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2026-10-08 17:24:24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남방큰돌고래. 연합뉴스
“수족관처럼 간다고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언젠가 바다로 떠날 존재라 아쉽지만 그래서 더 특별해요.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산다는 느낌은 정말 특별해요.”
부산항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깜짝 출현해 100만여 명의 인파를 모으며 화제의 중심에 선 상어 ‘부캉이’. 기껏해야 몇 분 남짓, 그마저도 수면 위로 빼꼼 솟아오른 등지느러미를 스치듯 보여줄 뿐이었지만 사람들은 열광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주차도 힘들고 수십 분을 꼬박 기다려야 겨우 볼 수 있었지만,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부캉이를 마주한 순간은 수족관 유리벽 너머 갇힌 상어를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었다”며 “자연과의 ‘자만추’가 주는 즐거움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는 말 그대로 인위적인 연출 없이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것, 바다가 허락할 때 슬쩍 눈을 맞추는 진정 ‘자연스러운 만남’이다. 찰나의 눈 맞춤으로도 팍팍한 도시인들의 마음을 뒤흔든 ‘부캉이’처럼, 우리 바다 곳곳에는 해양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야생의 이웃들을 경이롭게 마주할 수 있는 ‘자만추’의 현장들이 숨 쉬고 있다.
사천 앞바다에서 발견된 상괭이. 부산일보DB
■경남 사천 초양도엔 웃는 돌고래 ‘상괭이’
웃는 모습이 특징인 돌고래 ‘상괭이’는 초양도를 포함한 경남 사천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상괭이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대한 협약(CITES)’ 보호종으로,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이지만 한국에서는 서·남해와 동해 남부 연안에서 다수 서식하고 있다. 얼굴 생김새가 웃는 사람 모습을 닮아서 ‘웃는 고래’라고도 불린다.
인간을 경계하는 특성이 있어 관찰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천 초양도 앞바다에서는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육지에서 상괭이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립공원공단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는 4년간 상괭이 이동 경로를 관찰·기록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미와 새끼 상괭이를 관찰하는 ‘야생 상괭이 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단이 모니터링을 한 결과, 상괭이는 9월~11월에 바닷물 수위가 가장 높은 ‘사리’ 때 사천 초양도 연안에서 자주 출현한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상괭이를 초양도 인근 해안가에서 쌍안경으로 직접 관찰하고, 생태 해설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상괭이 먹이 활동이나 새끼 성장 과정 등 생태적 특징은 공단이 직접 촬영한 희귀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빨고래류 쇠돌고래과에 속한 상괭이는 둥근 머리 모양에 등지느러미가 없다. 몸 길이 최대 약 2m로 자란다. 상괭이의 임신 기간은 10개월 내외로 출산 시기는 46개월이다. 최대 수명은 25년 정도로 추정된다. 주요 먹이는 멸치와 전어, 갈치, 새우, 오징어 등으로 멸치 어군을 발견하면 무리를 지어 먹이 활동을 한다. 상괭이는 2004년 국내 서해 연안에 3만 6000여 마리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6년에 1만 7000여 마리 이하로 급감했다. 주요 폐사 원인은 어업 활동 중에 잡혀 죽은 혼획으로, 약 56%가 혼획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출몰 시기에 맞춰 연안에서 쌍안경으로 해안가를 살펴보면 상괭이의 활동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며 “상괭이 서식 환경과 활동 반경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온전히 체험하는 기회를 통해 해양 생태계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유일 고래탐사선 ‘고래바다여행선’. 울산 남구도시관리공단 제공
■제주 바다에 대표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
현재 제주 연안에는 120여 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살고 있다. 남방큰돌고래 서식지는 국내에서는 제주도가 유일하다. 돌고래들은 터전을 잡은 제주 연안에서 평생 산다. 관광객들은 제주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기 위해 그동안은 주로 관광 선박을 타고 다녔으나, 최근에는 선박에 의해 돌고래가 다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육지에서 제주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돌고래는 제주도 연안 50~100m 이내의 얕은 해안가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배를 타지 않아도 충분히 관찰이 가능하다.
남방큰돌고래를 육안으로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앞바다다. 제주도청 해양산업과 관계자는 “따로 주로 나타나는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연중 육안으로 볼 수 있다”며 “별도의 쌍안경 같은 도구 없이도 무리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청은 관광 선박 대신 육상에서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는 여건을 정착시키기 위해 육상 전망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사업으로 2억 원 규모의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부금을 활용해 서귀포시 대정읍에 돌고래 전망대와 생태 관광 포토존 등을 만드는 것으로, 돌고래의 서식 환경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육상 중심 생태 관광’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지난 7월 울산 장생포 바다에서 발견된 참돌고래 300여 마리. 울산 남구도시관리공단 제공
■울산 장생포 앞바다서 만나는 ‘참돌고래 떼’
울산 장생포에서는 자주 수백 마리의 참돌고래 떼를 볼 수 있다. 2010년대까지는 장생포 일대에 참돌고래뿐 아니라 흑범고래, 밍크고래 등도 볼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그 자취를 감췄다.
참돌고래는 몸길이가 최대 2.7m, 체중은 최대 160㎏에 이른다. 날렵한 체형에 몸 쪽에 황토색과 회흑색의 모래시계 무늬가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참돌고래는 고래류 중 가장 번성한 종으로 최대 수천 마리까지 큰 무리를 이뤄 생활하고, 먹이는 주로 작은 군집성 어류와 오징어를 먹는다. 참돌고래 떼는 특히 수온 상승으로 먹이군이 풍부해지는 7월과 8월에 장생포에서 자주 발견된다. 울산시 남구도시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7월 30일에는 울산 장생포 남동쪽 24km 해상에서 참돌고래 떼 1000여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 홈페이지에서는 포착된 돌고래 떼의 사진과 관찰 일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참돌고래 떼는 2007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국내 유일의 고래탐사선인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 나가면 볼 수 있다. 탐사선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주 14회 운항된다. 하지만 야생 생물 특성상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날도 있다. 지난해 고래바다여행선은 총 73회 출항해 단 3차례만 고래 떼를 목격했다. 올해는 일주일 사이 4차례 참돌고래가 발견되기도 했다. 고래를 보지 못한 경우에는 ‘확인증’이 발급되며, 다른 여행지 무료 입장 등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선박 접근이 돌고래 무리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박 운항 속도와 접근 거리를 규제하는 친환경 관찰 가이드라인이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