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01-07 13:34:18
“사실 성기훈은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에요. 어림도 없지만, 풍차를 부수려고 달려드는 돈키호테의 모습과 기훈의 반란은 비슷한 느낌이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로 돌아온 황동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황 감독은 지난 2021년 시즌1로 ‘오징어 게임’ 광풍을 일으킨 데 이어 지난달 26일 두 번째 이야기를 전 세계 시청자에 선보였다. 두 작품 모두 황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메가폰까지 잡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 감독은 “이전 시즌보다 더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우리 사회의 면면을 담았다”며 “대의민주주의의 허점도 꼬집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은 지난 시즌 게임에서 우승해 상금 456억 원을 받은 성기훈이 게임 주최자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게임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성기훈이 이번 시즌에선 강한 목표의식을 가진 캐릭터로 변한 게 눈에 띈다. 황 감독은 성기훈의 성격 변화를 의도했다고 밝히며 “아직 사람을 믿고,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세상에 부딪히면서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성기훈같이 대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점점 없어지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기훈의 행동은 다른 이들을 위해 나서는 사람들의 마지막 애처로운 반란이죠.”
시즌2에서는 투표 장면이 유독 중요하게 다뤄진다. 매 게임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게임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두고 O와 X로 투표한다. 황 감독은 “대의민주주의에 위기가 왔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에서 과연 투표를 통해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시스템이 맞는지, 대안은 없는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대통령 관저 등지에선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모여 있고, 서로 싸울까 봐 경찰이 선을 그었다고 한다”면서 “(시즌2) 게임장 숙소 안에서 선을 긋고 싸우는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황 감독은 이 작품을 하느라 수명이 7~8년은 줄어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시즌1 작업 당시 치아 8개가 빠질 정도로 창작의 고통과 심적 부담을 느꼈다고 했던 황 감독은 “지난 몇 년간 쉴 틈이 없어 지쳐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각본을 혼자 쓰고 촬영도 1년 넘게 했다”며 “시즌2와 3을 합쳐 200회차를 찍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부었다”면서도 “시리즈를 하려면 작가와 연출이 각각 필요한데 이렇게 한 사람에게 의존해선 지속 불가능하다”고 했다. 감독은 시즌3에 대한 기대도 당부했다. “다음 시즌에선 세상이 나빠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줘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