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대신 "부산 함 놀러 온나"…'배재고 사태'로 재조명된 고교야구 응원 문화

류선지 부산닷컴 기자 sun@busan.com 2026-07-05 10:04:27

2025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서울 휘문고'를 꺾고 우승한 '부산 경남고'. SPOTV-유튜브 '윅카이브' 캡처 2025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서울 휘문고'를 꺾고 우승한 '부산 경남고'. SPOTV-유튜브 '윅카이브' 캡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응원을 펼쳐 논란을 빚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를 찾아 공식 사과에 나서는 가운데, 과거 고교야구가 보여줬던 건강한 응원 문화가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광주시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배재고 야구부 선수 36명 전원과 지도자, 학부모, 교직원 등 80여 명은 6일 오후 광주제일고를 방문해 사과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은 최근 전국고교야구대회 기간 중 불거진 서울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제일고와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가를 불러 '전국대회 출전 6개월 정지' 징계 처분 등에 따른 후속 조치 중 하나다.

이번 사태가 더욱 안타까움을 남기는 이유는 불과 최근까지도 고교야구 현장에는 지역의 특색을 살린 유쾌한 응원과 청춘다운 재치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승부를 향한 자신감은 드러내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해학은 고교 스포츠만의 매력으로 평가받아 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8월 2일 경북 포항시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제5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다. 서울 휘문고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부산 경남고 선수들은 상대였던 휘문고를 향해 "한강이 바다를 이길 수 있겠나! 부산 함 놀러 온나!"라며 서울의 한강과 부산의 바다에 빗댄 재치와 패기 넘치는 우승 소감을 남기며 큰 화제를 모았다.

서울의 상징인 '한강'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이 자란 해양 도시 부산의 '바다'라는 장소성을 활용해 자신들의 승리를 재치 있게 자축하고 '부산 함 놀러 온나'는 승부는 경쟁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결국 함께 즐기는 친구라는 상대를 포용하는 메시지였다. 이는 지역색은 살리면서도 상대를 배척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서울의 상징인 한강과 부산의 바다를 대비시키며 자신들의 우승을 유쾌하게 표현한 이 한마디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청춘다운 패기"라는 호평을 받았다. 지역적 정체성을 재치 있게 활용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은 응원 문화의 좋은 사례로 남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게 청춘 스포츠다" "도발에 품격이 느껴진다"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맞붙은 대구 상원고와 부산고는 경기 전 출사표부터 화제를 모았다. 대구 상원고가 "마! 뜨겁나?"라며 대구의 무더위를 빗대 선제 도발을 던지자, 부산고는 "마! 안 뜨겁다! 들어온나!"라고 응수하며 부산 특유의 거침없는 기세를 담아냈다. 도발이었지만 지역적 특색과 스포츠 경쟁심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응원은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승부의 긴장감마저 한층 끌어올렸다.

대전고의 응원 문화 역시 대표적인 해학 사례로 꼽힌다. 대전고 야구부는 경기 전 상대였던 성남 야탑고를 향해 지역 명물인 성심당을 소재로 삼아 "대전까지 왔으니 빵은 맛있게 먹고 가라"는 식의 재치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승리에 대한 자신감조차 지역의 환대 문화와 연결해 표현하면서 상대와 관중 모두에게 웃음을 안겼고, 스포츠가 지역 축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응원의 감동은 선수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지난해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는 청담고 3학년 담임교사가 제자들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관중석 맨 앞에서 온몸으로 응원전을 펼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학생들을 위해 아낌없이 춤추고 응원하는 모습에 중계진마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즐기고 있다"고 감탄했다.

이처럼 고교야구의 응원 문화는 단순한 승패 경쟁을 넘어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축제이자 교육의 연장선으로 자리해 왔다.

반면 최근 불거진 배재고 사태는 이러한 건강한 스포츠 문화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실망을 안겼다. 역사적 아픔과 지역을 희화화하는 응원은 스포츠 정신은 물론 교육 현장이 지켜야 할 기본 가치와도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과 방문이 단순한 형식적 절차를 넘어 학생들이 스포츠의 경쟁과 존중,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배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고교야구가 다시 청춘의 패기와 지역의 자부심, 그리고 상대를 향한 존중이 공존하는 건강한 응원 문화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해 8월 31일 당시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53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경남고등학교가 마산용마고를 상대로 10회말 4번 타자 이호민(10번) 역전 결승타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경남고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해 8월 31일 당시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53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경남고등학교가 마산용마고를 상대로 10회말 4번 타자 이호민(10번) 역전 결승타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경남고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부산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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