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2024-09-09 17:57:01
국내외 기업이 몰려와 양질의 일자리가 풍부한 세계적인 비즈니스 도시. ‘글로벌 허브도시’는 부산의 미래다. 가덕신공항과 북항 재개발로 글로벌 허브도시의 꿈은 점점 가시화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들어야 할 때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한 각종 경제특구를 지정해왔다. 부산시도 물류·금융 특구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경제특구는 기업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글로벌 허브도시 도약을 위해서는 기존 경제특구 정책을 뛰어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구가 이름 그대로 ‘특별함’을 갖추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부산 지역 특구 소재 기업에게 ‘기업 도시 DNA’의 조건을 들었다.
■최다 특구의 역설
부산은 특광역시 중에서 경제특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 ‘지방시대 실현을 위한 특구 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와 부산시 자료 등을 바탕으로 주요 경제특구 지정 건수만 추산해 보면 부산은 총 74개로 특광역시 중 1위다. 이어 울산이 52건, 대구와 광주가 35건 순이다.
주요 경제특구에는 경제자유구역, 규제자유특구, 외국인투자지역, 연구개발특구, 기회발전특구, 글로벌혁신특구, 소부장특화단지 등이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차별화된 특별함’을 원했다. 즉 부산의 경제특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부산의 한 특구 소재 기업 대표 A 씨는 “업체는 특구를 유치한 부산시의 스폰서십을 기대하고 뛰어들지만, 막상 많은 것이 정부의 결정에 달려있어 도움은 제한적이다”고 지적했다.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특구 지정은 전국적으로 특색없는 특구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구 지정 권한부터 규제 특례 부여까지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탓에 다양한 명칭의 특구를 도입하더라도 결국 기존 규제 샌드박스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부산연구원 장정재 연구위원은 “특구 성공의 핵심은 지방정부의 자율권”이라며 “독자적인 재정을 확보하고, 재정 투입에도 개입받지 않아야 경쟁력을 갖춘 인센티브 제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부산만의 매력’을 특화해야 부산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산의 한 기업가는 “지자체가 국비와 무관한 펀드를 조성한다든지 해서 부산이 육성하고자 하는 산업군의 기업에 판을 깔아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덕신공항과 연계한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 연구위원은 “노후 산단이 겪는 문제처럼 비즈니스 여건 변화에 따라 후발 주자가 없으면 특구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며 “가덕신공항 물류를 특구가 뒷받침해주는 식의 중장기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산업 육성 발 맞추고, 인재 공급 원활해야”
특구 내 기업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기업 원스톱 지원 시스템 △신기술 개발부터 신산업 선점까지 발맞춘 지원 △전문 인력의 안정적 수급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발업체 최초로 부산 강서구 녹산동 연구개발특구 ‘첨단기술기업’로 지정된 (주)노바인터내쇼널은 2021년 베트남 공장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주)노바인터내쇼널 이영규 전무이사는 “복귀 당시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산시와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규제 특례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며 “다만 유치 초기에 특례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경기 악화 등으로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도 함께 기관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원스톱 지원’ 체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R&D 등을 통해 개발된 신기술이 신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후속 지원도 필요하다. 글로벌혁신특구 사업자로 지정된 MS가스의 조영도 전무는 “신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그 가능성이 확인되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바탕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R&D 비용 지원과 더불어 입법을 통한 관련 제도 정비가 관건인데 기업 홀로 돌파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지자체와 긴밀한 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MS가스는 친환경 에너지원인 암모니아를 선박 연료로 급유하는 암모니아 벙커링의 안정성을 위한 글로벌 R&D를 수행하고 있다.
기업들은 인재 확보를 위한 지원도 주문했다. 스마트 선박시스템 제공 스타트업 랩오투원은 9년 전 7명 내외에서 출발해 현재 직원 50명 상당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인재 채용이라고 말했다. 랩오투원 강성필 전략기획팀장은 “연봉과 복지 여건이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인재를 채용하기 어렵고, 기업이 지역 인재에게 노출될 기회도 많지 않다”라며 “대기업을 부산에 유치하기 어렵다면 유망기업이 좋은 인재를 채용하고, 기업은 좋은 성과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