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 2025-06-29 14:28:04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 사업이 논란 끝에 결국 2차 실험(테스트) 준비 단계에서 멈춰섰다. 은행권이 실험에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인인데 향후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등을 지켜본 뒤 재논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9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 26일 CBDC 실거래 1차 테스트(한강 프로젝트) 참여 은행들과 비대면 회의에서 2차 테스트 논의를 잠정적으로 중단·보류한다고 통보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CBDC, 스테이블코인, 예금토큰 등이 어떻게 다르고 병존할 수 있는지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가 진행 중이니 일단 상황을 보겠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라며 “불확실성이 크고 은행들도 힘들어하니까 한은이 보류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전했다.
한은에서 CBDC 실거래 테스트를 주관하는 부서가 기존 디지털화폐실험실에서 다른 조직으로 바뀔 예정이라는 전언도 나왔다. CBDC 실거래 테스트는 한은이 ‘기관용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면, 테스트 참여 은행은 이와 연계된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예금 토큰’을 발행·유통해 금융소비자가 이를 결제 등에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는 프로젝트다.
한은과 7개 은행은 지난 4월 금융소비자 10만 명을 대상으로 1차 테스트를 시작해 이달 말 마무리할 예정이다. 당초 한은은 개인 간 송금, 결제 가맹처 확대, 인증 방식 간편화 등을 반영해 2차 후속 테스트를 연말께 시작할 계획이었다. 2차 테스트가 무산된 가장 큰 이유는 은행권에서 “구체적 상용화 계획 등이 없는 상태에서 비용 부담만 너무 크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강 프로젝트와 관련해 “후속(2차) 테스트 진행의 경우 한은과 이견이 존재해 조율 중”이라며 “후속 테스트 범위가 개인 간 송금과 추가 가맹처 발굴 등으로 확대되면서 1차 테스트에서 고려되지 않은 의심거래보고제도(STR)·이상 거래 감지 시스템(FDS) 등 정책 요건, 추가 전산 개발, 사업 예산 집행 등이 필요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후속 테스트를 진행하려면 한은과 은행 모든 유관부서가 참여하는 ‘CBDC 일반이용자 실거래 테스트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테스트 이후 상용화 계획까지 포함한 장기 로드맵을 수립한 뒤 이를 바탕으로 사업 일정을 현실적으로 재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1단계 테스트에 참여한 7개 시중은행에 따르면 각 은행은 한강 프로젝트 관련 전산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과 마케팅 등에 적게는 30억 원, 많게는 60억 원 가까이 투자했다. 평균 50억 원만 잡아도 7개 은행이 한강 프로젝트를 위해 약 350억 원을 지출한 셈이다.
불확실한 일정·목표와 재원 부담과 관련한 불만이 고조되자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달 중·하순 한강 프로젝트 참여 은행장들을 직접 1대 1로 만나 협조를 당부했고, 2차 테스트의 비용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한은이 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국 사업 추진 동력을 다시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한은 주도의 CBDC 2차 실거래실험 논의가 잠정 중단되면서, 각 은행은 같은 은행권 또는 비(非)은행업체들과 스테이블코인 발행 준비에 더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한은은 여러 차례 ‘예금 토큰’이 명칭만 다를 뿐 사실상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개념이라고 강조해왔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하도록 설계한 암호화폐를 말한다.
결국 2차 테스트가 잠정 연기 또는 보류되면서 각 은행도 일단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할 처지다. 은행권은 은행들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합작법인을 설립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사업모델을 구상하는 동시에 다양한 비은행 업체들과도 접촉하며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와 발행 허용에 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최대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는 최근 주요 금융지주사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