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極地), 다음 세대에 꽃필 동토의 땅

남극, 북극보다 더 춥고 건조해
40여 개 과학기지서 자원 연구 중
그린란드·알래스카·시베리아…
북극해 주변 약 400만 명 거주
기후변화로 해빙 감소, 개발 가속화
북극항로, 에너지 안보에도 도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6-01-30 09:00:00

미국 백악관은 최근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성조기를 든 펭귄과 함께 그린란드 설원 위를 걸어가는 합성 사진 게시물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그린란드를 장악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게 사실 한두 번이 아니다. 트럼프의 위협은 아이러니하게도 북극 그린란드의 인지도를 크게 올렸고, 관광객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 항만으로 육성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해진 극지이지만 너무나 멀리 떨어져 우리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마침 최근에 한국극지연구위원회 김예동 위원장이 펴낸 <한 극지 과학자의 회상>이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만난 극지 전문가 김 위원장에게서 들은 남·북극과 북극항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남극의 황제펭귄 서식지를 방문하자 펭귄들이 호기심에 헬기 주변으로 몰려온다. 김예동 제공 남극의 황제펭귄 서식지를 방문하자 펭귄들이 호기심에 헬기 주변으로 몰려온다. 김예동 제공

트럼프는 틀렸다. 북극 그린란드에는 펭귄이 살지 않는다. 남극에만 사는 펭귄과 북극에 사는 북극곰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오직 동물원뿐이다. 우선 남극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남극 연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활발해졌다. 북반구에서 북극은 남극보다 가까이 있지만 북극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 연구 활동은 남극보다 30년이나 늦었다. 한국도 남극 세종기지는 1988년, 북극 다산기지는 2002년으로 설립 시기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


남극 기지 대원들은 바다에서 이동할 때 고무 보트를 이용한다. 김예동 제공 남극 기지 대원들은 바다에서 이동할 때 고무 보트를 이용한다. 김예동 제공

남극은 세상에서 가장 춥고 건조한 곳이다. 북극보다도 훨씬 춥다. 바다에 둘러싸인 대륙 남극, 대륙으로 둘러싸인 바다 북극이라는 차이가 있다. 남극의 평균 얼음 두께가 2㎞나 되는 만년빙 아래는 땅으로 덮인 광활한 대륙이다. 지구 전체 육지 면적의 10%이자 호주의 2배에 해당하는 크기이다. 남극은 겨울철에 영하 90도까지 떨어지며 6개월간 해도 뜨지 않는다. 게다가 해발 3000~4000m의 산맥이 가로지르고 있으니 얼마나 춥겠는가. 지구 전체 담수 60~70%가 얼음 형태로 저장되어, 남극 얼음이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45~90m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얼음과 눈 뿐이라 습도도 높을 것 같지만, 사하라나 고비사막 버금가게 건조한 곳이어서 불도 자주 난다. 한 번 불이 나면 강풍을 타고 잘 꺼지지도 않는다.


남극 기지에서는 육상 조사 활동을 위해 스노모빌을 이용한다. 김예동 제공 남극 기지에서는 육상 조사 활동을 위해 스노모빌을 이용한다. 김예동 제공

40여 개 과학기지에 1000명에 달하는 과학자들이 원주민도 살지 않는 혹독한 남극에 남아 겨울을 보내는 이유가 있다. 남극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현재 지구는 과거 수십만 년 동안에 걸쳐 일어난 기온 변화를 불과 한 세기 만에 겪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의 답은 지구 역사의 냉동 타임캡슐인 남극대륙에 간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남극은 남극조약에 의해 자원 채굴이 금지되고, 오직 과학적 연구와 보존을 위해서만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북극 사례를 보듯이 앞으로 풍부한 남극의 지하자원을 염두에 두고 소유권 주장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나 미국은 이미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남극대륙은 과학 연구가 국가 이익 및 외교 정책과 결합된 지구상 유일한 지역이다”라고 강조했을 정도로 일찍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 우리도 1992년 세종기지가 위치한 남극 주변 해저에서 국내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의 300배에 달하는 가스수화물층을 발견했다.


빠르게 녹고 있는 북극해에서 활동하는 아라온호. 김예동 제공 빠르게 녹고 있는 북극해에서 활동하는 아라온호. 김예동 제공

지구 자전축의 가장 북쪽 끝, 북극점은 바다 위 해빙에 있다. 바닷물이 얼어붙은 해빙은 2~3m 정도의 두께다. 바다에 있다 보니 북극점의 평균기온은 여름철 0도, 겨울철 영하 40도 정도로 남극보다 따뜻하다. 북극해 주변 그린란드, 북유럽, 알래스카, 시베리아 연안을 따라 400만 정도의 인구가 산다. 그중 10%만이 원주민이다. 북극은 군사적으로 예민한 지역이라 오랫동안 개방되지 않았다.

구소련 말기인 1987년 고르바초프의 무르만스크 선언에 따라 북극이 개방되고 민간 연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북극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해빙으로 인해 접근이 어렵고, 지구온난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아서였다. 우리에게 북극의 문은 1999년 중국의 도움으로 처음 열린다. 중국이 쇄빙선 설룡호를 처음으로 북극에 보내면서 한국 연구원 1명과 학생 1명을 끼워준 것이다.

“북극으로 무슨 배가 다녀요?” 극지 과학자가 해양수산부에 찾아가서 장차 북극항로가 열리게 되기에 북극 진출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면 황당한 소리를 한다면서 무시하던 시절이었다. 한국은 북극 연구에 출발은 늦었지만 2002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의 니알슨 과학기지촌에 다산기지를 설립하며 남·북극 양쪽에 과학기지를 보유한 세계 8번째 국가가 된다. 2007년에는 오호츠크해에서 ‘불타는 얼음’이라고 불리는 다량의 가스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 온 편지가 수송기로 도착하면 칠레 헬기가 배달해 준다. 김예동 제공 한국에서 온 편지가 수송기로 도착하면 칠레 헬기가 배달해 준다. 김예동 제공

현재 기후변화로 북극해 해빙이 급격히 감소하며 육상 및 대륙붕 석유 자원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개발된 석유나 천연가스를 아시아로 수송하는 북극해 항로 개발도 활발해졌다. 이와 관련해 특히 주목받는 지역이 바로 그린란드다.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얼음이 제일 빨리 녹으면서 지하에 있던 암석이 노출되고 있다. 트럼프의 속셈은 그린란드 석유에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장 개발이 가능한 그린란드 주변 바다 대륙붕의 석유를 북극해를 통해서 미국 동부로 가지고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9년 세종기지 제2차 월동대. 김예동 제공 1989년 세종기지 제2차 월동대. 김예동 제공

북극해에는 전 세계 원유 13%, 천연가스 30% 이상이 매장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우리 정부가 북극항로 개발을 국가 주요 정책 어젠다로 선정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북극항로가 경제성을 갖추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순히 항로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좀 더 크게 보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국극지연구위원회 김예동 위원장. 본인 제공 한국극지연구위원회 김예동 위원장. 본인 제공

그 대표적인 것이 에너지 안보다. 시베리아에서는 천연가스가 많이 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에 값싼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다. 북극항로를 통한 천연가스 공급은 쇄빙 LNG선을 이용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북극항로는 국가적으로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확보 수송할 수 있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북극해 가스전에 투자해야 하고, 부산항도 이런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예동 위원장은 “극지 문제를 해양이나 과학의 관점으로만 나눠서 볼 게 아니고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남극기지 지원을 위해 공군기나 해군 함정을 이용하면 우리 공군이나 해군이 남극에 가서 훈련하는 거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의 저개발국 인재도 우리의 극지 연구에 끼워주면 외교를 확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극지 연구 결과는 인류의 공통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아라온호가 일년에 한 차례의 세종기지 보급을 위해 기지 앞에 도착했다. 김예동 제공 아라온호가 일년에 한 차례의 세종기지 보급을 위해 기지 앞에 도착했다. 김예동 제공

“좁은 한반도에 살던 우리 민족이 극지라고 하는 새로운 과학 영토를 개척한 셈이다. 이 극지는 현재보다 미래이다. 지금 우리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몫이다. 다음 세대에 필 꽃이기에 잘 키워서 미래를 대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극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가 들려준 답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중간에서 엔진이 자꾸 꺼졌다. 배는 막 돌고, 시동은 안 걸려 애를 먹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배 옆에 엄청나게 큰 고래가 나타나 물 위로 뛰어올랐다. 고래 꼬리가 눈앞에서 바다를 펑하고 치는데 어마어마한 감동이 몰려왔다.”

그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면 “젊은이들이여, 항상 남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아가라.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두려움을 갖지 마라. 새로운 길을 찾아 열심히 가다 보면 성공은 저절로 다가온다”라고 말한다. 남극·북극, 극지는 이미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국극지연구위원회 김예동 위원장이 남극 황제펭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본인 제공 한국극지연구위원회 김예동 위원장이 남극 황제펭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본인 제공

◆김예동 위원장은 누구

한국극지연구위원회 김예동 위원장은 1983년 미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와 함께 남극 땅을 처음 밟았다. 김 위원장은 흰 얼음과 파란 하늘, 단 두 가지 색깔만 존재하는 신비한 세계에 바로 매료되었다. 지도교수는 “너는 앞으로 평생 남극을 드나들게 될 거야”라고 예언했다. 그는 이 말대로 40년간 20차례 이상 남극을 드나들며 남극대륙을 연구해 오고 있다.

1989년과 1996년 두 차례나 세종기지 월동대장을 지냈고, 남극 장보고기지와 북극 다산기지 건설을 주도했다. 2021년에는 국제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의 첫 아시아인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지난해에는 지질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운암지질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 극지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연구 기반을 마련한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남극이나 북극에 가 보셨나요?>를 비롯해 모두 8권의 극지 관련한 책을 출간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로드맵은 남극 내륙 깊숙이 들어가 제3기지를 짓고 3000m 아래의 빙하로 과거 기후 변화를 추적해야 완성이 된다. 이미 장보고기지에서 1512km 떨어진 내륙 후보지까지 K-루트를 개척하고, 제3기지를 지을 준비를 마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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