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6-20 07:00:00
지난달 24일 부산 해운대구 송정의 홀리라운지에서는 ‘이모카세 1호 김미령 요리사와 함께하는 부산 제철 바다 한상‘이 차려졌다.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한 ‘5월은 바다 가는 달’ 캠페인의 하나였다. 점심·저녁 각 30명을 모집한 이번 이벤트에는 3300명이 지원해 무려 1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점심은 내국인 참여, 저녁은 외국인 참여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수준 높은 한식을 맛보고 안팎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김미령 씨는 넷플릭스 요리 경연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이모카세 1호’로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그런데 요즘 유행한다는 이모카세에 대해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그 세계에 살짝 들어가 봤다. 대체 이모카세란 무엇인가.
‘이모카세’는 일본어 ‘오마카세(맡긴다)’와 식당 여성 사장이나 여성 종업원을 친근하게 부르는 우리말 ‘이모’가 결합한 신조어다. 이모카세라는 단어의 탄생은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 일식은 물론이고 중식이나 한우식당을 비롯해 디저트 카페에서까지 오마카세가 유행하는 현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모카세는 요리사에게 메뉴를 온전히 맡기는 오마카세처럼 식당 이모가 그날그날 신선한 재료나 제철 음식을 알아서 푸짐하게 차려주는 식사를 뜻한다. 이모카세는 2021년께부터 언론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젊은 세대가 넉넉한 인심과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식당들에 대해 눈을 뜬 것이다.
격식 있는 분위기의 오마카세와는 달리, 이모카세는 좀 더 편안하고 푸근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오마카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해산물, 육류,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요리가 연이어 나온다.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대감을 가지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미식의 즐거움이 있다. 이모카세는 술과 함께 즐기기에 좋은 안주류가 많이 나와 특히 주당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가격대는 보통 1인당 2만 원~5만 원 선이다.
이모카세에 대해 알면 알수록 통영 다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둘 다 술과 함께 즐기기에 좋은 푸짐하고 다양한 요리를 정해진 가격에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모카세는 코스처럼 한 가지씩 순서대로 나오지만, 다찌는 다양한 요리를 한꺼번에 상차림으로 제공한다는 점은 다르다. 혹자는 이모카세를 ‘부산식(서울식) 다찌’, 통영 다찌를 ‘해산물 중심의 원조 이모카세’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모카세는 오마카세라는 일본식 이름을 차용했지만 원래부터 있었던 우리의 음식 문화인 셈이다.
먼저 지난달 송정에서 열린 ‘이모카세 1호’ 김미령 요리사의 요리를 들여다봤다. 이날 김 요리사는 완도전복회, 부산장어구이, 보쌈, 제주흑돼지로 끓인 돼지국밥, 잡채, 전 등의 한식을 내놨다. 이날 요리 가운데 특히 흑돼지로 만든 국밥은 수수하면서도 품격 높은 맛으로 극찬을 받았다. 김 요리사는 “부산 돼지국밥을 토대로 더 맛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게 뭔가 고민했다. 부산 돼지국밥은 고깃국물에 그저 고기를 얇게 썰어서 내는 게 대부분이다. 요즘 맛있는 얼갈이배추와 쌈배추, 양파, 무 등을 넣어 돼지고기 특유의 기름지고 느끼한 것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빅데이터 기반의 맛집 검색 및 추천 서비스인 ‘다이닝코드’에 따르면 부산 돼지국밥 맛집은 931곳이고, 1000곳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 요리사가 이들 돼지국밥집들이 솔깃하게 생각할 부산의 대표적 향토음식 돼지국밥의 고급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김 요리사는 이번에 부산에 온 이유에 대해서도 “음식은 지역 문화를 표현하는 언어로, 지역마다 뭔가를 살려내자는 의미로 참가하게 됐다. 한식에 대한 인식을 높여 주는 자리이기도 해서, 한식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행사는 많이 참여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날 했던 이야기 중에 특히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그는 “한식은 가깝고, 편하고, 일상에서 항상 접하기 때문에 소중함에 대해 더 인식을 못 하는 것 같다. 주위에 항상 머물러주는 것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우리가 한식을 더 사랑스럽고 예쁘게 생각하고 안아줘야 한식이 발전할 수 있다”라고 말해 주변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김 요리사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업 부도 후 뇌출혈로 쓰러지자 경동시장에서 국수 장사로 나선 어머니를 도와 배추와 파를 다듬는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까지 건강이 안 좋아지자, 20대 때부터 가게를 책임졌다고 한다.
‘다이닝코드’에 따르면 부산에서 이모카세 식당은 모두 78곳에 달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먹어보지 않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SNS와 주변 전문가들의 추천, 그동안 맛집 기자로서의 경험 등을 통해 가격대별로 다른 이모카세 세 곳을 방문했다.
■하이엔드급 ‘PRO양곱창’
“여기는 정말 독특한 식당이네요.” 이날 동행한 분의 첫 마디였다. “이모카세가 아닌데, 사람들이 자꾸 이모카세라 카데.” PRO양곱창 이종림 대표는 살짝 불만이라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PRO양곱창이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영업한 지 23년. PRO양곱창은 어쩌면 이제서야 ‘이모카세’라는 똑떨어지는 이름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전에 PRO양곱창을 처음 찾았을 때 기억이 난다. 이 대표는 “음식은 공식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되고, 순간 포착을 잘해야 한다. 다른 집에서 하는 거는 나는 안 한다”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강산이 변할 만큼 시간이 흘렀고, 장소도 바뀌었지만 맛은 그대로였다. 아니, 더 깊어졌다고 해야겠다.
마시는 물부터가 달랐다. 라임과 레몬그라스가 들었다. 해외로 음식 여행을 다닌 경험이 바탕이었다. 길고도 달콤했던 여정은 달걀 장조림부터 시작되었다. 빈속에 술 먹지 말라는 마음이 담겼다. 빨간 식탁보 위의 장어구이는 레드카펫을 걷는 영화배우처럼 빛이 났다. 이날 생선회로는 삭히지 않은 생 홍어가 나와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홍어 애(간)는 부드럽고, 기름지고, 고소했다. 애간장이 녹는 맛이 미안하게도 행복했다.
평범한 나물까지 특별했다. 멀리 울릉도에서 명이와 전어(전호) 나물 첫물이 나면 바로 알려오고, 득달같이 달려가는 정성 덕분이었다. 두릅에 전복까지, 맛난 것은 다 튀겨 먹었다. 이날 메뉴 중 재료비로 따지면 킹크랩이 가장 비싸겠지만, PRO양곱창의 시그니처 메뉴는 양고기 프렌치 랙이다. 실수로 탄생했다는 특제 크림소스는 특급호텔의 민트젤리소스를 부끄럽게 만든다. 식재료비가 50~60%로 말도 안 되게 높다. 주방장 안 쓰고, 직접 장 보고, 배달 안 하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 대표는 음식점을 하느라 막상 자녀들 밥을 제대로 못 챙겨줬다고 미안해했다. “엄마는 음식에 미쳐서 자식들은 늘 뒷전이었다. 우리한테 뭘 해줬나?”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슴이 많이 아팠단다. 그랬던 막내 딸이 요리를 전공하고 서울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길을 걷고 있다니, 요리는 운명이었을까. 유명인들까지 다투어 칭찬하는 음식의 맛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가격대를 고려했을 때 현재의 식당 환경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 1인 7만 원부터. 부산 해운대구 중동1로 45.
■트랜스포머형 ‘보그호프’
‘보그호프’라니 이름을 잘못 봤나 싶었다. 시작은 호프집이었다. 하지만 요리하길 좋아하는 사장님이 손님이 안주를 주문하기 전에 추천 안주를 권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모카세로 진화했단다. 비율로 따지면 이모카세 손님이 80%, 오후 9시가 넘으면 2차 맥주 손님이 많아지는 트랜스포머형 가게다. 이모카세에 반한 손님이 맥주 손님으로 다시 찾아 선순환하는 구조다.
나물 3찬을 시작으로 감자, 고구마, 옥수수, 땅콩, 김밥, 메밀묵, 바나나, 오이, 샐러리까지 건강 밥상이 한상 깔렸다. 빨강, 파랑, 노랑의 조화에 눈이 황홀해진다. 세상에 보기 드문 건강 술상이 아닌가. 소주, 맥주 같은 주류가 시원한 아이스 버킷에 담겨 나오니 주당으로선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진다. 미나리 수북하게 쌓인 삼겹살이 나오는가 하면, 잘 삭힌 홍어가 뒤를 잇는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잠자코 가게 법도를 따라가 본다.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통오징어 숙회를 그 자리에서 잘라주고, 꼬막은 먹기 좋게 발라준다. 찰진 여수 호래기와 멍게, 아카무스 구이에 장어구이, 아나구회까지 정신 없이 먹었다. 막판에 나온 오뎅탕 국물까지 깊고도 시원해서 좋았다. 삶은 달걀과 감자, 파전에는 다행히 손을 대지 않았다. 남은 음식은 모두 싸 가서 다음날 아침 식사로 먹었더니 여러 모로 뿌듯했다. 최상희 대표는 “내가 해물을 좋아하는데 냉동은 절대 안 쓴다. 매일 장을 보고 김치도 일주일에 두세 번 담근다. 집에서 식구들이 먹는 음식과 똑같다”라고 말했다. 1인 3만 5000원. 부산 남구 수영로196번길 18.
■2만 원의 행복 ‘제대로 술한상’
서구에서 발이 넓기로 소문난 토박이 지인의 소개로 이 집을 알게 됐다. 동아대 병원 앞인데 정작 동아대 병원 직원도 잘 모르는 숨은 맛집이었다. ‘제대로 술한상’이라니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싶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모습인데, 뜻밖으로 이제 2년 가까이 된단다. 통영 다찌나 실비집을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시류를 타고 이모카세로 불리게 됐다고 했다. ‘주인장 마음대로’라고 입구에 크게 붙은 문구 그대로다. 처음에는 낮에 한식 뷔페도 했지만, 지금은 저녁 이모카세 영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음식에 자신이 있고, 양도 아낌없이 준다는 의미로 읽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인당 2만 원 가지고 세상 어딜 가서 이렇게 잘 먹을 수 있나 싶다.
죽으로 빈속을 달래주며 향연이 시작한다. 나물 반찬 네 종류 깔린 뒤에 먼저 수군(水軍)이 진격한다. 오만둥이, 뿔소라, 꼬막, 고둥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입맛을 돋우는 병사들이다. 몸값 비싼 양념게장까지 초반 기선 제압에 나섰다. 새우를 비롯해 각종 튀김이 사발로 그득하게 나오니 한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육에 굴젓을 올려 먹은 건 처음인데 금상첨화였다. 주인장이 직접 정성껏 발라주는 닭요리에 느끼해질 무렵이면 홍게찜이 등장한다. 메뉴는 그때그때 바뀌지만, 항상 즉석에서 준비하니 맛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멀리 가서 먹었던 통영 다찌보다 낫다는 평가다. 강리영 대표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고민하면서 정성을 많이 쏟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라 손님이 많이 오는 게 남기는 거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1인당 2만 원. 부산 서구 대신공원로 3-5.
■이모카세, 위생과 시설 한계 넘어야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대형 한식당에 다녀왔다. 대형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처럼 곰탕, 돼지국밥, 밀면, 칼국수 등을 별도의 매장에서 골라 먹도록 하고 있었다. 뜻밖이었던 것은 셀프식당 콘셉트였다. 주문은 태블릿, 서빙은 로봇, 퇴식까지 손님이 셀프로 해야 했다. 먹고 나니 잘 먹었다는 느낌보다는 배식받는 느낌이 들어서 개운치가 않았다. 이 같은 셀프식당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으로 인간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슬며시 걱정도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모카세는 셀프식당과는 반대의 위치에 있다. 단순한 한 끼의 식사 제공을 넘어 이모와의 소통과 인심이 이모카세의 핵심 매력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이모’인지는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모는 엄마 같은 친근감을 준다. 바쁜 현대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관계에서 오는 따뜻함을 추구하면서 이모카세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모카세는 아직은 공식적인 요리 장르나 용어가 아니다. 유머러스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출발한 B급 문화 코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오히려 새로운 외식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흑백요리사에서 ‘이모카세 1호’로 출연한 김미령 셰프의 성공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모카세는 손맛과 인심에 의존해 일관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주로 노포에서 영업하는 특성상 위생이나 시설 측면에서도 다소 아쉽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갖춘다면 이모카세는 독특하고 의미 있는 외식 문화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번 이모카세편에서 아쉽게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해운대 좌동에 가면 중년의 남자 사장이 요리는 물론이고 통기타 음악까지 서비스하는 아재카세 '삼십삼프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