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5-09-12 14:22:40
“우와 고양이 완전 크다~.” “모기가 너무 커요!”
신난 아이들이 꺄르르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곳은 놀이터나 테마파크가 아닌 미술관이다. 부산 금정구 금정문화회관 금샘미술관에서 지난 2일부터 진행 중인 ‘너무 크게 상상해도 괜찮아’ 전시는 학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인기 만점이다. 체험형 프로그램과 직관적인 설치미술 조형물 덕에 아이와 함께 즐기기 좋은 이 전시회를 직접 찾았다.
‘너무 크게 상상해도 괜찮아’ 전시는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소재들을 활용한 현대미술 체험전이다. 전시에 참여한 세 팀(5명)의 작가들이 제각기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 10여 점을 시민 누구나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피자, 모기, 고양이 등 일상적인 소재들이 거대해진 모습을 구현한 전시 작품들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10일 오전 금샘미술관에 모인 동래초등학교 학생 27명과 함께 전시를 둘러봤다. 해설사로 나선 박정임 도슨트가 안내한 첫 번째 코스는 ‘거인 피자’다. 널찍한 전시장 바닥에 피자 도우 모양의 거대하고 푹신한 깔개가 있다. 어떤 피자를 만들지는 아이들의 선택에 달렸다. 새우, 버섯, 페퍼로니, 루콜라 등 피자 재료 모양의 쿠션들을 가져와 마음껏 ‘피자 꾸미기’ 놀이를 하면 된다. 벽면의 스크린을 통해 피자의 모양이 어떤지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마음 가는 대로 토핑을 올리며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니 괜히 흐뭇해진다.
거인 피자는 ‘아리송 미디어디자인 팩토리’(이혜로, 정승민, 한지윤 작가)의 작품이다. 피자 위에 토핑을 직접 올리는 ‘놀이’가 단순한 유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작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두 번째로 감상한 작품은 노동식 작가의 ‘소원을 말해봐’다. 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커다란 공기 조형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요정인 ‘지니’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 느릿하게 숨을 쉬듯 떠 있는 지니 곁에 서 있으면 마치 말을 걸어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솜으로 구현한 요술램프의 연기가 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기묘하게 따뜻한 공간감이 커다란 얼굴, 익살맞은 표정과 어우러져 왠지 모르게 다정하다는 느낌이다. 지니의 얼굴은 노동식 작가의 얼굴을 본뜬 것으로, 사람들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다.
노 작가는 오랫동안 솜과 공기를 조형의 주요 재료로 사용해왔다. 그가 솜을 애용하기 시작한 계기는 대학 시절 지도 교수의 한 마디였다. ‘너에게 가장 친근한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봐라.’ 노 작가는 어렸을 때 부모가 운영한 솜털 가게의 솜을 떠올렸다. 그에게 솜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고, 그 좋은 기억을 여러 사람과 나누기 위해 솜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산수유람-패키지여행’에도 솜이 활용됐다. ‘소원을 말해봐’를 지나 전시장 안으로 이동하면 중국의 유명 관광지 장자제(張家界)를 연상시키는 대협곡 조형물이 보인다. 기둥 형상의 산과 바위, 하늘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 능선을 따라 날아오르는 비행기 모두 멋있지만, 솜으로 구현한 뭉게구름이 바로 동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핵심 요소다.
이 풍경은 특정한 장소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여행에 대한 환상과 추억을 따뜻하게 표현한 것으로, 단단해 보이는 산 역시 솜으로 만든 것이다.
‘산수유람’ 맞은 편에 놓인 작품은 ‘모기향-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이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이제는 보기 힘든 소용돌이 모양의 녹색 모기향을 거대한 설치물로 되살려낸 작품이다. 역시 솜으로 만든 모기향 연기가 인상적이다.
기자도 어렸을 때 모기향을 본 적이 있지만, 미술관에 온 학생들 대부분은 이날 모기향을 처음 봤다. 박 도슨트가 실물 모기향을 손에 들고 설명하자 학생들은 신기하다는 듯 집중해서 쳐다봤다. 전시장에는 거대한 조형 모기들도 있다. 솜, 금속, 플라스틱, 레진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만든 모기가 꽤 현실적이다.
노 작가는 일상의 작고 사소한 감각도 예술의 재료로 삼는데, 이 작품의 경우 가려움이 주제다. 모기에 물렸을 때의 가려움, 모기 날개 소리의 성가심과 같은 불편함이 익살스럽게 표현됐다. 이 전시장에선 모기가 날갯짓할 때 나는 ‘윙~’ 소리가 계속 흘러나오는데, 이러한 소리가 일상의 감각을 다시 발견하게 해준다.
이제 계단을 통해 한층 올라갈 차례다. 대형 고양이 설치 작품 ‘꽃과 나비인 달리’가 먼저 관람객을 반기고, 이어 미디어 영상인 ‘달리 달리다’와 여러 현대미술 작품에서 작가 특유의 화풍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동양 이미지와 현대 기술인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만난 ‘고양이-너에게, 나에게, 모두와 함께’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 속 고양이가 반응하는 작품으로, 관객과의 정서적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조세민 작가의 예술적 믿음이 담겼다.
오는 10월 26일까지 즐길 수 있는 이번 전시는 SNS로 입소문을 타 인기가 많다. 10명 이상 단체관람시 예약할 수 있는 ‘해설사와 함께하는 전시 투어’는 오전 예약이 거의 다 찼고, ‘거인 피자’ 체험 역시 주말 예약이 꽉 찼다. 다만 평일에는 예약제가 아닌 선착순 자율 체험으로 진행돼 비교적 여유가 있다. 한 관람객은 미술관 만족도 조사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현대미술이 있어 좋았다”며 “거대 피자 만들기 체험 같은 경우 사설 체험관에서 짧은 시간 동안만 가능했는데, 여기선 30분이나 무료로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금정문화회관 오일선 관장은 “평일 오후엔 엄마 아빠와 손 잡고 온 아이들이 많고, 주말엔 줄을 서야 할 정도”라며 “방문객이 많은 만큼 직원들도 바쁘게 움직인다. 아이들이 많이 쓰는 공간이라 쾌적하게 유지하려고 청소도 자주 한다”고 말했다.
금샘미술관은 ‘무장애 미술관’이기도 하다. 현재 역점을 두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발달장애인 대상 특별강좌다. 발달장애인 돌봄 기관과 연계해 장애인들이 미술 작품을 충분히 즐기고 감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금샘미술관은 다양한 문화 기획을 진행해 이번 전시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오 관장은 “우리 미술관은 가족 친화적인 미술관을 지향한다”며 “슬리퍼를 신고 와도 괜찮은, 누구나 부담 없이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