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당한 영화인' 자파르 파나히, 22년 만에 부산행 성사

억압 속 개인 자유 천착한 이란 거장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어
B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선정

2003년 첫 방문 후 한 차례도 못 와
올해 가택연금 풀리며 참석 길 열려
9월 17일 BIFF 개막식에서 시상식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2025-07-23 09:00:00


제78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지난 5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주인공에 선정돼 오는 9월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신화연합뉴스 제78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지난 5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주인공에 선정돼 오는 9월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신화연합뉴스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영화인’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부산을 찾는다. 2003년 이후 22년 만에 어렵게 성사된 두 번째 방문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22일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2003년 제8회 BIFF 때 제정된 이 상은 아시아 영화산업과 문화 발전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한 아시아 영화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1960년 태어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조감독을 거쳐 첫 연출작 ‘하얀 풍선’으로 1995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이후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검열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자유와 존재를 조명하는 작품세계로 인해 그는 이란의 대표적 반체제 영화감독의 길을 걸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체포와 구금, 가택연금, 출국 금지 등 수많은 탄압을 받아왔다.

파나히 감독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었고, 이를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써클’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이 된 그는 2015년 ‘택시’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파나히 감독은 이어 지난 5월 열린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플 액시던트’(It Was Just an Accident)로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며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받은 아시아 최초 감독 자리에 올랐다.

2003년 제8회 BIFF 때 '붉은 황금'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오른쪽 두 번째) 감독. 부산일보DB 2003년 제8회 BIFF 때 '붉은 황금'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오른쪽 두 번째) 감독. 부산일보DB

파나히 감독과 BIFF의 인연은 2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제1회 BIFF 때 칸영화제 수상작 ‘하얀 풍선’이 아시아영화의창에 소개되며 부산에 첫선을 보인 그의 작품은 이후 2022년 제27회 때 ‘노 베어스’까지 모두 10편에 이른다. 하지만 그동안 파나히 감독이 영화제를 방문한 건 그가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던 2003년이 유일하다. 당시 그의 작품 '붉은 황금'이 상영작으로 초청되기도 해 감독으로서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로도 아홉 차례나 그의 영화가 BIFF에 초청됐지만, 그는 단 한 차례도 부산을 방문하지 못했다. 구금과 출국 금지, 영화제작 금지 등 억압의 시절이 그만큼 길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파나히 감독의 두 번째 부산 방문이 성사된 건 10년 이상 이어지던 그의 가택연금이 올해 해제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가택연금 해제로 파니히 감독이 칸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BIFF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BIFF 관계자는 “지난 5월 칸에서 파나히 감독을 만나 초청 의사를 밝혔다”라며 “당시는 올해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되기 전이었지만,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본인도 부산을 다시 찾고 싶어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파나히 감독은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선정 소식에 “이란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날마다 더 어려워지는 이 시기에, 이 상은 영화가 여전히 국경과 언어, 그리고 그 어떤 한계도 넘어설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라며 “침묵 속에서, 망명 중에, 혹은 압박 속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노 베어스'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제공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노 베어스'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제공

박가언 BIFF 수석 프로그래머는 “칸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을 그해 BIFF에 초청한 것 처음”이라면서도 “칸 수상과 무관하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영화인의 상징이라는 면에서도 아시아영화인상의 주인공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라고 수상자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시상식은 오는 9월 17일 제30회 BIFF 개막식에서 진행된다. 올해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심플 액시던트’와 그의 대표작이 영화제 기간에 상영될 예정이다.

한편,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2003년 제8회 때부터 제정돼 해마다 개인이나 단체를 수상자로 선정하고 있다. 첫해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비롯해 허우 샤오시엔(대만), 고 에드워드 양(중국), 차이밍량(대만), 허안화(홍콩), 고레에다 히로카즈(일본) 등 각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역대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엔 당시 창립 30주년을 맞은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인으로는 임권택 감독(2021)이 유일하다.

지면보기링크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 사회
  • 스포츠
  • 연예
  • 정치
  • 경제
  • 문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