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3-06-23 16:05:42
장남인 기자는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담을 좋아합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동생보단 낫다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영화계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원작 넘어서는 속편 없다’는 말에 많은 영화인이 공감합니다. 처음 공개한 작품이 큰 히트를 치면, 비슷한 소재와 내용으로 만든 후속작이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본래는 대학교 2학년생의 학업 성적이 신입생 때에 비해 하락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대중매체나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영어권에선 ‘소포모어 슬럼프’로 통용됩니다.
이런 슬럼프나 징크스를 벗어난 작품들이 나왔습니다. 지난 21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수많은 스파이더맨 후속작 중 하나인데도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호평일색이었던 전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반응입니다.
지난 16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익스트랙션2’는 오히려 1편보다 낫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1편은 다소 조잡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액션으로 대히트에 성공했는데, 2편은 스토리까지 잡았습니다. ‘소포모어 슬럼프’를 극복한 두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건 영화관에서 봐야 해”…‘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2018년 극장에서 봤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고유의 미국 만화 그림체를 스크린에 녹여내 독특한 미감을 선보였습니다. 만화영화 한 편 가볍게 보러 갔다가 눈앞에 펼쳐진 영상미의 향연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리즈 속편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전작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더했습니다.
스토리는 전편과 연결됩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핵심 소재는 ‘멀티버스’입니다.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된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는 평행우주 속 또 다른 지구에서 만났던 ‘스파이더우먼’ 그웬을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명석한 두뇌로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만, 부모 몰래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충이 있습니다.
다른 지구에 살고 있는 그웬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경찰인 아버지에게 정체를 들켰고, 오해를 풀지 못해 체포까지 당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결국 그웬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를 떠나 또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도우러 온 스파이더맨 무리에 합류합니다.
그웬은 ‘팀 스파이더맨’의 일원으로서 차원을 오가며 멀티버스의 균형을 수호하기 위해 싸웁니다. 빌런 ‘스팟’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3류 악당이지만, 가만히 뒀다간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입니다. 스팟은 마일스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소란을 피우는데, 마침 그웬은 스팟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예측 가능하지만 마냥 뻔하진 않습니다. ‘팀 스파이더맨’ 리더 격인 미겔 오하라와 마일스가 갈등을 빚게 되는 이유가 나름 신선합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항상 등장하는 ‘딜레마’를 잘 활용한 덕에 몰입감도 상당합니다. 역대 스파이더맨들은 <정의란 무엇인가> 덕에 잘 알려진 ‘트롤리 딜레마’(전차의 딜레마) 같은 상황에 익숙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한 명과 다수의 무고한 사람 중 누구를 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 스파이더맨의 숙명입니다. 이 끔찍한 딜레마에서 마일스가 내리는 결정과 그로 인한 성장통은 극을 이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딜레마를 둘러싸고 주요 캐릭터가 보여주는 입체적인 면모도 흥미를 돋웁니다. 가족애와 우정의 가치를 되새겨보게 하는 몇몇 대사는 소소한 감동을 자아냅니다.
다만 문제의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모든 곳에 멀티버스가 걸쳐 있는 점은 반감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쪽 지구와 저쪽 지구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편을 관람하지 않았거나 멀티버스 개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스토리를 완전히 이해하긴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또 2시간 30여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중 늘어지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화는 후속작을 예고하며 끝나는데, 마무리가 영 시원치 않다는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1편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이번 작품에서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 기자는 극장을 나온 뒤에도 영화를 ‘n차 관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영상미는 기존 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특유의 만화적 연출로 기존 실사영화는 물론이고 여타 애니메이션에서도 보지 못했던 유려한 액션을 만들어냈습니다. 변화무쌍한 색감은 감정을 고조시킵니다. 온갖 차원에서 모여든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씬은 압도적입니다. 2D와 3D를 넘나드는 작화 기술로 시신경을 자극합니다. 연출진인 저스틴 톰슨 감독이 “이제껏 배운 기술을 모두 활용해 비주얼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 활용도 뛰어납니다. 힙합과 시티팝,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등 다양한 장르의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다만 1편의 ‘Sunflower’나 ‘What's up Danger'처럼 귀에 꽂히거나 기억에 남는 노래는 없었습니다.
스토리 다지고 액션 강화한 ‘익스트랙션2’
영단어 ‘익스트랙션’(extraction)은 ‘구출, 추출’ 등을 뜻합니다. 2020년 넷플릭스에 공개됐던 영화 ‘익스트랙션’은 ‘토르’로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익숙한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의 구출 작전을 그린 액션물입니다. 마블 시리즈로 이름을 날린 루소 형제가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어벤져스:엔드게임’ 등에서 스턴트 배우로 활약한 액션 전문가 샘 하그레이브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기자는 어설픈 개연성과 진부한 스토리 때문에 1편에서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6일 공개된 2편은 만듦새가 좋아졌습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최강의 특수요원 출신 타일러 레이크(크리스 헴스워스)는 온몸에 총상을 입고도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조용히 살아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은퇴한 전직 특수요원들은 항상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기이한 미션을 받기 마련입니다. 타일러 역시 생면부지의 남자로부터 위험천만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받고 사람을 구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이제 타일러는 조지아 마약밀매 조직 ‘나가지’의 가족을 감옥에서 탈출시켜야 합니다.
영화의 핵심은 역시나 수준급 촬영기술로 구현한 화려한 액션입니다.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교도소 구출 씬은 압권입니다. 정교한 롱테이크 기법이 주는 몰입감이 상당합니다. 수많은 죄수들을 온갖 무기와 연장으로 물리치는 타일러의 모습이 영화 ‘존 윅’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자동차 추격 씬과 열차 전투 씬도 영리한 편집으로 롱테이크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헬기부터 중화기까지 동원된 고농도 액션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헬스장 기구를 활용한 액션 등 창의력을 가미한 연출도 눈길을 끕니다. 머신을 사용한 뒤에 중량 원판은 꼭 제자리에 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밖에도 아슬아슬한 고공액션과 처절한 맨손 혈투까지 온갖 액션을 동원해 지루할 틈 없이 시청자를 몰아붙입니다. 다양한 최신식 화기와 군용 장비 등 ‘밀리터리 덕후’의 취향을 저격하는 요소도 충분합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인 만큼 다소 잔인한 묘사가 있는 점은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큰 인기를 끌었던 네이버 웹툰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에서 주인공인 ‘불사조’가 좋아하는 장르인 “미국인이 나와서 총질하고 다 때려부수는 영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스토리를 포기한 건 아닙니다. 타일러가 목숨을 걸고 갱단의 가족을 구출하는 이유부터 이들 가족이 다시 위기에 처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게끔 노련하게 풀어냈습니다. 1편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타일러의 가족사를 다룬 것이 주효했습니다.
조연들의 활약도 나쁘지 않습니다. 타일러와 둘도 없는 동료인 ‘닉’을 맡은 이란 출신 여성 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현란한 무술로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닉의 남동생인 ‘야즈’ 역의 프랑스 배우 아담 베사는 책임감 강한 조력자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습니다.
영화의 메인 빌런인 ‘주라브’는 조지아 갱단 수장인데, 이 역할을 맡은 배우 토르니케 고그리치아니는 실제로 조지아 출신입니다. 강인한 인상을 바탕으로 무난한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뻔한 액션물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 ‘익스트랙션’ 시리즈는 이미 3편 제작이 확정됐습니다. 영화 종반부에는 타일러에게 구출 미션을 줬던 의문의 남자 앨콧(이드리스 엘바)이 다시 나타나 후속편을 암시하는 제안을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