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 설계 공모, 5개사가 절반 '독식'…'겹치기 심사도' 여전

‘연간 12번만' 규정에도 20∼30회 심사
건축사 94% "설계공모서 불공정 느껴"
"심사위원 선정 방식부터 바꿔야" 주장도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2025-07-21 10:22:49

대표적 공공건축물인 정부세종청사. 연합뉴스 대표적 공공건축물인 정부세종청사. 연합뉴스

도서관, 학교, 주민센터 등 공공건축의 '얼굴'을 결정짓는 설계공모에서 상위 5개 업체가 절반을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사위원 역시 같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위촉돼 공공건축 설계공모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는 공공건축 설계 심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2023년부터 심사위원 1인이 1년에 12번 이상 심사를 맡지 못하도록 했지만, 한 명이 20번 이상 겹치기 심사를 하는 사례가 여전했다.

21일 조달데이터허브에 따르면 조달청은 2023∼2024년 공공건축 237건(책정 설계비 2223억 8000만 원)에 대한 설계공모를 진행했고, 이 중 상위 5개 업체가 따낸 사업은 설계비 기준으로 50.2%(1116억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장 많은 수주를 기록한 A사는 당선 건수가 28건(11.8%), 설계 수주액은 362억 원(16.3%)이었다. 2위인 B사는 21건(8.8%), 271억 원(12.2%) 규모를 수주했다. 1∼2위 회사가 설계공모 5건 중 1건을 가져간 셈이다. C사(221억 원·14건), D사(141억 원·3건), E사(121억 원·14건)의 수주액이 뒤를 이었다.

정부가 2020년부터 설계비 1억 원 이상(공사비 23억 원) 공공건축은 설계공모를 거치도록 의무화하면서 2023년 933건, 지난해 976건 등 매년 1000채 안팎이 공모를 통해 지어지고 있다. 조달청은 지자체, 공기업 등 전문 인력이 부족한 발주처를 대신해 공공건축 설계공모를 대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쏠림 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상위업체 독식 현상이 학연, 지연 등 인맥을 동원한 '영업' 경쟁의 결과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건축사협회가 정회원 1168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2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3.9%는 '자신이 참여한 설계공모에서 불공정을 느꼈다'고 답했다. 불공정을 느낀 이유(중복응답 가능)로는 △심사위원과의 사전 접촉 및 금품 제공(61.5%) △심사위원의 전문성·경험 부족(52.6%) △특정 학교나 지역에 편중된 심사위원 구성(51.9%) △지침 위반에 대한 제재 미흡(44.9%) △심사 과정 또는 결과 공개 미흡(43.5%) 등이 꼽혔다.

이러다 보니 신진 건축가나 중소업체는 설계공모를 기피하는 경향마저 생겼다.

서울 소재 한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영업력이 뛰어난 회사에서 조달청 설계공모를 쓸어가다 보니 '해봐야 소용없다'면서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반면, 설계공모 과정이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는 서울시, 파주시, 서울교육청 공모에는 수십 개 업체가 몰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달 당선작을 발표한 화랑대철도공원 커뮤니티센터 설계공모에는 244명이 참가 등록을 하고 60명이 작품을 제출했다.

정부는 설계공모의 공정성과 질을 높이기 위해 2023년 4월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을 개정해 심사위원 1인이 연 12회 이상 심사를 보지 못하도록 제한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설계공모 빅테이터 플랫폼인 '스코어러' 자료를 보면, 지난해 위촉 횟수가 가장 많은 심사위원은 A교수로 한 해 24번 심사를 봤다. 설계공모 심사위원으로 연 12회 이상 위촉된 사람은 지난해만 33명이었으며, 20회를 넘긴 위원도 4명 있었다. 지침 위반 때 별도의 제재 규정이 없는 데다, 심사위원 위촉 이력 등을 공유할 수 있는 공공건축 통합관리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벌어지는 일이다.

또 다른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심사위원의 전문 분야가 프로젝트의 성격과 맞지 않는데도 심사를 보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공정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설계공모 심사위원 선정과 관련한 불신의 목소리가 특히 높다.

통상 공공 발주처들은 교수·공무원·건축사 등으로 이뤄진 심사위원 풀(Pool)을 구성해 두고 활용한다. 문제는 이러한 풀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심사위원을 하겠다고 손을 드는 '자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 '공정 건축설계공모 추진위원'을 맡고 있는 이승환 건축사는 "자천을 통해 들어간 교수 중심으로 되어있는 각종 공공기관, 공사, 공단의 설계공모 심사위원 풀을 리셋해야 한다"며 "심사위원의 건축 작품, 수상 실적, 논문, 전문 분야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설계 공모 특성에 따라 검색 조건을 달리하며 심사위원을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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