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2024-12-09 18:12:04
“너희 나라 괜찮아?”
대한민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 날인 지난 4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 현지에서 만난 청년 A 씨가 “어디에서 왔느냐”라고 물어 “한국”이라 했더니 곧장 돌아온 질문이다. 한류를 대표하는 로제 ‘아파트’나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오직 한국 정치 상황을 주제로 씁쓸한 대화가 이어졌다.
비상계엄에 대한 현지 인터넷 기사를 보여준 그는 대뜸 “한국에 정당은 몇 개야”라고 물었다. 국회 의석이 있는 정당(7개)을 떠올리며 “주요 정당은 5개가 넘는다”고 했더니 A 씨는 “우리는 1개(공산당)인데 그래서 싸우진 않는다”는 웃지 못할 답이 이어졌다. 현 정치 상황이 그동안 다수당을 이루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한국민들의 자랑을 지워버린 셈이었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짤’(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이나 그림)도 유행하고 있었다. A 씨가 내민 휴대폰 화면에는 한국 역대 대통령 이름이 영어로 빼곡히 담긴 사진 파일이 떠 있었다. 대통령 이름 옆 베트남어 설명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간 이유가 적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처벌을 받지 않은 한국 전 대통령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류 영향 때문인지 한국 정치 상황에 큰 관심을 보이는 베트남인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지난 5일 하노이에서 만난 B 씨는 “한국에 큰 사건이 있지 않았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B 씨는 “대통령이 잘못했다”며 “국가 경제나 재정 문제까지 생각했다면 그러한 일을 해선 안 됐다”고 밝혔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물론 미국과 유럽, 남미까지 한국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민주주의 국가이자 한류 원조 한국에서 일어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베트남 대표 신문 ‘뚜오이쩨’와 대표 인터넷 언론사 ‘VN 익스프레스’도 비상계엄 선포 이후 보도를 이어오고 있다. 연일 탄핵 투표, 거리 집회 기사를 온라인 사이트에 메인 뉴스로 내걸고, 9일에는 계엄 당일 국회에 들어간 707 특수임무단 김현태 단장 기자회견 소식도 전했다.
남미 콜롬비아 언론 ‘엘 티엠포’는 지난 7일 ‘한국: 정치적 위기가 미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 분석 기사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와 BBC만 관련 기사를 쏟아내는 게 아닌 셈이다.
비상계엄 사태가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류 등 ‘소프트파워’로 높인 국격을 지키려면 세심한 외교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학과장은 “한국이 투자를 많이 하고 오가는 인력도 많은 베트남은 뉴스를 빠르게 확인하고, 이번 사태를 굉장히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며 “베트남 언론도 정확하고 건조하게 보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지인들 사이에 한국 시민들 저력과 문화를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SNS에 돌고 있다”며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좋게 보기도 하는데,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지속한 노력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노이(베트남)=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