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4-16 10:47:05
몇 달 전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원경’은 태종 이방원이 아내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던 원경왕후와 함께 왕좌에 오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사를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이방원에게 원경은 갑옷을 입혀주며 용기를 준다. 여기서 갑옷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자 굳은 믿음을 뜻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실제 과거 전쟁에서 목숨을 지켜주는 건 공격 무기보다 방어해 주는 갑옷, 방패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도로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전장에서 창이나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산박물관의 올해 첫 기획 전시 ‘갑 오브 갑(甲 of 甲), 부산 갑옷’이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전장에서 병사를 보호해 준 갑옷에는 한 시대의 기술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갑옷의 변화는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사례이다. 특히 부산의 역사와 갑옷은 다른 지역보다 좀 더 끈끈한 관계가 숨어 있다.
예로부터 부산은 바다를 향한 열망과 대륙을 향한 도전이 교차하던 요충지였고 치열했던 시간을 증언하듯, 부산에서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갑옷이 다양하게 발굴되었다. 조선 시대 갑옷은 대부분 개별 가문을 통해 전해지나 부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굴을 통해 확인된 사례가 있다. 동래읍성과 가덕도 천성진성에서 발굴한 조선 시대 갑옷이 이번 부산박물관 전시의 주인공들이다.
먼저 소개되는 갑옷은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전장, 동래읍성 해자에서 출토된 철찰갑(쇠붙이를 납작하게 두들겨 작게 자른 후 이를 가죽끈으로 이어 붙인 갑옷)과 첨주(차양이 달린 투구)이다. 한국에서 발굴된 대부분의 갑옷은 토양의 특성 때문에 조각 형태로 남아있는데 동래읍성 철찰갑은 물이 있는 해자 아래 묻혀 거의 완벽한 형태를 갖춘 채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옻칠한 미늘(비늘 모양의 쇳조각 혹은 가죽 조각)을 연기에 그을린 사슴 가죽끈으로 촘촘히 연결해 지금 시각으로 봐도 견고함이 놀라운 수준이다. 하나의 갑옷에는 1000개의 미늘이 사용되었으며, 중량은 8kg에 달한다.
천성진성에서 발견된 갑옷은 앞서 동래읍성의 철찰갑보다 훨씬 가볍고 기능적인 두정갑이다. 두정갑은 두루마기 형태의 옷 안에 철 조각을 넣어 옷감에 단단하게 고정한 형태이다. 부산박물관이 2016년부터 천성진성 발굴 조사를 진행해 580여 점의 두정갑 미늘을 확인했으며 문헌으로 알려졌던 조선 후기 수군 갑옷의 실체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았다.
전시관 초반부는 실제 발굴된 갑옷과 미늘, 투구, 생활용품, 재현된 갑옷을 만날 수 있으며, 입체 영상을 통해 이 갑옷들이 어떻게 전장에서 활약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박물관 학예사와 발굴팀이 일일이 갑옷, 미늘, 투구의 크기와 형태를 검증하며 전문 영상팀과 협력해 영상을 제작했으며 2분 30초 동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품이 많이 들어간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시 후반부는 게임을 통해 관람객이 직접 갑옷 한 벌을 제작해 보거나 재현된 갑옷들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준비했다. 체험 공간 한쪽은 두정갑의 원리를 활용해 두정갑 열쇠고리를 만드는 재료가 있다. 여타 박물관의 굿즈를 능가할 정도로 예뻐서 전시 첫날부터 관람객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전시 연계 행사로 19일 오후 1시부터 ‘조선을 지킨 부산 갑옷’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가 직접 해설을 하며 전시를 보는 ‘큐레이터와의 역사 나들이’는 25일 오후 3시에 열린다. 해설사의 전시 해설은 전시 기간 내내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진행된다.
정은우 부산박물관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굴 조사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조선시대 갑옷을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이다. 두 개의 성곽, 두 종류의 갑옷은 조선시대 부산의 군사적 중요성과 부산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5월 11일까지 열린다. 월요일은 휴관.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