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시한 사극물 탄생…BIFF 개막작 ‘전,란’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2024-10-04 09:12:54

지난 2일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개막했습니다. 그간 BIFF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고려한 독립영화를 개·폐막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대중성과 재미는 약간 떨어지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BIFF 개막작은 다릅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고 강동원, 차승원, 박정민 등 스타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상업 영화 ‘전,란’이 개막작에 올랐습니다. 박도신 BIFF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이 “관객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거듭 설명한 이 작품을 감상한 후기를 알려드립니다.

영화 ‘전,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전,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전,란’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우선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박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미술감독으로 활약한 김상만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강동원, 차승원, 박정민, 진선규, 김신록 등 초호화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여기에 화려한 액션을 가미한 역사물이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조선 선조 때라는 시대적 배경을 제외하면 인물도 사건도 모두 가상입니다. 유명한 무신 가문의 외동아들인 이종려(박정민)와 몸종인 천영(강동원)이 핵심 인물입니다.

이제 소개할 영화 줄거리는 언뜻 스포일러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모두 BIFF 측에서 공개한 시놉시스에 기반한 내용입니다. 스토리 설명 대신 영화에 대한 평가만 보고 싶은 독자는 다음 소제목으로 ‘건너뛰기’ 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종려의 아버지는 노비를 물건처럼 여기는 인간 말종입니다. 그러나 천성이 순한 종려는 신분제에 연연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함께 큰 천영을 동무로 여깁니다.

본래 양인 출신이었던 천영은 자유를 갈망하는 야생마 같은 기질이 있습니다. 천영은 노비 신분에서 면천되기 위해 애쓰고, 종려도 그런 천영을 눈에 띄지 않게 돕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신분을 뛰어넘는 두 사내의 브로맨스는 임진왜란의 시작과 함께 완전히 뒤틀립니다. 무관인 종려가 선조를 호위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노비들이 난을 일으켜 가족을 몰살하고, 종려는 정황상 천영이 이를 주도했다고 오해합니다.

자신이 오해를 받는 사실조차 모르는 천영은 전쟁 기간에 의병으로 맹활약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종려는 왕의 호위무사로 온갖 불의를 저지르며 소위 ‘흑화’합니다. 전쟁이 끝나 다시 만난 둘은 서로를 죽일 기세로 맹렬히 싸웁니다.

영화 ‘전,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전,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화려한 검술 액션, 멋들어진 연출…눈이 즐거운 ‘전,란’

영화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허술하거나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 없이 필요한 부분만 압축해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주인공인 천영과 종려가 갈등을 빚게 되는 과정도 충분히 설득력 있고, 그 밖 인물들의 행동에도 개연성이 있어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 공감할 수 있으니 자연스레 영화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액션 연출에도 상당히 공들였습니다. 영화엔 다양한 검술 대결 신이 등장하는데, 강동원의 시원시원한 액션 연기가 과연 일품입니다. 박정민의 검술에서도 힘이 느껴졌고, 왜장 역을 맡은 정성일의 연기 역시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사력을 다하는 이들의 액션 신은 보는 사람이 힘들 정도로 박력 넘치고 처절했습니다.

각 캐릭터의 매력도 잘 살렸습니다.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천영은 강동원 특유의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잘 들어맞습니다. 차승원은 선조의 무능하고 이기적인 면모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고, 박정민도 흡입력 있는 감정 연기로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진선규와 김신록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면적 조연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진선규는 충직하고 인간적이면서도 용맹한 장군으로, 김신록은 의리와 행동력을 갖춘 의병으로 열연했습니다. 특히 김신록은 기다란 도리깨를 마구 휘두르는 선 굵은 액션을 선보여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촬영과 편집, 영상미도 훌륭했습니다. 미술감독 출신인 김상만 감독이 미적 감각을 제대로 뽐냈습니다. 의상과 소품, 배경 등 미장센에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납니다. 조영욱 음악감독이 작업한 음악은 화룡점정입니다. 국악과 일렉트릭 기타를 넘나드는 배경음악 활용이 감정을 한층 고조시킵니다.

영화 ‘전,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전,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집중 유발하는 분노의 복수극…OTT 공개는 11일

영화는 역사물인 동시에 복수극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인물들이 내뿜는 감정은 분노입니다. 분노의 이유가 허술하면 감정 과잉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전,란’은 굵직한 갈등 구조를 계속 끌고 가 폭발적인 힘과 긴장감이 내내 느껴집니다.

힘의 원천은 박찬욱 감독의 디테일입니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 개발과 편집에서 김 감독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유려한 대사와 극의 흐름을 끊지 않는 유머 포인트도 박 감독의 흔적입니다. 현장에서는 배우의 발음을 교정해 줄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 썼습니다. 강동원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대사 중 ‘장원급제’의 ‘장’을 단음으로 말했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장음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체크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일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우선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국제영화제 상영작인 덕에 영어 자막이 있어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결말부에서는 클리셰라 느껴질 만한 부분이 있었고, 인물의 감정에도 깊이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인 만큼 잔인한 묘사도 있어 보는 이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란’이 잘 만든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 이날 기자시사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배경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질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인 데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고, 극장의 위기를 부르고 있는 OTT 영화를 선정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도신 BIFF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그동안 완성도 높은 독립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은 맞다. 그 기준은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OTT에도 개방적”이라며 “처음 후보작으로 봤을 때 굉장히 재밌었고, 청불이 모험이긴 하지만 시도해 볼 만하다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OTT 여부를 떠나서, 보고 나면 꼭 시사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전,란’ 역시 관객들에게 꼭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쉽지만 ‘전,란’은 4일 낮 12시 30분 상영을 끝으로 BIFF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관람을 놓친 관객에게도 시청의 기회는 있습니다. ‘전,란’은 오는 11일부터 넷플릭스에서 공개됩니다.

영화 ‘전,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전,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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