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06-03 15:26:24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 같았어요.”
배우 안재홍은 영화 ‘하이파이브’를 이렇게 소개했다. 여느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물처럼 대단하고 비범한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성장기가 작품에 가득 담겨 더 마음이 갔다고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재홍은 “초능력을 하찮게 쓰는 설정이 너무 재미있었다”며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능력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중심인 영화”라고 말했다.
안재홍이 연기한 ‘박지성’은 폐 이식을 통해 어마어마한 폐활량을 갖게 된 인물이다. 시나리오 작가인 지성은 이식 수술 뒤 코로 장풍을 쏘는 능력을 얻는다. 콧바람으로 리코더를 부는 건 물론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순식간에 마시는가 하면, 한숨 한 번에 주변의 물체들을 모두 날려버린다. 그는 “(지성의) 어정쩡한 초능력 사용 방식이 너무 귀엽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며 “능력을 잘 쓰지도 못하고, 쓸모를 찾지도 못하는 인물들이 결국에는 서로를 바꾸는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는 초능력이 없는 평범한 아버지가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를 구하는 신을 꼽았다. 안재홍은 “그 장면이 주는 함축이 컸다”며 “우리 곁의 진짜 히어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그런 분들이 아닐까 싶었다”고 했다.
안재홍은 지성의 능력을 잘 보여주기 위해 외형적으로도 신경을 썼다. 코에서 나오는 장풍을 시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단발머리를 선택했다. 안재홍은 “정식 제안을 받기 전부터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캐릭터와 딱 맞아 떨어졌다”며 “외형적으로도 재미있고, 만화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느껴질 것 같아서 단발머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갖고 싶은 능력으로도 지성의 ‘폐활량 초능력’을 꼽았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저라면 아마 그 능력을 활용해서 수영이나 프리다이빙을 했을 것 같죠. 영화 ‘아바타’에서 나오는 물의 종족처럼 살아가는 상상도 해봤고요.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으니까 물에 더 오래 머무르면서 살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그는 ‘하이파이브’가 스크린에서 더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안재홍은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극장을 위한 영화란 이런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소리, 음악, 화면이 맞물리는 굉장한 체험이 얼마나 짜릿한지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요구르트 카트를 타고 벌이는 추격 장면, 콧바람 한 번에 전단지가 날아오르는 순간,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는 타이밍까지 모두 극장에서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단다. 그는 “그 장면들을 만들기 위해 그린 스크린 앞에서 카트에 와이어까지 매달고 촬영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잘 나왔더라”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의미를 여실히 느끼게 할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안재홍은 대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건국대 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연기에 꿈을 품었다. 2009년 영화 ‘구경’으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올해로 데뷔 16년을 맞았다. 그동안 영화 ‘족구왕’에서 꿈을 간직한 청춘의 얼굴을 그렸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선 푸근하고 따뜻한 동네 오빠로 변신해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톡톡히 찍었다. 이후 드라마 ‘멜로가 체질’ ‘마스크걸’ ‘닭강정’과 영화 ‘리바운드’ 등 출연작마다 카멜레온 같은 얼굴을 펼쳐내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안재홍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어떻게 만날지 저도 궁금하고 기대된다”며 “기회가 된다면 연출에도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