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2025-06-23 07:00:00
한국은행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실험 ‘프로젝트 한강’이 1차 테스트 종료를 앞두고 있다. 이번 실험은 민간은행이 예금을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하고, 사용자가 이를 실제 결제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계약 기술이 적용됐다.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CBDC의 디지털 바우처, 조건부 지급 등 행정 혁신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다소 복잡한 인증 절차가 단점으로 지적됐다. 또 지역화폐와의 연동이 어려워 정책 통합성 등이 과제로 남았다.
■디지털 지갑 7만 개 이상 열렸다
CBDC 프로젝트 한강 1차 테스트 실험 종료를 열흘가량 앞둔 지난 19일 오전 기준 지갑 개설자는 7만 5000여 명에 달한다. 당초 목표 10만 명에는 못 미치지만, 실험 단계로서는 긍정적인 성과다. 전체 거래 건수는 8만 6000여 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실제 오프라인 상점에서 이뤄진 결제는 약 4만 5000건이었다. 다만 지갑을 개설하고도 결제에 참여하지 않은 참가자도 일부 있었다.
지난 4월 1일부터 시작된 이번 테스트는 6월 30일까지 약 두 달간 진행된다. 개선 사항을 반영한 후속 테스트도 이뤄질 전망이다. 다음 실험에서는 바우처 프로그램 다양화, 개인 간 송금 기능 등이 예시로 고려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구체적인 시행 시기나 범위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참여 은행들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방침이다.
■다소 복잡한 인증, 결제는 간단
사용자는 이번 실험에 참가한 은행 앱에서 지갑 앱을 내려받아 자신의 예금을 토큰화한 뒤 QR코드를 생성해 물건 구입 때 결제하면 된다.
결제 자체는 다른 지급결제 시스템처럼 간편하다. 다만 CBDC 기반 예금토큰 결제는 비밀번호 입력 등 절차가 번거롭고, QR 유효시간 제한으로 무인결제기에서는 사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은행은 CBDC가 조건부 지급·자동 정산·스마트 바우처 등 복잡한 행정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시스템과 차별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카드사에서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할인·포인트 지급, 출장비·지원금 정산, 청소년 도시락 바우처 등의 절차를 스마트 계약 기반으로 자동화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실험은 실제 사업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예컨대 부산시와 부산은행, 신라대가 협업해 학생 바우처 실험을 진행 중이며, 향후 청년·학생 대상의 정책지원금 지급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
■사용 유인책 설계는 과제로
예금토큰 기반 결제는 가맹점주에게 매우 매력적인 결제 수단일 수 있다. 결제 즉시 대금이 입금되고 수수료가 없어 수익성이 낫기 때문이다. 한강에 참가하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예금토큰 결제 시 전 품목 10% 할인 이벤트를 병행하며 사용 확대를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는 간편결제와 카드 서비스가 이미 자리 잡은 환경이라, 소비자 입장에서는 예금토큰의 필요성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부산 시민 중 일부는 “지역화폐 동백전과 연동되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다”는 반응도 보였다.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지역 은행 중 유일하게 이번 실험에 참가한 부산은행의 CBDC 담당자는 “CBDC 예금토큰과 동백전은 법적 성격과 결제망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통합이나 기술적 연동은 쉽지 않다”며 “동백전은 지자체가 발행한 지역화폐인 만큼 운영 주체와 법령 적용이 다른 한계점이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은 어떻게?
세계 주요국도 CBDC를 활용한 차세대 지급결제 시스템 실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 중국 등은 국제결제은행(BIS)과 협력 아래 국경 간 결제, 거액결제, 실물 자산 디지털화 등 다양한 모델을 실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e-CNY)를 통해 이미 1억 8000만 개의 개인 지갑과 1조 달러 이상의 누적 거래를 기록하며 상용화에 가장 앞서 있다.
반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 이후 CBDC에 반대 입장을 공식화하며, 관련 프로젝트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있다. CBDC가 미국 달러화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때부터 CBDC를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