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 2025-01-15 17:30:55
한국 체육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유승민(43) 전 대한탁구협회장 겸 국제올림픽(IOC) 선수위원이 제42대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됐다.
유 당선인은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선거에서 총투표 1209표 중 417표를 얻어 이기흥 회장(379표) 등 5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당선됐다. 유 당선인의 임기는 4년으로 2029년 2월까지다.
역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중 후보(6명)와 선거인 수(2244명)가 가장 많았던 이번 선거는 ‘반(反) 이기흥’ 단일화 논의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이 회장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유 당선인이 막판 대반전을 일궈냈다.
체육계 관련 부조리의 중심에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 회장이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하는 등 정부와 갈등을 빚어오면서 표심은 ‘체육계 변화’를 기치로 내건 유 당선인 쪽으로 기운 것이다.
유 당선인은 ‘기적의 사나이’로 통한다. 현역 시절 20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결승에서 절대 강자인 왕하오(중국)를 격파하고 금메달을 획득한 장면은 유 당선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한 장면이었다. 왕하오에게 패배가 많았던 유 당선인은 가장 중요한 올림픽 결승에서 왕하오를 상대로 강력한 드라이브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펄쩍펄쩍 뛰며 김택수 코치에게 안긴 장면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유 당선인의 금메달은 여전히 한국 탁구의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로 남아 있다.
2014년 현역 선수에서 은퇴했던 유 당선인은 잠시 국가대표팀 코치로 일한 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그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었지만, 워낙 인지도가 낮아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유 당선인은 하루에 25km씩 걸어 다니며 부족한 인지도를 ‘발품’으로 채웠고, 총 23명의 후보 가운데 2위에 올라 최다 득표 4명이 차지하는 IOC 선수 위원에 당선됐다.
유 당선인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선수촌장으로 임명됐고,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2019년에는 조양호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공석이 된 대한탁구협회 회장 보궐 선거에 출마해 37세의 나이로 회장에 당선됐다. 그리고 2020년에 다시 대한탁구협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연임에 성공했다.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 결과 역시 체육계에서 ‘대이변’으로 받아들인다. 3선에 도전하는 이기흥 후보가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 동안 다져온 표심이 막강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반(反)이기흥’ 구도에 따른 후보 단일화 실패도 유 당선인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유 당선인은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스포츠 대통령’이 됐다.
‘대이변의 주인공’ 유 당선인 앞에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산재해 있다.
당장 한 달도 남지 않은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2월 7~14일)과 재임 기간 열리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2028 로스앤젤레스(LA) 하계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의 성적을 끌어올려야 한다.
유 당선인은 25년간 선수로 활약했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지도자로 2년, 그리고 행정가(탁구협회장·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로 8년을 현장에서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땀과 노력의 가치와 선수들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40대 젊은 회장으로서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들과 소통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와의 관계 회복과 함께 체육회 조직 내부 정상화도 유 당선인이 풀어가야 할 과제다.
이기흥 회장 재임 시절 문화체육관광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4400억 원 규모였던 체육회 예산에서 1000억 원 정도가 삭감됐다. 대한체육회를 거쳐 시도체육회로 배정되던 예산 400여억 원을 문체부가 직접 교부하고 있고, 체육회 사업이 문체부 등으로 이관되면서 추가로 500억 원 넘게 깎였다.
탁구협회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문체부와 좋은 관계를 맺었던 유 당선인은 정부와 꼬였던 매듭을 풀 적임자로 평가된다.
아울러 이 회장에게 실망했던 체육회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한편 한국 체육 청사진을 새롭게 설계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도 유 당선인에게 맡겨진 과제다.
이밖에 체육회장 후보로 경쟁했던 다른 후보들과도 협조해 좋은 정책은 수용하는 한편 다양한 인재를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 당선인은 “많은 책임감이 느껴진다. 체육계 현안이 너무나 많다”면서 “혼자서는 불가능하며, 체육인 여러분, 관계자 여러분과 힘을 합했을 때 가능하다. 변화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신 만큼 제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뛰어서 화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