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군 기자 gun39@busan.com | 2025-02-11 07:00:00
지난해 새해 벽두, 부산 가덕도에서 흉기 피습을 당한 야당 대표가 서울대병원으로 헬기 이송한 사건으로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아주대병원과 함께 매년 보건복지부 평가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외상 전문 치료기관이다. 치료 성적과 시설 면에서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난 권역외상센터를 외면하고 서울행을 감행한 당시의 결정을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외상센터를 무대로 한 메디컬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요즘 인기다. 지난달 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후 OTT 통합 콘텐츠(키노라이츠) 랭킹 1위와 비영어권 프로그램 글로벌 1위에 오르며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해서 인지 비현실적인 판타지에 가깝다. 의사가 헬기에서 레펠을 타고 내리거나 환자 이송 중에 뇌압강하술을 시도하기도 한다. 응급 환자들이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하거나 수술 중에 사망할 수도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모든 환자들이 기사회생한다. 의사가 아니라 초인 수준의 마블 히어로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중증외상센터가 활성화 되어 있는 상황인데 드라마에서는 중증외상센터가 갓 출발하는 상황을 가정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 현재와는 차이가 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를 이끌었던 이국종 교수를 모델로 한 작품이니 간격이 10년 이상이다. 그럼에도 중증외상센터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기본 인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중증외상 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외상 의사에 대한 처우 등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는 점에서 드라마와 현실은 판박이다.
‘사람을 살릴수록 적자다.’ 드라마의 무대가 되고 있는 대학병원의 경영진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환자 진료를 잘 하는데도 적자가 쌓인다니 지독한 아이러니다. ‘외상센터가 우리 병원을 말아먹는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왜 그런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김재훈 교수는 “외상센터는 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손해가 더 커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외과 파트 수가의 원가 보전율이 80%가 안 되기 때문에 수술을 많이 해도 운영이 어려운 게 현재의 상황이다. 인건비가 낮은 전공의들을 동원해 억지로 원가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나마 버티는 것이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료 파트 등과 같은 필수의료 분야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필수의료 중에서도 최일선에 있는 외상센터에 대한 수가 조정 역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의 의료대란 사태가 바닥 없는 늪에 빠진 상태라 필수의료 분야의 개혁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김 교수는 외상센터 진료 영역은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행위별 수가제를 통해 개별 의료행위별로 가격을 묶어 놓게 되면 외상센터처럼 24시간 모든 직원과 시스템을 돌려야 하는 곳에서는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는 일반 병실 82개, 중환자실 42개에 16명의 전담 전문의가 배치되어 24시간 순환 근무를 하고 있다. 응급환자가 하루에 1명 오더라도 외상센터의 모든 시설과 장비는 항상 똑같이 돌아가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 잣대를 들이대면 운영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는 환자로부터 받는 진료비 외에도 지자체에서 매년 일정한 지원금을 통해 적자를 보전해 주고 있다. 필수의료의 중요성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인건비는 지원하고 있지만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권역외상센터의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면하기 위해서는 국가책임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김 교수는 “향후 외상센터 시설이 노후화될 것이고 병원 차원에서는 투자 여력이 없기 때문에 10년 정도가 지나면 외상센터가 사라질 수도 있다. 최근에 외상센터 인건비 상향 조정이 논의된 적이 있는데 크게 나아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필수의료에 대한 개혁이 지체되면서 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의 처우 개선도 하세월이다.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병원급에 종사하는 동료 의사들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면서 열정만 강요당하고 있다. 그 와중에 외상센터 의료진의 이탈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권역외상센터는 교통사고, 추락 등에 의한 다발성 골절 및 대량 출혈이 동반된 중증환자 위주로 치료한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즉시 초기 처치를 포함한 소생술과 응급수술, 중환자 치료 등을 담당한다. 외상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교수가 외상팀을 구성해 365일 상주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11년 권역외상센터의 개원 멤버로 합류한 외상외과 베테랑이다. 지난해 초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 때 주치의를 맡기도 했다.
외상센터의 경쟁력은 ‘예방가능 사망률’을 기준으로 판가름된다. ‘적절한 치료를 받았을 경우 예방할 수 있는 사망’을 말하는데 선진국은 5% 정도다. 현재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예방가능 사망률은 7%다. 이송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도 포함된 수치인데, 병원 내 사망률만 따진다면 1~2% 정도로 세계적인 외상센터와 맞먹는 수준이다.
김 교수는 “병원에 오면 무조건 살린다는 것이 우리의 신조다. 예방가능 사망률 0%에 도전한다는 각오로 외상센터의 모든 의료진들이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만하면 권역외상센터 닥터들도 거의 마블 히어로 수준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