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07-05 15:00:00
버스와 트럭의 중간 형태를 띤 필리핀의 지프니,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태국의 삼륜 자동차 툭툭. 두 나라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용해 봤음 직한 동남아 국가 대중교통 수단의 실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부산에 있다.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백병원 바로 뒤에 있는 KF아세안문화원. 10개국을 회원으로 둔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아세안’(ASEAN)과 한국을 잇는 문화 플랫폼을 자부하는 곳, KF아세안문화원으로 들어가 보자.
동남아 호텔에 온 듯한 로비
툭툭을 지나 문화원 1층 로비로 들어서면 잎이 넓은 열대 나무를 배경으로 라탄 소재 소파와 그네 의자가 방문객을 반긴다. 잠시 부산을 떠나 어느 동남아 국가의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아세안 회원국인 이들 10개국은 특유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빼어난 문화유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1층 로비에서는 첨단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다양한 현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영상을 통해 아세안과 처음 인사하는 장이다.
벽면의 대형 라이브 미디어월에서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3D 환경으로 구현된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열대우림, 필리핀의 코르딜레라스 계단식 논과 투바타하 산호초 자연공원 등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보호받고 있는 곳을 눈앞에서 실시간 만나는 환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VR라운지’에서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라오스의 왓푸, 베트남의 후에 등 유적지를 비롯해, 싱가포르 도심의 보타닉가든까지 헤드셋 착용만으로 순간 이동해 둘러볼 수 있다. 여행 전 방문한다면 생생한 현지 모습을 깊이 있게 미리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디지털 놀이터’에서는 브루나이와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필리핀 5개 국가의 대표적인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디지털 실감 영상으로 재현되는 각국의 전통 의상을 갖춰 입고 축제 현장으로 풍덩 빠져드는 경험은 어린이들에게 분명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만하다.
건축전시장에서 영화를 만나다
1, 2층에 각각 자리한 두 곳의 전시실에서는 연중 운영되는 상설전시회와 주제별로 개최되는 기획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문화원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이야기하는 아세안: 종교, 예술, 삶’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10개국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살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자개와 똑 닮은 베트남의 자개 공예품엔 왕조시대 국가시험에 합격한 관리의 금의환향 모습이 새겨져 있다. 작품 재료뿐만 아니라 과거급제를 연상시키는 내용까지 조선시대와 너무 유사해 놀라울 정도이다. 전시실에 상주하고 있는 해설사는 베트남과 우리나라가 같은 유교문화권으로서 비슷한 풍습이 많다고 설명했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차양과 둥근 모서리: 동남아시아의 아르데코와 모더니즘 건축의 오늘’전이 11월 9일까지 열린다. 인구 증가와 급격한 도시화, 첨단 기술 발달로 변모하고 있는 건축 양식과 미학을 통해 아세안의 현대 도시 형성과 도시민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현대 건축을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오는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 개최 기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가 특히 눈길을 붙잡는 건 사진과 모형 등 일반 전시물에 단편영화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전시에 등장하는 9편의 영화는 부산영상위원회가 진행하는 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FLY)의 졸업생 대상 공모를 통해 제작된 작품들이다. 부산영상위는 영상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선발된 9명의 감독에게 한-아세안 협력기금 후원으로 최대 5000달러의 제작 지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아시아 영화의 미래 인재들이 만든 영화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아파트촌 속에 자리한 문화 옹달샘
KF아세안문화원은 2014년 12월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의 합의로 2017년 9월 문을 열었다. 부산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외교부가 건물을 세운 국유재산으로,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운영하고 있다. KF아세안문화원은 아세안 국가 밖에 설립된 세계 유일의 문화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아세안 국가 고위 공직자나 외교관, 혹은 공무원 연수단이 부산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르는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문화원은 또 부산과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아세안 국가 출신들의 사랑방 노릇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 시민에게 문턱이 높은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전시회와 시민강좌, 영화제 등 연중 개최되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아세안을 알리는 문화 플랫폼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전시회뿐만 아니라, 미얀마 문화의 날(5월), 부산외대 특수외국어사업단과 함께하는 온라인 언어강좌(7월), 국내 중등 교원 직무연수(8월) 등을 시행했거나 계획하고 있다. KF아세안문화원 관계자는 “넷플릭스 영화 등을 통해 아세안 국가 문화를 접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요리교실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강좌 인기가 높다”고 귀띔했다. 이어 “무더운 여름, 오가다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하는 것도 환영한다”며 적극적인 이용을 당부했다.
아세안 국가에 대한 문화 갈증을 단번에 해결해 줄 옹달샘 같은 KF아세안문화원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 주말 오후 7시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 단체관람 신청은 연중 가능하다. 기타 상세한 내용은 홈페이지(ach.or.kr)를 참고하거나 전화 051-775-2000번으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