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구(1956∼1982), 박종팔, 김환진, 박찬영 등 수많은 명복서를 길러낸 김윤구 전 동아체육관 코치 겸 트레이너가 지난해 11월 19일 경기도 군포시 남천병원에서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최철 관장 등 복싱계 지인들이 20일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향년 70세.
1955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대 중반부터 김현치(1945∼2024) 동아체육관 관장의 권유로 선수 생활은 하지 않은 채 곧바로 복싱 코치 겸 트레이너가 됐다.
고인의 역할은 선수가 내뻗는 주먹을 미트(글러브)로 받아내는 미트 트레이너였다. 링 위에서 선수를 길러내는 주역을 한 셈이다. 지인 이상봉 씨에 따르면 고인은 끝에 스펀지를 감은 플라스틱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선수들의 순발력을 기르려고 애썼다고 한다.
이때 배출한 대표적인 선수가 1982년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KO패한 뒤 나흘 만에 숨진 김득구 전 동양(OPBF) 라이트급 챔피언이다.
20대 중반의 도전자 김득구는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챔피언 레이 맨시니와 맞섰다. 김득구는 경기 초중반까지 맨시니와 호각세의 접전을 펼쳤으나 후반 체력이 떨어지면서 14라운드에 맨시니의 결정타에 무너지고 만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링 위의 비극’으로 남은 것이다.
고인은 2023년 1월 1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출연해 “운동을 가르치다 보면 한눈에 나타나요. ‘저 놈 가르치면 선수 되겠다’. 김득구 선수가 말도 잘 듣고 열심히 했어요. 다른 선수들보다 근성이 있어요. 깡이 있다고 할까? 농땡이를 잘 안 쳐요. 혼자라도 열심히 하고 그래요. ‘아, 요놈은 열심히 시키면 되겠다’ 싶었죠”라고 회상했다.
이 밖에도 김환진 전 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박종팔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박찬영 전 WBA 밴텀급 챔피언 등을 길러내며 ‘한국 최고의 미트 트레이너’로 꼽혔다.
고인은 동아체육관이 문을 닫은 뒤 2000년대 들어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동아권투체육관’을 차렸지만, 복싱 인기가 사그라든 탓에 “4라운드 프로복서도 배출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고 지인 김광수 관장이 전했다.
특히 고인이 배출한 선수 중 박종팔 전 챔피언의 인생사를 빼놓을 수 없다. 인생사에서 박종팔처럼 롤러코스터와 같은 오르내림을 겪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박종팔은 1980년대 한국 선수 최초·유일의 중량급 세계챔피언 기록을 2개나 수립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은퇴 후 사업 실패와 사기 피해로 9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 높이 날았던 만큼 뼈아픈 추락에도 희망을 놓지 않은 그는 10여년 전부터 경기 남양주시에서 소소한 행복을 일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