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 2024-12-23 15:17:53
추운 겨울이 오면 떠오르는 자기만의 영화가 있는가. 어느덧 40대가 된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케빈(맥컬리 컬킨)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아니면 국민 로맨스 영화로 등극한 ‘러브 액츄얼리’나 ‘어바웃타임’을 떠올리며 옛사랑을 추억할 수도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함께 할 새로운 영화를 알고 싶다면 귀엽고도 따뜻한 애니메이션 한 편을 소개한다. ‘러브 액츄얼리’와 ‘노팅 힐’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인기 각본가 리처드 커티스의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제공 중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그해 크리스마스에는’은 역사상 최악의 눈보라가 들이닥친 웰링턴온씨(Wellington-on-Sea) 마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과정을 담은 가족 영화다. 평범한 크리스마스가 싫은 꼬마 소녀 ‘버니’, 크리스마스에도 홀로 집에 있어야 하는 ‘대니’, 성격이 전혀 다른 일란성쌍둥이 ‘샘’과 ‘찰리’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들의 부모님은 차를 타고 인근 지역 결혼식장을 찾았다가 거센 눈보라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졸지에 어른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장식한다. 그들의 휴일은 자유롭지만 어딘가 울적하다.
여느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산타클로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산타와 선물은 작품 속에서 조연에 불과하다. 영화는 오히려 ‘선물 없는 크리스마스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크리스마스에 부모님과 함께 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산타의 감동적인 선물에도 이내 침울해진다. 크리스마스에도 홀로 남겨진 대니는 “산타랑 아빠 중에 고를 수 있다면 아빠를 골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소원이라도 이뤄주는 마법사 같은 존재로 산타를 조명하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애니에서 산타는 굴뚝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산타가 준 선물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시대는 이제 영화 속에서조차 사라졌다.
영화는 산타라는 극적인 인물, 크리스마스라는 사건보다 일상의 소중함에 초점을 맞춘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대니는 고된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쌍둥이 찰리를 그저 말썽꾸러기로만 치부했던 샘은 오해를 풀고 찰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여서 행복한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함께여서 좋은 것”이라는 게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다.
이 작품은 영화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등의 각본을 쓴 리처드 커티스의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한다.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를 제작한 애니메이터 지몬 오토가 제작에 참여했다. ‘겨울왕국’, ‘모아나’ 등에 참여한 제작진들이 힘을 보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작품 속에서 산타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린다. “난 크리스마스가 감정의 돋보기 같다고 생각해요. 사랑받고 있고 행복하다면 크리스마스가 더 행복하고 사랑을 느끼게 할 거예요. 하지만 혼자이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그대로 돋보기가 씌워지죠. 그럼 안 좋은 일들이 더 크고 나쁘게 느껴져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산타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