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가 없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흔히 철면피(鐵面皮)라고 낮잡아 부른다. 쇠로 된 낯가죽. 이 말은 중국 송나라 학자 손광헌이 잡다한 일화를 모아 지은 〈북몽쇄언〉(北夢瑣言)에 등장하는 진사 왕광원의 처세에서 유래했다. 출세욕이 강한 왕 진사는 권력자와 친분을 맺기 위해서라면 온갖 수모나 문전박대를 당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웃어넘겼다. 심지어 그는 술에 취한 권세가의 채찍에 맞아도 화를 내기는커녕 비위를 맞췄다. 사람들은 왕 진사를 보고 “부끄러움이 없다”며 “낯가죽이 열 겹의 철갑처럼 두껍다”고 조롱했다.
요즘 세간에서는 철면피 같은 사람을 두고 말 그대로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꼬집는다. 뻔뻔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행위를 볼 때 후안무치하다거나 파렴치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게 문재인 정권에 만연했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다. 자신들의 무능과 부도덕성을 남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과 무책임은 결국 국민의 공분을 사 정권을 잃는 부메랑이 된 건 익히 알려진 바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혼란스럽던 지난달 24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얼굴을 두껍게 다녀야 한다”고 주문해 논란을 빚었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은 지난달 8일 “탄핵을 반대해도 1년 후엔 다 찍어주더라”는 말로 국민 다수의 탄핵 염원을 비웃고 유권자까지 깔봤다. 계엄 여파로 탄핵되는 걸 피해 사퇴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직원) 여러분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는 이임사는 2022년 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외면한 발언이라고 할 만하다.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고 국민에게 충격을 준 계엄 사태에도 반성과 사과를 모르는 현 여권의 철면피한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중국 역사서 〈송사〉(宋史)에 관리를 감찰하는 벼슬을 지낸 조변의 얘기가 나온다. 조변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측근이든, 재상 등 권력자든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강직하게 부정을 적발하고 척결해 철면어사(鐵面御史)로 불렸다. 그는 뻔뻔함을 정의롭고 공정한 데 활용하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함을 일깨웠다. 우리 헌법 제11조 1항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에 응해야 하는 이유다. 헌법재판소와 수사당국은 조변처럼 정치권 입김에 휘둘리지 않는 철면피가 돼 적법 절차와 엄정성으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인성과 품격을 상실한 낯 두꺼운 이들이 설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