “너무 새그럽다”라고 말한 장면이 딱 그런 경우였다.
<쓰잘데기 있는 사전>은 이처럼 표준어 사전엔 거의 없지만, 부산에서 널리 쓰이고 흔하게 들을 수 있는 ‘101가지 부산 사투리’를 집대성한 지역어 사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투리라고 하면 드세거나 알아듣기 힘들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중부방언’이 표준어가 되면서 중부방언만을 ‘정답’으로 대접한 대중 매체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면도 적지 않다. 자연스럽게 부산을 포함한 ‘경상방언’은 투박하거나, 심지어 불량스럽기까지 한 언어로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때론 개그 소재처럼 희화화되고, 또 때론 조롱의 대상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쓰잘데기 있는 사전>은 이런 편견에 가려져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산 사투리의 다양한 쓰임새를 상황별로 정리하고 그 속에 담긴 부산의 정서를 발굴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인 셈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사직야구장에서 상대 투수의 혼을 쏙 빼놓는 한 글자 사투리 ‘마’에 대해선 “속에 많은 의미가 있고, 짧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라거나 “주의를 환기하고 기합을 넣어 무언가를 ‘잘해 보자’라는 부산 사람들의 의지를 표현하는 힘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문디’를 두고는 비속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친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애정 표현으로 정의한다. 특히 손아랫사람에게는 혼을 내면서도 속으로는 아낀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역설적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밖에 단순히 장소만을 묻지 않고 관심, 꾸중, 감탄, 놀람까지 탑재한 단어 ‘어데’, 강한 동의를 표현할 때 찰진 리듬감으로 주고받는 부산식 추임새 ‘하모’, 덜렁대고 침착하지 못한 사람을 귀엽고 정겹게 이르는 ‘털파리’ 등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투박하면서도 정이 담겨 슬쩍 입가를 올리게 만드는 단어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책은 국립부경대 교수로 있는 두 저자가 TBN 부산교통방송에서 2년 동안 진행한 사투리 소개 코너 ‘배아봅시데이’의 원고를 토대로 집필했다. 재미있는 건 두 저자가 각각 전북과 서울 출신으로 ‘오리지널 부산 사람’이 아니라는 점. 이들은 학교 측을 통해 “부산말을 배우며 이곳 사람들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라며 “부산 사람들에게는 ‘우리 말’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외지인들에게는 부산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책 제목의 ‘쓰잘데기’는 표준어로 ‘쓰잘머리’이다. 양민호 최민경 지음/호밀밭/320쪽/1만 7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