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 기자 leo@busan.com | 2025-06-17 17:39:12
투구 폼 하나를 바꾸니 투수가 180도 달라졌다. 롯데 자이언츠의 구세주로 떠오른 외국인 투수 감보아 이야기다.
롯데는 부상으로 팀을 떠난 찰리 반즈 대신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 트리플A의 구원투수 알렉 감보아를 데려왔다. 그는 2019년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9라운드 전체 281번으로 LA 다저스의 지명을 받았다.
감보아는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빼어난 구위에 비해 제구 불안 탓에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지 못 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풀타임 선발투수로 시즌을 보낸 적이 없었다. 여기에다 공을 던지기 전 허리를 지면과 90도가 될 정도로 깊게 숙인 후 투구하는 습관도 문제였다. 롯데가 그를 데려오면서도 불안했던 것은 이런 요인들이었다.
걱정은 감보아의 첫 등판에서 그대로 현실이 됐다. 그는 지난달 27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4와 3분의 2이닝 동안 4실점 하고 고개를 숙였다. 특히 주자가 있을 때 셋업포지션은 그야말로 땅을 바라보는 모습이어서 도루에 매우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롯데는 당장 감보아의 투구 폼 수정에 들어갔다. 두 번째 등판인 지난 3일 경기부터는 셋업포지션에서도 더 이상 땅을 바라보지 않는 투구 폼으로 바뀌었다. 롯데 구단은 “감보아의 투구 습관은 영입하기 전부터 파악했던 부분이다. 선수가 확실하게 변화에 적응했다”고 말했다.
투구 폼 하나를 바꾸자 감보아는 놀라운 투수가 됐다. 가장 먼저 구위가 압도적이다. 그는 평균 시속 152.4km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데 지난 8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157km의 공을 던졌다. 프로야구 역사상 역대 좌완투수의 투구 중 가장 빠른 공이었다.
게다가 감보아는 몸을 약간 뒤로 젖혀 높은 타점에서 던지는 정통 오버핸드다. 키는 185cm에 불과(?)하지만, 릴리스 포인트는 무려 2m다. 높은 타점에서 던지기 때문에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수직 낙하 거리는 50cm다. RPM(분당 회전수)도 평균 2500대다.
감보아의 구위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제구가 나쁜 공에 타자들이 헛스윙해 주는 경우가 많아 제구 불안도 해소됐다. 그는 4경기에서 24와 3분의 1이닝을 던지면서 볼넷을 5개만 내줘 9이닝당 볼넷 1.85개를 기록했다. 덕분에 성적도 좋아져 4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은 2.59다.
포수 정보근은 “감보아는 직구 구위가 정말 좋다. 투구 수가 많아져도 힘 있는 패스트볼을 던진다. 처음에는 퀵 모션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 부분을 빠르게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은 작전도 많고 주자들이 많이 뛴다고 이야기했더니 투구 폼을 곧바로 가다듬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감보아에게 남은 과제는 체력이다. 그는 선발투수로 한 시즌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해에 25~30경기를 던진 적도, 100이닝 이상을 던진 적도 없었다. 결국 경기 출장과 투구 이닝이 늘면 체력적인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힘이 떨어지면 구위도 하락하고 제구는 더 불안해지는 게 상례다.
김태형 감독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체력은 조금 더 지켜봐야한다. 그래도 100번째 공 구속이 155~156km가 나오면 괜찮다. 구종이 다양한 투수는 아니지만, 역시 좋은 투수의 최고 덕목은 구속이다.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자체로 정말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