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1-30 14:22:06
손음 시인은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월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으로는 <칸나의 저녁>(2010)과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2021) 두 권만 냈으니 과작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손 시인이 병행하는 일들을 꼽아 보니 언제 시를 써서 시집을 냈는지, 시간이 있기나 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그의 삶은 ‘문화 프런티어’ 정신으로 물아일체된 게 아닌가 싶다.
손 시인은 2021년 봄호부터 나오고 있는 부산 최초의 인터넷 문학잡지 웹진 <같이 가는 기분>(blog.naver.com/webzineseein)의 발행인이다. 이 웹진은 제16호인 2024년 겨울호에 이어 다가오는 봄호가 발행되면 만 5년을 채우게 된다. 구독자 수로도 네이버 구독자 8만 명에 페이스북과 인스타를 합쳐 10만 명이 넘는다니, 웬만한 기성 문학잡지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발행인인 손 시인은 “<같이 가는 기분>이 동네잔치에 그칠 줄 알았는데, 서울문화재단에서 하는 웹진 <비유>, 아르코에서 하는 웹진 <에이스퀘어>와 함께 전국 3대 웹진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평가를 최근 받았다”라며 기뻐했다. 특히 지금까지 광고나 협찬을 전혀 받지 않고, 기관이 아닌 개인이 발행하는 웹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성과는 가위 독보적이다.
“같이 가는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 소설의 한 문장에서 이름을 가져왔다고 했다. 귀에 익숙한 네 글자의 잡지 이름은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가진 것 같아서 처음부터 배제했다. 사람 인(人)자에 색깔을 달리한 바지를 입힌 캐릭터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번 겨울호는 김소연 시인의 ‘일 년 중 밤이 가장 짧은 하루’를 비롯한 신작 시 21편, 이경림의 ‘꿈 외’ 등 시인들의 산문, 시 읽기, 시 릴레이 챌린지, 동시 릴레이 등으로 알차면서도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일부 콘텐츠는 음성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무엇보다 요즘 잘나가는 젊은 시인들의 시가 많은 게 특징이었다.
요즘 시는 어려워서…. 특히 젊은 시인들의 시는 난해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손 시인은 그런 시를 도마뱀의 꼬리에 비유했다. 젊은 시인들은 잘린 꼬리만 남겨둔 채 도마뱀처럼 몸을 숨긴다는 것이다. 잘린 꼬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꼬리는 느낌이다! 손 시인은 “문학은 현재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미래를 가진 젊은 작가들에게 집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웹진의 시작은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지역에 잘 주어지지 않는 데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국가의 경계도 무너진 마당에 지역과 중앙의 차별이나 구분이 있다는 게 우습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같이 가는 기분>은 좋은 작가를 많이 발굴하면 전국은 물론이고 세계로도 뻗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 콘텐츠는 영어로 번역해서 올리고 있다.
손 시인은 3년째 책방을 겸한 카페 영도일보를 운영 중인 카페 주인장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 읽는 골목’이라는 문학 치유 프로그램,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연상시키는 ‘밥 콘서트’, 시인 강독회 등 문화행사를 수시로 열었다. 그는 “시집 속에 시가 갇혀 있으면 뭐 하나. 내 공간에서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생각을 나누고 있다. 올해에는 수많은 시집에 둘러싸인 카페 영도일보에서 숙박하는 ‘천 권의 시집 스테이’ 계획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손 시인은 문예창작과에 지원하는 학생을 위한 학원 ‘칸나샘교실’을 운영하면서 일인 출판사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미 출판사 이름을 ‘같이 가는 기분’으로 등록하고, 그의 세 번째 시집 <고독한 건물>의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그는 “내 손으로 내 것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책 표지 디자인 같은 것은 재밌는데 인쇄 판형에 맞추는 게 힘들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지만 문학의 맥락 속에 들어 있어 헹복하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