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잔잔한 위로 건네는 성장 영화 ‘보이 인 더 풀’

물갈퀴 소년과 평범한 소녀 성장기
동화 같은 설정에 현실적 전개
빈틈은 있지만 위로·공감 끌어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2025-05-15 15:21:02

“진정한 독립영화를 인정해준 아카데미에 감사를 표한다. 이 영화는 인디 아티스트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었다. 독립영화는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올해 3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아노라’(2024)로 5관왕에 오른 숀 베이커 감독이 남긴 수상소감입니다. 상업영화와 달리 이윤 확보를 1차 목적으로 하지 않는 독립영화는 영화계 다양성을 제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보이 인 더 풀’은 주목할 만한 작품이지만, 독립영화의 한계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발에 물갈퀴가 있는 소년이 수영선수라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을 그립니다. 극장에서 감상한 후기를 전합니다.


영화 ‘보이 인 더 풀’ 메인 포스터.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보이 인 더 풀’ 메인 포스터.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2007년 여름, 수영을 좋아하는 13세 소녀 석영(이예원)은 고향인 바닷가 시골 마을로 이사 와서 12세 소년 우주(양희원)를 만납니다. 둘은 수영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가까워지고, 석영은 우주의 발에 물갈퀴가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됩니다.

둘은 평생 함께 수영하기로 약속하지만, 타고난 신체적 특징 덕에 우주의 수영 실력은 일취월장하는 반면 석영은 이렇다 할 성장을 하지 못합니다. 독보적인 우주의 실력은 두 사람이 서로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주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우주(이민재)는 물갈퀴가 점점 옅어지는 바람에 기량이 눈에 띄게 하락합니다. 낙심한 우주는 자신의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석영(효우)을 다시 찾아갑니다.


영화 ‘보이 인 더 풀’에서 우주(왼쪽·양희원)가 석영(이예원)에게 물갈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발을 모래로 덮고 있는 모습.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보이 인 더 풀’에서 우주(왼쪽·양희원)가 석영(이예원)에게 물갈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발을 모래로 덮고 있는 모습.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류연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보이 인 더 풀’은 형식상 멜로물로도 구별되지만, 연애 서사나 감정은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영화는 그보다는 결핍을 가진 청춘들의 성장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자는 중학생 시절까지 미술에 관심이 있어 학원도 다녔습니다. 그림은 제법 잘 그렸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이 있는지는 불분명했습니다. 기자 스스로도 미술 계열로 진로를 정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가끔은 ‘미술을 전공한 나’를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처럼 누구나 고민해봤을 ‘재능과 진로’ 문제에서 비롯되는 성장통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유년기부터 수영을 즐겼고 입상 기록까지 보유한 석영은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타고난 진짜 재능을 가진 우주를 보고는 ‘벽’을 느낍니다. 꿈을 접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석영의 모습은 꿈을 좇으며 달려가는 주변인들과 비교될 때마다 초라해 보입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우주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닙니다. 장래를 촉망받게 한 그 재능이 한계에 부딪힐 때, 우주는 오히려 더 큰 좌절을 맛봅니다. 우주를 빛나게 한 그 재능은 오히려 족쇄가 됩니다.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두 주인공은 그러나 좌절만 하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재능을 펼치지 못하거나 꿈을 좇지 않는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영화 ‘보이 인 더 풀’에서 우주(왼쪽·이민재)가 석영(효우)와 대화하는 모습. 둘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주 감정선이 멜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보이 인 더 풀’에서 우주(왼쪽·이민재)가 석영(효우)와 대화하는 모습. 둘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주 감정선이 멜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한때 인터넷에서 ‘어정쩡한 재능은 저주’, ‘어정쩡한 재능이 인생을 망친다’와 같은 표현이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어정쩡한 재능’을 위해 청춘을 바친 경우, 매몰비용이 아까워 그 분야에서 계속 맴돌다가 이도 저도 아닌 성과만 거두게 된다는 겁니다. 많은 누리꾼이 이러한 글에 공감을 나타내며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곤 합니다.

그러나 ‘보이 인 더 풀’은 자기를 비웃는 ‘자조’가 아니라, 자기를 존중하는 ‘자존’에 집중합니다. 재능을 버려도, 꿈을 외면한 채 살아가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 메시지는 특히 석영와 우주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시사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강조됩니다.

영화는 인디영화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물갈퀴를 가진 소년이라는 설정으로 동화적인 느낌을 풍기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이 독특합니다. 열등감, 질투, 좌절 등의 감정을 예민하고 미성숙한 10대의 시선으로 그려 풋풋함이 배가 됩니다. 대단한 임팩트를 주거나 여운이 오래 남는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지는 않지만, 묘한 흡입력과 잔잔한 위로를 안기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편집과 연출, 촬영 모두 깔끔하고 절제미가 돋보입니다. 다만 일부 늘어진다는 인상을 주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 특유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구성과 스토리는 조금 더 아쉽습니다. 다소 느슨하고, 매끄럽지 못하게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중요한 대목에서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캐릭터의 일관성을 해치는 미숙한 언행이 관객 입장에선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영화 ‘보이 인 더 풀’ 메인 포스터.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보이 인 더 풀’ 메인 포스터.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보이 인 더 풀’ 포스터 중 일부는 가장자리를 붉은 빛으로 그라데이션 처리한 숀 베이커 감독의 ‘애프터썬’(2023) 포스터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데, 실제로 바다를 중심으로 목가적이고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점에선 두 작품이 비슷합니다.

바다와 수영장, 수족관 등 청춘을 주제로 한 영화에 어울리는 청량한 배경과 영상미는 ‘보이 인 더 풀’의 관람 포인트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여름을 앞두고 더워지는 지금 날씨와도 어울립니다.

극 중 배경은 부산이 아니지만, 영화의 많은 장면이 부산에서 촬영된 점도 흥미롭습니다. 애초 ‘보이 인 더 풀’은 부산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협력사업인 ‘메이드 인 부산 장편영화 제작지원사업’ 지원작입니다.


제 점수는요~: 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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