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 샘컴퍼니 제공
“제 인생에 멜로는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잘하자는 마음이었죠.”
배우 박정민은 영화 ‘휴민트’에서 연기한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을 이렇게 돌아봤다. 박정민은 류승완 감독의 신작에서 옛 약혼녀를 다시 마주한 뒤 신념과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민은 “대사가 많지 않은 캐릭터”라며 “말없이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남북 정보요원의 대립과 공조를 그린 첩보 액션 영화다. 전작 ‘베를린’, ‘모가디슈’와 세계관을 잇는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의 완결편이기도 하다. 박정민이 연기한 박건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신념처럼 품고 살아온 원리원칙주의자다. 그는 “갈등해본 적 없는 사람이 처음 갈등하기 시작할 때의 감정은 서툴 수밖에 없다”며 “말로 표현하기보다 침묵과 눈빛으로 드러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출을 맡은 류 감독은 준비 과정에서 박정민에게 여러 작품을 추천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007’ 시리즈, 프랑스 영화들, 그리고 ‘영웅본색’, ‘첩혈쌍웅’ 같은 홍콩 누아르가 참고 목록에 올랐다. 박정민은 “감독님이 설명하면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남자들의 정서’를 이야기했다”며 “그 분위기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감독님이 추천해준 영화들을 볼수록 ‘어떻게 하라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더 혼란스러웠어요.(웃음)”
영화 ‘휴민트’ 스틸컷. NEW 제공
외형에도 변화를 줬다. 전작 ‘밀수’에서 10㎏ 이상 체중을 늘렸던 박정민은 이번엔 평소보다 10㎏ 이상 감량했다. 촬영 전 매일 10km씩 달리며 붓기를 빼고 얼굴선을 정리했다고. 그는 “살을 빼는 것보다 여백을 정리한다는 느낌이었다”며 “촬영 전 러닝을 하고 가지 않으면 얼굴이 다르게 보여서 운동을 하고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액션 연기도 위험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접 소화했다. 총기 액션, 육탄전, 폐쇄된 공간에서의 격투 등을 직접 연기한 감당한 그는 “액션도 결국 감정 표현의 한 방식”이라고 했다.
박정민은 류승완 감독을 신뢰한다고 했다. 그는 류 감독과 협업을 언급하며 “합이 잘 맞는다는 믿음이 있다”고 털어놨다. 박정민은 20대 중반 자신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겼던 류 감독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더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이번 작품의 성패에 대해 “큰 영화일수록 부담이 있지만 책임은 나눠진다”며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감독님과 하면 뭘 해도 잘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지금까지 같이 했던 것 중에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받은 건 아직까진 없었거든요.”
이 작품의 볼거리 중 하나는 박정민이 그려낸 사랑이다. 박정민은 이번 작품을 멜로로 인식하지 않았다며 “누군가를 구출하는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촬영을 이어가다 보니 감정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는 걸 느꼈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덧붙인다. “멜로도 해보고 싶어요. 다만 제가 멜로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징그러워할까 봐, 겁이 나는 것 같아요. 연기는 결국 제 안을 뒤져서 꺼내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