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2026-01-25 08:00:00
클립아트코리아
부산이 전통적인 물류 도시를 넘어, 무형의 정보가 오가는 ‘디지털 물류’의 중심지로 변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연이어 부산에 첨단 산업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센터를 짓거나 짓기로 하면서 현재 확정 투자 금액만 12조 7000억 원에 달한다.
이러한 거대 투자의 마침표를 찍어줄 핵심 정책인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에 대해 최근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향후 동남권 거점 산업이 될 데이터센터 산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디지털 고속도로’의 출발점, 부산
22일 부산시에 따르면 2026년 착공을 목표로 부산에 건립을 추진하는 민간 데이터센터만 8곳에 달한다. 이미 부산에는 KT, LG CNS, BNK금융지주, 그리고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가동 중이다. 여기에 더해 올 하반기 완공을 앞둔 원아시아의 100MW급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업계에서 100MW는 ‘하이퍼스케일’(Hyperscale)이라 부르는 초대형 데이터센터의 상징적인 기준점이기도 하다.
부산에 데이터센터를 짓거나 짓기로 한 누적 투자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 12조 7000억 원에 이른다. 부산에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이거나, 투자를 확약한 기업은 모두 15개 사로 국내 대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들도 포함된다.
이들 기업이 단순히 부산에 몰리는 것은 아니다. 부산은 독보적인 통신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타 지역에 비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해외로 뻗어 나가는 해저 광케이블의 무려 90%가 부산을 기점으로 연결된다.
데이터센터의 핵심은 지연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부산은 일본, 미국, 동남아시아 등 주요 국가와 물리적으로 직접 연결되는 최단 경로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입장에서 부산이 데이터의 요충지인 셈이다.
‘전기 먹는 하마’ 안정적 전력 공급 필수
데이터센터의 성패는 안정적인 전력 확보에 달려 있다. 수만 대의 서버를 24시간 중단 없이 가동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기를 식히기 위해 냉각 시스템을 상시 가동해야 하므로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라 불릴 만큼 전력 소모가 극심하다.
이 지점에서도 부산은 타 지자체가 흉내 낼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고리원자력발전소를 기반으로 한 부산의 전력 자립률은 2024년 기준 169.8%다. 이는 서울 11.6%, 경기 62.1%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수도권이 만성적인 전력 부족 문제로 데이터센터 신규 인허가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부산은 큰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정주 여건과 인재 수급 역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는 사고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상주 인력이 필수적”이라며 “부산은 부산대, 부경대 등 지역 대학에서 배출되는 우수한 ICT 인재 풀이 있고, 광역 교통망과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전문직 종사자들이 정착하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에서 부산에 데이터센터 건립이 가능한지 문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산 산업 체질 개선에도 기여
데이터센터 유치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단순한 건설 비용 그 이상이다. 부산시와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에코델타시티 내 그린데이터센터 집적단지에 들어서는 4개 사의 투자(약 3조 6000억 원)만으로도 약 1022명의 직접 일자리가 창출될 전망이다. 이는 서버 관리, 보안, 시설 유지보수 등 양질의 IT 전문 인력을 포함한다.
부산은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산업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센텀시티의 클라우드 클러스터와 연계해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기업들이 지역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이미 1100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 전례도 있다.
부산상공회의소 심재운 경영정책본부장은 “데이터센터 집적화를 통해 클라우드, AI, 빅데이터 등 미래 산업을 한데 모으는 대전환의 길목에 서 있다. 데이터센터는 자동차 부품 제조, 조선 조선기자재 등 부산의 전통 제조 산업에 ‘피지컬 AI’를 결합해 스마트 팩토리로 진화시키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료 차등제 도입 미지근?
업계에서는 부산이 싱가포르나 홍콩을 넘어서는 글로벌 데이터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꼽는다. 발전소 인근 지역의 요금을 수도권보다 낮게 책정하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부산에 입주한 데이터센터는 수도권 대비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만큼 부산의 데이터센터로서의 매력도도 커지게 된다.
최근 정부 행보는 이러한 기대에 못 미치는 모양새다. 기후부는 당초 2026년 시행을 목표로 했던 도입 시점을 ‘2026년 하반기 이후’로 미뤘을 뿐만 아니라, 올해 사업 추진 계획에서도 ‘도입’ 대신 ‘도입 검토’로 표현 수위를 낮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강한 추진 의지를 보였던 정부가 수도권 반발과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거대한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기업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불확실성”이라며 “정부 정책 기조가 흔들린다면 향후 추가 투자 유치는 물론 이미 진행 중인 사업들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