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4-11-13 10:24:37
최근 몇 년 동안 아시아 미술은 페어를 중심으로 한 미술 시장에서도, 예술성을 따지는 뮤지엄급 대형 미술관에서도 가장 핫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미술사 대부분을 차지한 서양 미술이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 도전과 자유를 즐긴 아시아 작가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유명 아트 페어의 특별전에 아시아 미술이 인기 코너로 자리잡았고, 아시아 미술 허브를 누가 차지할지를 두고 흥미로운 경쟁이 시작됐다.
홍콩이 주춤해진 틈에 한국과 대만, 일본이 유리한 지점을 차지했고 다양성의 시대, 거대 도시 혹은 수도가 아니라 글로컬로 대변되는 지역의 가능성도 인정받고 있다. 우선 한국에선 서울과 부산이 글로벌 문화 도시를 목표로 다채로운 예술 축제를 펼치고 있다. 부산에선 ‘페스티벌 시월’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달 다양한 문화페스티벌이 열렸고, 11월 문화 축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카린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한국과 대만 예술가들의 국제 교류 전시가 그 현장이다. 대만 문화부가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스포트라이트 대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만 예술가와 단체를 외국에 소개하고 그 지역 대표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전시회를 여는 행사이다. 한국과 대만에서 13명의 작가(대만 9명, 한국 4명)가 참여하며 회화 설치미술 뉴미디어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장르 35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제목은 ‘두 도시를 연결하는 방법들’이다. 작가들은 현재 도시에 대한 단상을 그들만의 표현 매체와 방법으로 기록했다.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탐구한 도시는 때론 유쾌하고 때론 비정하고 때론 감추고 싶은 현실까지 드러낸다. 이 전시에서 대만과 한국 작가의 차이나 구분은 없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작품과 이름과 제목이 붙어있지 않고, 전시장 안내도와 대조를 해야 정보를 알 수 있다.
중견 작가의 무난한 작품으로 꾸미는 일반적인 국제 교류전과 달리 이 전시는 굉장히 독창적이고 재미있다. 미술 대안공간으로 유명한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와 대만 미술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미술 그룹 하이퍼웨이브가 주최하고 오픈 스페이스 배를 만든 서상호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이 대만의 라이페이쥔과 공동으로 기획을 맡았다.
대만에서 온 9명의 작가들은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중 대만의 국보급 작가로, 작가 자신이 대만이고 대만이 곧 작가의 정체성이라고 불리는 70대 양마오린이 가장 눈길을 끈다. 대만 현대미술관이 10개 전시 공간을 모두 활용해 양마오린 작가의 단독 전시를 열 정도로 거장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인어공주와 마징가Z 로봇, 킹콩이 등장한다. 이러한 만화 영웅과 불상을 함께 조각해 배치하는 독특한 형식이 눈에 띈다. 소년같은 상상과 끝없는 실험, 회화의 본질은 놓치지 않는 70대 거장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전시는 큰 의미가 있다.
말라붙은 피처럼 다소 기괴한 암적색만 사용해 그림을 그린 창링은 요즘 대만 미술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이다. 세계 최고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에도 자신의 작품을 낼 정도이다. 창원 비엔날레에 참여했고 부산현대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인정받은 젊은 작가, 첸칭야오의 작품도 반갑다. 성매매집결지의 모습을 아이템을 획득하는 오락 영상으로 풀어낸 홍위하오 작가의 유쾌한 도발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가로 5m가 넘는 화선지에 부산 영도를 수묵으로 표현한 박능생 작가, 이중섭의 그림이 떠오를 정도로 올망졸망한 아이들 묘사가 인상적인 강목 작가의 작품도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원래 10일까지 전시가 예정돼 있었으나, 여러 사람들의 요청으로 26일까지 연장해서 열린다. 무료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