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 2026-01-07 19:30:00
중국과의 경쟁에 밀려 고전하는 동남권 중화학공업에 북극의 무한하고 저렴한 자원이 단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표적인 석유화학 공단인 울산 온산국가산단 야경. 부산일보DB
북극항로를 단순한 항로 관점에서만 본다면 동남권 전체로 혜택이 돌아갈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북극의 풍부한 에너지와 자원을 저렴한 가격에 들여올 계기로 삼는다면 전통적인 동남권 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산업에 북극 자원을
석유와 천연가스, 희토류 등 세계 부존자원의 약 20%를 품은 북극권에서 지금까지 자원 개발이 이뤄지는 방식은 대체로 생산에 투자한 기업이 주도권을 갖고 생산한 자원 수송, 판매까지 맡는다. 가장 많은 투자에 나선 중국이 해당 광구에 투자를 하고, 인접지에 항만 건설, 선박(쇄빙선, 내빙선, 특수선 등) 발주, 운송, 판매까지 모두 참여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한국은 2010년대 러시아 야말이나 사할린 천연가스 개발을 저울질하다 불참했지만 탁월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 쇄빙선 건조 능력을 바탕으로 당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쇄빙LNG수송선 발주를 따낼 수 있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이성우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관점에서 북극권, 시베리아(특히 동시베리아), 극동러시아 등의 자원 생산에 국내 화주기업들이 우선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가스, 원유, 석탄, 철광석, 비철금속, 희토류, 목재, 수산물 등의 안정적 확보와 경제성, 정시성 등에서 큰 이점을 지닌다. 공급망 다원화라는 산업적 전략 외에 해운 분야에서는 컨테이너에 앞서는 벌크 화물 물동량 창출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크다.
특히 이들 화물 대부분이 한반도 동남권 산업기반과 연결된다. 포항 철강, 울산 에너지·화학·조선, 부산 수산·조선기자재, 경남 정밀 제조·조선·기자재, 여수-광양 에너지·철강·광물 등 한국 중화학공업에, 기존 공급원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저렴한 원자재를 공급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국내 철강과 화학 등 전통적 중화학공업은 저렴한 러시아 자원을 쓸어담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고전하고 있다. 이 위원은 “북극권에서 자원을 저렴하고 신속하게 가지고 올 수 있다면 동남권 경제는 새로운 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울경의 역할 분담
지난해 부산항은 2030년 3개 선석 개항을 목표로 진해신항 개발에 착수했다. 2040년까지 21개 선석이 갖춰지면 기존 동쪽 신항 38개 선석과 함께 상하이, 싱가포르 투아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항만·물류, 전통 항만 연관 산업(선용품, 급유, 선박·선원 관리 등) 규모도 훨씬 커질 전망이다.
특히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해양 행정·사법·산업 집적화가 부산에 이뤄지고, 해사법원, 동남권투자공사 등이 신설된다. 해양 신산업이라 할 수 있는 해양 지식·정보 서비스 산업과 인공지능(AI)·디지털 기술을 기존 해양산업에 접목하는 다양한 설루션 개발도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장하용 부산연구원 미래전략기획실장은 “부산이 경남과 울산을 연결한 ‘메가 트라이앵글’을 구성하고, ‘물류’회랑(경부축), ‘에너지·자원’회랑(동해안권), ‘산업기술’회랑(남해안권) 등 3대 북극경제회랑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국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물류’회랑은 기존 경부축의 산업벨트와 공항 화물 연결, ‘에너지·자원’회랑은 북극 석유·천연가스·광물·수산물 도입·처리·가공·활용·재수출 등 산업 생태계, ‘산업기술’회랑은 북극 특화 쇄빙·내빙선 건조, 극지 특화 장비·기자재 개발, 친환경 첨단 기술 개발 등이 가능할 것으로 장 실장은 전망했다.
경남과 울산도 기존 전략·중점 산업과 북극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지역 산업 육성 계획을 짜고 있다.
홍성원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장도 “경남은 세계 최고 수준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어 극지 특화 선박 건조뿐 아니라 조선기자재 개발, 수리조선 분야에서 역할할 수 있고, 진해신항 외에도 마산항, 가포신항, 옥포항 등 다양한 화물 처리 능력을 보유한 장점이 있다”며 “선박 수리나 연료 벙커링을 위해 경남을 찾는 선박들을 위한 항만연관산업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병주 경남연구원 혁신성장본부장은 “첨단정밀기계, 첨단항공부품, 항노화메디컬 등 기존 전략 주요 산업과 북극항로 연계성 강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중소형 선박 및 소부장 클러스터 조성, 친환경 에너지공급 허브 구축 등의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LNG, 석유, 케미컬 물동량 국내 1위에다 46개 액체화물 부두를 보유한 울산의 기대도 크다. 울산시 장윤정 해운항만팀장은 “해수부가 울산항에 대해 울산의 석유화학산업과 연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 계획을 이미 세워 북극 석유와 가스를 저장·수송·벙커링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계획에 따라 구축할 예정”이라며 “1월 중 울산시와 산하 기관 추천 전문가 10명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뒤 정책과제를 발굴하고, 울산연구원에 북극항로 연계 사업 로드맵 수립을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산업과도 직결되는 저탄소 에너지 산업 기반이 동남권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남에서 집중하는 소형모듈원전(SMR), 울산이 전략산업으로 힘쏟는 수소 산업이 이미 지구온난화 결과로 열리는 북극의 환경 친화적 이용과 국제 표준을 이끄는 데 큰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 HD현대와 삼성중공업 등에서는 SMR을 활용한 상선 설계 인증을 받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이와 연관된 기자재산업이 동남권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