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2025-05-18 08:00:00
‘육아는 장비발’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육아용품 하나가 육아의 난도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온몸으로 제품 효용을 느낄 수 있기에 육아용품은 소비자 호불호가 그대로 반영되는 냉정한 시장이다. 반대로 해석하면 소비자 니즈만 잘 파악해 호응을 얻는다면 입소문만으로도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큰돈 들여 마케팅을 하지 않고도 입소문만으로 전국 육아인 마음을 사로잡은 기업이 부산에 적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말랑하니(주), (주)소셜빈, (주)야야, 바이맘(주), (주)굿대디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기업은 자사 제품에 이미 ‘국민 미끄럼틀’ ‘국민 유아 변기’ ‘국민 식판’ 등의 수식어를 얻은 것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뻗어가고 있다.
■‘소비자 취향’에 진심인 말랑하니(주)
말랑하니(주)는 속싸개, 소음기, 수유등, 욕조 등 제품군이 200여 가지나 된다. 소비자 취향을 잘 반영해 제품마다 인기를 끄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성과도 놀랍다. 말랑하니는 지난해 국내에 속싸개, 욕조, 백색소음기 등 85만 개의 육아용품을 팔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신생아 수는 25만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치다.
그저 얻어진 인기가 아니다. 말랑하니는 자체 시장 조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20억 원을 투자할 만큼 공을 들인다.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다. 신생아용 백색소음기를 예로 들면, 말랑하니는 엄마들이 제품을 손에 쥐고 흔들면 손목에 무리가 간다는 점을 고려, 제품 무게를 150g에 맞췄다. 그 기준은 ‘평소 주로 드는 스마트폰보다 가볍게’였다.
말랑하니 제품은 해외에서도 통한다. 지난해 동남아 지역 이커머스인 ‘쇼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말랑하니의 오가닉 신생아 속싸개가 베트남에서 매출 1위, 신생아용 백색소음기가 태국에서 매출 1위를 차지했다.
동남아 진출은 의외로 쉬웠다. 동남아 쪽에서 먼저 말랑하니 박성준 대표에게 판매 자격 요청이 왔다. 박 대표가 알아보니 현지인이 말랑하니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웃돈을 받고 팔고 있었다고 한다. 제품이 좋아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었던 셈이다. 박 대표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주)소셜빈 “1등했다고 끝 아냐”
유아용 식판 제품은 부산 기업 (주)소셜빈을 빼놓을 수 없다. 유아들이 혼자 식사를 하기 시작하면 식판이나 그릇을 엎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소셜빈은 식판이 식탁에 흡착되면 원치 않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겠다고 판단, ‘퍼기 냥냥흡착 식판’을 시장에 내놨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퍼기 냥냥흡착 식판은 흡착 기능도 우수하지만 유아들이 들기 힘든 630g대의 무게로 제작, 아이들의 ‘식판 뒤집기’를 이중으로 막아준다.
소셜빈 퍼기 냥냥흡착 식판 전에는 ‘고래 식판’이 히트를 쳤다. 2017년 11월 출시한 고래 식판은 입소문으로 하루 최대 7000개 이상 판매한 적도 있다. 소셜빈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식판의 칸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비자 요청에 귀 기울였다. 식기 재질이 플라스틱에서 실리콘으로 변한다는 점을 파악해 제품을 업그레이드했다. 국내 1위 온라인 쇼핑몰 판매량의 최상단을 차지하고 20만 개 이상 팔리는 이유다.
소셜빈의 국내 최대 쇼핑몰 내 1위 제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퍼기 이유식 멀티찜기’ ‘퍼기 이중 밀폐 슬림 멀티 큐브’ 등 11개 제품이나 1위 제품에 이름을 올렸다.
■‘완구에 직선은 없다’는 (주)야야
세계 대형 완구 시장은 ‘리틀 타익스’라는 업체가 부동의 1위다. 국내 상황은 다르다. 아동·어린이용 완구 ‘타요 버스 미끄럼틀’을 국민 미끄럼틀로 키워내며 국내 대형 완구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주)야야가 있기 때문이다. 야야의 미끄럼틀 누적 판매량은 20만 개가 넘는다.
야야의 인기 비결은 안전한 디자인이다. 안전한 디자인을 위해 야야는 인력의 30% 이상을 개발과 디자인에 배치한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은 인기 캐릭터를 제품 디자인에 녹여내 아이들 마음을 빼앗기도 하지만 안전에 더 공을 들인다.
모든 생산 완구에는 ‘직선은 없다’는 야야 김영식 대표의 철학이 녹아든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놀 수 있게 뾰족한 부분을 최대한 없앤다. 다칠 위험이 있는 철제 부분은 최대한 숨기고 나사가 필요한 부분에는 플라스틱 재질을 활용한다. 이런 디자인에 추가적인 비용도 감수한다.
올해 야심작 아기상어도 벌써 인기 조짐이다. 글로벌 IP로 자리 잡은 ‘아기상어’ 캐릭터와 협업해 유아 욕조, 붕붕카, 유아 변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기상어와 타요만 해도 아이들의 시선을 빼앗기 충분하지만 티니핑, 로보카폴리 등 다른 제품들의 라인업도 화려하다. 김 대표는 “일본 중국 태국 홍콩 필리핀 등지에서 야야 제품은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숙면으로 부모 마음을 얻는 두 기업
수면 텐트로 잘 알려진 바이맘(주) 텐트는 글로벌 호텔에서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다. 2017년 바이맘 김민욱 대표는 가족 단위 투숙객을 위해 바이맘 수면 텐트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받아들인 곳이 포시즌스 호텔 서울이었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엑스트라 베드를 주는 대신 싱글 침대와 수면 텐트를 제공하는 상품을 출시했다.
이후 호텔업계에서는 바이맘 수면 텐트 패키지를 경험한 가족 단위 투숙객의 재방문율이 높다는 것이 화제가 됐다. 다른 호텔도 뒤이어 싱글 침대와 바이맘 텐트로 구성된 가족용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바이맘은 현재 시그니엘 서울 호텔, 콘래드 호텔 등 국내뿐 아니라 런던 포시즌스 호텔, 덴마크 당그르테르 호텔 등 전 세계 100여 개 이상의 5성급 호텔에 수면 텐트를 제공하고 있다.
5성급 호텔의 침구류 선택 기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감안할 때 바이맘의 수면 텐트가 디자인과 품질에서 글로벌 기준을 충족시킨 셈이다. 바이맘 김민욱 대표는 “호텔에서의 편안한 경험이 이어져 가정에서도 구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수면제품을 생산하는 스타트업 ‘굿대디’도 빌라쥬 드 아난티에 올해 5월부터 제품 공급을 시작했다. 굿대디는 상추 성분인 락투신을 활용해 아이 숙면을 돕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시음 행사를 지난 3~5일 진행했는데 전날 숙면을 취했다며 다음 날 아침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인지도가 약하다 싶어 100여 개의 수량을 준비했는데 모두 완판됐다.
굿대디 홍지민 대표는 “잠자리가 바뀌면 예민한 자녀들이나 성인들도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면이 부족할 경우 다음 날 일정도 차질을 빚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 호텔과 연계한 마케팅 포인트를 잡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