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7-21 09:00:00
“감동적입니다.” “아름답습니다.” “훌륭합니다!”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공연을 관람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스바라시이!”(훌륭하다, 근사하다, 멋지다)를 되뇌며 극장 문을 나섰다. 예술로 교류하며 평화를 모색하는 조선통신사의 현대적 가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일본, 양국 극장과 공연 관계자들은 “이번 일본 공연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라는 말로 ‘유마도’의 향후 행보에 강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나이 지긋한 재일한국인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출연진이 극장 로비로 나와 수많은 관객과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훈훈한 감동이었다. 일본에서도 흔치 않은 광경이다.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이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그린 소설 <유마도>(원작 강남주)를 모티브로 통신사 사행길에 오른 무명 화가 변박이 그린 그림 ‘유마도’의 비밀을 파헤치는 무용극 ‘춤, 조선통신사 유마도를 그리다’로 일본 무대에 데뷔했다. 2008년 국립부산국악원이 개원한 이래 무용극으로 해외 공연을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난 19~20일 일본 요코하마 KAAT가나가와예술극장 홀에서 총 2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이정엽 원장은 “영남의 전통 춤과 조선통신사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맞춰 일본 현지 공연을 추진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뜻깊다”면서도 “1200석 극장을 가득 채우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라고 전했다. 이번 공연은 이틀 공연에 1000여 명이 관람했다. 이 원장은 또 “앞으로는 이 같은 해외 공연을 추진할 때 기획 단계에서부터 홍보 등 매표 전략까지 충실히 세워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극장 홀이 있는 건물 5층 입구 로비에선 부산문화재단(대표이사 오재환) 주관으로 무용극 ‘유마도’로부터 영감을 받아 문미순 작가가 제작한 ‘한지 인형’을 전시한 ‘한지, 조선통신사를 그리다’도 함께 열려 입장하는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오 대표이사, 조정윤 문화시민본부 본부장 등도 요코하마로 날아와 첫날 공연을 관람했다. 오 대표이사는 “이전에 한국에서도 본 작품이지만, 일본 현지에서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다”면서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가 2010년 부산문화재단과 통합된 뒤 지금까지 이어 온 조선통신사 여정이 떠오르고, 고인이 되신 강남주 원작자도 떠올라 가슴 뭉클했다”고 말했다. 고 강남주 원작자는 이번 요코하마 공연에 동행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지난달 25일 타계했다. 평화에 대한 염원과 예술 교류에 남다른 신념을 가졌던 고인의 삶을 이번 공연은 한 번 더 되돌아보게 했다.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라는 특별한 모멘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무용단과 일부 기악단·성악단 등 60여 명의 출연진과 제작진 등 100명 가까운 이들이 해외 공연을 진행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무대장치 중 하나인 조선통신사 일행이 탄 배만 하더라도 일본 현지 극장에서 회전 무대 사용이 여의치 않아 모터를 달아서 돌리는 방법을 새로 고안해 지난 봄 부산 공연에서 첫선을 보인 뒤 이번에 실행했다. ‘유마도’는 2019년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당시 예술감독이던 정신혜 신라대 교수에 의해 초연했고, 2023·2024·2025년 3년 연속 무대에 올리면서 관람객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정 교수는 이번에 ‘유마도’ 총감독을 맡았다. 그는 “2019년 초연 때부터 일본 공연을 목표로 했고, 도쿄에 있는 주일한국문화원 등과도 구체적인 협의가 오갔지만, 그해 겨울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게 무산돼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회고하면서도 “어쩌면 이게 끝이 아니라 뭔가 이제 한 발을 뗐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번 공연을 공동 주최한 KAAT가나가와예술극장 호리우치 마히토 극장장은 “전통의 현대화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항상 고민이 되는 지점인데, 지난해 ‘유마도’를 처음 접하면서 상당히 놀랐다. 한국 전통음악과 춤을 녹인 ‘유마도’가 현대 공연예술로서도 손색이 없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어서 일본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부산 공연 때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의 라이브 연주가 일본 공연에서 빠진 점은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호리우치 극장장은 지난해 부산에서 처음 이 작품을 접한 뒤 초청 의사를 밝혔다. KAAT가나가와예술극장은 상주 예술단체는 없지만, 예술감독 체제로 운영하며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제작극장 중 하나이다. 현대 연극과 현대무용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국립극장과 일본예술문화진흥기금의 경영 책임을 맡고 있는 일본예술문화진흥회 하세가와 마리코 이사장 일행의 둘째 날 공연 관람도 일본 문화예술 관계자 사이에선 화제였다. 일본 문화예술계 인사 중에서는 최고위급이었기 때문이다. 하세가와 이사장은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이었다”는 공연 소감과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에도 부산을 찾아 국립부산국악원과 업무협약(MOU)을 맺는 등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연 교류를 펼치기로 합의했다.
전 일본 문부과학성 행정관을 지낸 하라다 요시쓰구 씨는 1시간 이상 걸리는 하마마쓰시(시즈오카현)에서 공연을 보런 온 경우였다. 하라다 씨는 “일본의 외딴 절에서 200여 년 전 조선의 화가, 그것도 동래의 화가였던 변박의 그림이 발견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어떤 사연인지 너무 궁금해서 공연을 보러 왔는데 정말 좋았다”고 말한 뒤에도 감동의 여운을 주체하지 못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일반재단법인 민주음악협회 마쓰오 도시아키 국제홍보실장은 도쿄에서 참석했는데 “영상과 춤의 조합, 스피디한 진행, 그리고 무용단원의 완벽한 몸짓이 딱딱 맞게 떨어진 데다 박력과 섬세한 묘사가 어우러져 대단히 훌륭하고 재밌었다”며 “또 다른 기회에 계속 공연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 요코하마 공연에선 2장과 3장에서 조선통신사가 탄 배가 부산과 대마도 사이의 가장 험난한 곳, 물마루에 도달했을 때, 성난 바람과 비가 배를 마구 흔들 때 추는 ‘풍백’(風伯)의 춤 대목에 나오는 홀로그램과 혼신을 다하는 무용수의 ‘칼군무’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환호성까지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해 주일한국문화원 최병미 기획조정부장은 “일본 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이 높은 편”이라면서 “거기에 리얼리티까지 느껴지니까 주인공 변박보다 풍백의 춤이라든가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연상되는 무용수의 춤에 쏠리는지 모르겠다”고 분석했다. 그러자 정 총감독은 “현실과 이상, 사람과 신, 상반된 이 두 가지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립부산국악원은 요코하마 공연에 이어 24일에는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동래의 춤: 조선에서 일본까지’도 함께 개최한다. 조선통신사 출발지인 ‘동래’ 지역의 전통춤을 중심으로 ‘춘앵전’, ‘진주교방굿거리춤’, 황무봉류 ‘산조춤’, ‘굿과 금회북춤’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요코하마(일본)=김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