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2026-02-03 07:00:00
뇌전증은 전염이나 유전이 아닌 뇌의 전기적 이상에 의해 반복적인 발작이 발생하는 만성 뇌질환이고 50세 이후 발병률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양산부산대병원 남상욱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령층의 경우 발작이 전형적인 경련 없이 기억이 잠깐 끊기거나 이상한 말을 하는 등 비운동성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치매나 뇌졸중으로 오인되기 쉬워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은 세계뇌전증의 날이다.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날로, 우리나라 역시 대한뇌전증학회 등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세계뇌전증의 날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오는 9일 세계뇌전증의 날을 앞두고 양산부산대병원 남상욱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도움말로 뇌전증의 원인부터 치료, 일상 관리법을 두루 살펴봤다.
■발병 주원인과 증상
뇌전증은 뇌기능의 이상으로 인한 과도한 전기적 방전 현상으로 발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만성적인 뇌질환이다. 뇌의 신경세포는 크게 다른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는 흥분성 신경세포와 과도한 흥분을 조절하는 억제성 신경세포로 구성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이 두 종류의 신경세포가 균형을 이뤄 전기적인 정보를 주고받으며 뇌기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이 깨어져 뇌가 과도하게 흥분하게 되면 마치 전기 스파크처럼 비정상적인 전기 방전 현상이 발생하면서 발작이 일어난다.
뇌가 비정상적으로 흥분하는 원인도 다양하다. 유전자 변이나 선천성 뇌기형과 같은 선천적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출생 이후 외상이나 저산소증, 뇌염, 뇌졸중 등으로 인한 뇌손상의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후천적인 원인도 있다. 남 교수는 “뇌 영상 검사에서 특별한 병변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소아청소년기나 성인이 된 이후 자연스럽게 발병하는 특발성 뇌전증도 흔하다”고 설명했다.
뇌전증의 증상인 발작은 뇌 일부분에서 발생하는 국소 발작과 뇌 양측에서 발생하는 전신 발작으로 나눌 수 있다. 국소 발작의 경우 발작이 시작되는 부위에 따라 증상이 환자마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신 발작 역시 여러 형태를 띤다. 운동 증상 없이 수 초간 멍해지며 의식만 잃는 결신 발작을 비롯해 갑작스럽게 깜짝 놀라듯 움찔하는 근간대 발작, 고개가 떨어지거나 쓰러지는 탈력 발작, 전신이 빳빳해졌다가 심하게 움직이는 강직간대발작 등이 대표적이다.
■증상·연령대별 치료법 다양
뇌전증 진단을 위해서는 우선 뇌의 구조적 이상을 확인하는 뇌 자기공명영상검사(MRI)와 뇌의 전기적 활동을 확인하는 뇌파검사가 이뤄진다. 일부 환자의 경우 뇌에는 문제가 없으나 혈당, 전해질, 간이나 신장 기능 문제 등 전신 상태의 이상이 발작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어 혈액검사도 함께 시행된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우선 항경련제 치료를 시작한다. 약물치료는 과도하게 흥분된 뇌의 전기적인 상태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전체 환자의 약 70~80%는 약물로 발작이 잘 조절된다. 약물치료로도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 대해서는 비약물적인 치료가 고려된다. 케톤생성 식이, 변형 애트킨 식이, 저당지수 식이와 같은 식이요법부터 절제 가능한 부위에 발작 초점이 있는 경우 이 부위를 절제하는 수술 치료, 미주신경에 전기 자극을 주는 장치를 체내에 삽입하는 미주신경 자극술 등이 있다.
뇌전증은 신생아 시기에 발병률이 높다가 점차 감소하지만 50세 이후 다시 늘어난다. 뇌기능 저하와 뇌졸중, 치매와 같은 노인성 뇌질환이 증가하는 탓이다. 고령층의 경우 발작이 전형적인 경련 없이 기억이 잠깐 끊기거나 이상한 말을 하는 등 비운동성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치매나 뇌졸중으로 오인되기 쉬워 주의가 필요하다. 남 교수는“노인의 경우 첫 발작 이후 재발 위험이 높기 때문에 비교적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며 “다른 질환으로 복용 중인 약물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리 및 대처 요령
약을 복용 중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복용해 약물의 혈중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복용을 한 번이라도 거르면 혈중 약물 농도가 떨어져 발작 위험이 커질 수 있고, 복용 시간이 불규칙하면 혈중 약물 농도의 기복이 심해져서 부작용이 증가하거나 치료 효과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규칙한 식사와 과식, 야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질 좋은 수면을 취하고 술, 카페인, 당지수가 높은 음식의 과도한 섭취를 절제하는 것도 발작 예방에 도움이 된다. 운동은 전신 건강뿐 아니라 뇌전증 환자의 뇌 기능과 정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 교수는 “추락이나 익수 위험이 있는 활동은 주의가 필요하며, 혼자 하기보다는 주변의 감독자나 동반자와 함께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주변 사람들의 올바른 대처도 중요하다. 발작을 일으키면 먼저 환자를 안전한 장소에 눕히고 주변의 위험한 물건을 치운 뒤 몸을 조이는 옷을 풀어줘야 한다. 침, 분비물이나 구토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몸을 옆으로 눕혀야 한다. 입을 억지로 벌리거나 손가락이나 물건을 넣으려고 하는 행동은 위험하며, 발작을 멈추려고 환자를 누르거나 주무르거나 뾰족한 물건으로 환자의 손을 찌르는 행동 역시 위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발작은 수 분 내에 저절로 멈추지만 5분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응급실로 이송해야 한다.
남 교수는 뇌전증에 대한 인식 전환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뇌전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능력과 별개로 사회적인 제약이나 불이익을 받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며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열린 시선이 환자들이 치료에 전념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