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1-06 11:04:12
부산 해운대구 미포(달맞이길 62번길 29)에 위치한 평범한 건물 1층에 색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나지막한 천장과 벽, 앞으로만 트인 침침한 주차장이 작가와 젊은 건축가의 협업으로 현대미술 실험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가로 8.5m, 세로 1.8m의 미디어아트가 주차장 벽 하나에 멋지게 자리 잡았다. 70여 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영상은 조용한 골목을 순식간에 ‘힙한’ 공간으로 바꾸었다. 7개월여를 준비한 이 구조물은 지난 4일 마침내 공개됐다.
이 같은 프로젝트를 완성한 이는 부산 출신 신진 건축가 임태현과 미국의 저명한 현대미술가인 안지올라 처칠이다. 미국 카네기 멜런 대학교 건축학과 5학년에 재학 중인 임태현은 7개월 전 고향 부산을 찾아 미포에서 식사했다. 그 때 침침해 보이던 주차장에 약간의 아이디어만 보태면 건물은 물론 주변 골목의 인상까지 달라 보이게 할 수 있겠다고 말했고, 아이디어는 좋은 기회를 만나 마침내 현실화할 수 있었다.
임 건축가는 “내가 생각하는 건축은, 있는 건물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창조하는 것”이라며 “부수고 새 건물을 짓기보다 있는 건물들을 조금만 바꾸면 트렌디한 느낌으로 만들 수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의미 있는 연결을 끌어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임 건축가는 예술가의 작품을 활용하고 싶었고 아는 교수님의 소개로 뉴욕대 예술학과 종신 교수를 지낸 예술가, 처칠 교수와 연결되었다. 처칠은 1922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20세기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추상예술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 명망 높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54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3년에는 이탈리아 베니스 시장으로부터 베니스 골든 라이온상을 받으며 예술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들의 선택은 이른바 ‘키네틱 벽화’였다. 벽면에 움직이는 영상을 표현하려 한다면 흔히 LED 영상 패널을 사용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좀더 가성비 높은 방법을 택했다. 주차장 벽에 나무 패널 3개를 붙이고, 빔프로젝터로 패널에 영상을 투사하는 게 전부였다. 영상에는 처칠의 작품 70여 점이 등장한다. 임 건축가가 직접 작품을 골랐다.
처칠은 10인치 크기의 종이에 그림을 그린 후 수십 개의 그림을 붙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하나의 작품이 패널 전체를 가득 채우기도 하고, 때로는 각각의 패널마다 다른 작품이 비춰지는 등 다양한 연출도 가미했다. 이렇게 구성된 처칠의 작품은 오는 6월에 개막하는 이탈리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기간 중 현지에서 소개될 예정이며, 그에 앞서 5월에는 미국 뉴욕 갤러리 전시도 예정돼 있다.
한편, 이후 미포 주차장 ‘키네틱 벽화’에서는 이번 처칠의 작품 외 다양한 부산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들도 같은 방식으로 소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