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 2025-01-07 18:13:58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의 여파로 세입자 권리를 지키는 수단인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가 부산에서 3년 만에 15배나 급증했다. 수도권은 이미 2023년 정점을 찍었지만, 전세사기 피해와 역전세가 시차를 두고 나타났던 부산은 지난해 최다 수치를 경신했다. 아파트 공급 절벽이 예고된 만큼 앞으로 전세난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7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지역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집합건물 기준)는 모두 5524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부산의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366건으로 3년 만에 15배 넘게 증가했다. 대법원이 2010년 임차권 등기명령 건수를 공개한 이후 최다 수치다.
임차권 등기명령은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임차권)를 해당 부동산 등기에 기록하는 행위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이사를 하더라도 법원 명령에 따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전국적으로도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세입자들의 신청 건수는 줄었으나 부산과 경북, 전북 등 지방에서 신청 건수가 급격히 늘었다. 수도권과 시차를 두고 나타난 지방의 역전세, 전세사기 피해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뜻이다. 경북의 신청 건수는 2023년 394건에서 지난해 979건으로 2.5배 증가했고, 전북은 432건에서 934건으로 2.2배 늘었다. 전세사기로 고통 받는 부산 지역 피해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부산 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는 모두 2765명이다. 직전 달에 비해 86명이 늘어난 것으로 서울, 경기, 대전, 인천에 이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많았다.
문제는 앞으로 전세난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데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2월 다섯째 주 부산의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03% 상승했다. 부산 아파트값은 2022년 6월 셋째 주부터 상승 전환 없이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전셋값은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 현상이 현실화하는 만큼 전셋값이 앞으로 더 뛸 가능성이 있다. 올해 입주 예정인 부산의 신축 아파트는 9110세대로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실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해운대구와 수영구, 동래구, 남구 등에서는 내년에 예정된 입주 물량이 한 건도 없다. 아파트 전셋값이 오르면 청년 등 서민들의 주거난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잇따른 대규모 전세사기 여파로 오피스텔이나 빌라는 임대료와 무관하게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좁은 전용 면적에도 부산시청 앞 행복주택이 10 대 1 가까운 청약 경쟁률을 기록한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동아대 강정규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국적으로 앞으로 수년간 공급 부족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임대료가 올라 전세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부동산 매매 시장에까지 적잖은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