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고봉 아콩카과? 마 오르면 된다 아입니꺼!”

■끝나지 않을 꿈 / 황태웅 외 13인

OB 84학번부터 YB 21학번
부산 산악인 14명의 등정기
정상은 여러 과정 중 하루일 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2-27 10:57:25


<끝나지 않을 꿈>은 대학산악부 OB 9명과 YB 5명으로 구성된 부산 산악인 14명의 남반구 최고봉 아콩카과 등정기이다. 단비 제공 <끝나지 않을 꿈>은 대학산악부 OB 9명과 YB 5명으로 구성된 부산 산악인 14명의 남반구 최고봉 아콩카과 등정기이다. 단비 제공

모든 일이 그렇듯이 힘들었던 원정 산행도 시작은 미약했다. 어느 주말, 산행을 마치고 뒤풀이에서 막걸리 한 잔씩 마실 때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냈다.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 올라 보는 건 어떻노?” “안데스산맥의 최고봉 아콩카과요?” “그래. 우리 같이 올라뿔자.” “그랄까예? 까짓것 안될 기 뭐 있습니꺼. 올라뿝시다.” “네. 가입시다. 오르면 된다 아입니꺼.” 그렇게 쉽게(?) 꾸려진 아콩카과 원정대였다.

<끝나지 않을 꿈>은 부산 산악인들의 아콩카과 등정기이다. 아콩카과는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해발 7000m의 고산으로 남북아메리카를 비롯해 남반구 최고봉이다. 걷기만 해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등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봉우리 중 세계 최고봉이라는 매력에 이끌려 왔다가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무튼 대학산악부 출신 OB 9명과 YB 5명으로 구성된 14명의 대원은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한 달 일정으로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를 무사히 등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등반 일정보다 훨씬 오랜 10개월에 걸쳐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같은 대원이라고 하지만 OB인 84학번 선배로부터 YB로는 21학번 후배까지 연령대가 너무 다양하다. 기업체 대표부터 대기업 미국 법인 직원, 변리사, 책방 주인, 대학생까지 하는 일도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이 같은 산을 오르며 느낀 감정이 무지개처럼 다채롭게 펼쳐진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진리다. 가정이 있는 산익인들이 맞닥뜨리는 원정의 첫 고비는 대개 아내라는 크고 무서운 산이다. 대책 없는 산쟁이들은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비행기표 예매부터 하고 보는 모양인데….

이들이 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일화 한 토막이다. 한 대원은 7년 전에도 해외 원정을 준비했다. 러닝, 수영, 하중 훈련, 산행, 썰매 끌기 등으로 하루 스케줄이 빡빡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며 원정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게 분해 사흘을 훌쩍거리자 보기가 딱했던지, 부인이 원정대원들에게 ‘다음번 원정 산행이 계획되면 임동한 씨 꼭 데려가세요’라고 문자를 날렸단다.

산악 등반 에세이답게 몸으로 익힌 주옥같은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고산 등반은 시험 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산 밑에서부터 모든 행동이 1점씩 모여 총점수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습이 궁금하지만 아직 유인 우주선을 탈 형편이 안 된다면 아콩카과 같은 고산에 오르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 아콩카과 첫 캠프에서 베이스캠프인 프라자데뮬라스 가는 길의 풍경이 마치 달의 표면처럼 지구상의 것이 아닌 이상한 암석층으로 가득 차 있다고 전하니 말이다. 거기서 보는 밤하늘의 별은 잊었던 과거를 되살려 주지만, 때로는 현재의 모습을 잊어버리게 하는 양면의 마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바람 불고 추운 날씨에도 후발대를 굳이 텐트 밖에서 떨며 기다리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마중은 너의 동지가 여기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작업이다. 그러니 힘이 들어도 견뎌 내라는 응원이자 너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걱정하지 말라는 보험이다’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선배들이 먼저 정상에 발 도장을 남기고 나면 후배들이 이어받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OB는 YB들이 힘들게 베이스캠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지금이라도 배낭을 들어 줄까 하다가 마음을 접는다. 그것조차도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마중하고 배웅하면서 동화되고 위안받는다.

같은 원정대라도 결과는 제각각이다. 일부는 정상에 올랐고, 또다른 일부는 고산병과 체력 저하로 중도 하산을 했다. 모두 정상을 밟은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모두가 후회 없이 귀국할 수 있었다. 고산병으로 힘들어했던 이가 “나는 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산에서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사람이 좋아서 산에 가는 것이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왠지 뭉클하다.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날은 그저 체력이 제일 힘든, 여러 개의 과정을 이루는 하루일 뿐이었다. 이 책은 ‘또 다른 고산을 오르기 위해 오늘도 동네 뒷산으로 향한다’로 끝을 맺는다. 떠나는 겨울과 다가오는 봄을 만나러 산에 가야겠다. 황태웅 외 13인/김동영 그림/단비/174쪽/1만 8000원.


<끝나지 않을 꿈> 표지. <끝나지 않을 꿈>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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