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6-06 07:00:00
“라면 먹고 갈래?” 밥도, 떡국도, 피자도, 치킨도 아니었다. 다른 어떤 것을 대신 넣어도 그 맛은 나지 않을 것 같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라면은 대체 불가였다. 2001년에 나온 영화 ‘봄날은 간다’를 최근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렸다. 13~15일 영화의전당 일원에서 열리는 ‘2025 부산푸드필름페스타(BFFF)’의 주제가 바로 ‘이면, 저면, 요면’이기 때문이다. 푸드필름페스타의 가장 큰 매력은 영화 속에서 본 음식을 실제로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각과 미각, 오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특별한 영화제 속으로 망설이지 말고 빠져 보자.
2017년에 시작한 부산푸드필름페스타(BFFF)는 올해로 9회째를 맞는다. 돌이켜 보면 2018년 불의 미학 바비큐, 2019년 식구, 2020년 치유의 음식, 2021년 ‘달콤쌉싸름한’, 2022년 술 마시는 인류-호모 바쿠스, 2023년 ‘빵, 행복을 굽다’, 2024년 ‘쌀, 일상과 일탈’을 주제로 열렸다. 내년이면 10년을 맞이하는 BFFF가 또 어떻게 진화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BFFF 개막작은 행사의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 ‘쌀국수의 맛’으로 13일 오후 7시 개막식 때 만나볼 수 있다. 이 영화는 타국에서 살면서 고유의 정체성과 함께 가족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베트남 이민자 부녀의 갈등을 음식으로 풀어냈다. 이주민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사회적 문제들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인류 보편적인 메시지를 잔잔하게 던진다.
올해 BFFF는 △이면 △저면 △요면 △BFFF 초이스 무비 다이닝 등 총 네 개의 영화 부문에 10편의 영화로 구성됐다. ‘이면’에서는 자주 먹어 익숙한 면을 통해 우리의 삶을 한번 들여다보자는 의미로 ‘델타 보이즈’와 ‘쌀국수의 맛’을 담았다. ‘저면’에서는 해외의 다양한 면 요리를 통해 그들의 식문화를 알아보고, 역사 속에 나오는 면의 이야기까지 찾아본다. 일본 영화인 ‘라멘덕후’와 ‘심야식당 2’로 구성됐다.
‘요면’에는 ‘아버지의 마라탕’과 ‘아루나의 미각’이 포함됐다. 우리는 면을 먹는 동안 미각뿐만 아니라 소리나 질감, 포만감을 통해 어쩌면 관능적 경험까지 하게 된다. 면을 통해 관계를 쌓고 인간의 본능을 나누는 조금은 어른스러운 이야기들이다. 초이스 무비 다이닝에서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보통의 가족’, ‘코마다 위스키 패밀리’ 등 최신 음식 영화를 소개해 새로움을 맛보게 했다.
음식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관객이라면 다양한 영화제 부대행사도 빼놓을 수 없다. 13일 오후 2시에는 야외테라스에서 ‘5인5면’이라는 이름으로 5명의 셰프가 나와 5가지 면에 관해 이야기하는 푸드살롱이 진행된다. 소공간 박기섭 셰프, 대동대 외식&디저트창업과 정지용 교수, 비스트로 호텔엠비언스 엄현주 셰프, 오스테리아 어부 정용욱 셰프, 마라훠궈전문점 라라관 김윤혜 셰프 등 부산을 대표하는 셰프들이 만든 면을 직접 먹어보면서 이야기를 듣는 귀한 시간이다.
국내에서 드라마로 인기가 많은 ‘심야식당’ 팬이라면 14일 오후 2시 10분부터 야외 테라스에서 열리는 ‘BFFF 심야식당’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 줄 서는 맛집 무스비소바 조충희 대표와 오노고로 김정훈 대표를 초청해 ‘심야식당2’에 나오는 음식을 영화 이야기와 함께 즐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5시부터는 해운대리버크루즈 매표소 루프탑에서 ‘면, 꼬시지 마라’라는 주제로 라라관 김윤혜 대표의 숨은 이야기가 공개된다.
15일 오전 10시 반에는 박상현 BFFF 프로그래머의 일본 음식 특강이 열린다. 이날 오후 1시부터는 야외 테라스에서 ‘바람과 면’을 주제로 구포연합식품 박효준 대표와 코르 파스타 바 서정주 대표가 나와서 구포국수와 파스타의 공통점인 자연 건조 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풍으로 옥상 같은 곳에서 자연 건조하던 구포국수가 시대 변화에 따라 실내 건조로 바꾸면서도 어떻게 그 풍미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흥미진진한 숨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날 오후 4시 반부터는 베트남음식점 응온비엣 반진경 대표와 베트남 출신 김태희 셰프가 ‘베트남 쌀국수로 풀어보는 노동과 삶, 이주민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오후 6시 40분부터는 야외테라스에서 BFFF 모든 프로그래머가 참석한 가운데 ‘맛있는 수다’가 열린다.
부산관광공사와 협업으로 진행되는 ‘시네마 푸드테라스’는 BFFF 최고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힌다. 14, 15일 양일간 열리는 이 행사는 먼저 영화를 감상하고 야외테라스에 모여 영화 속 음식을 즐긴 다음에 프로그래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뒤 해운대리버크루즈를 타고 황홀하고 낭만적인 부산의 밤바다를 둘러보게 된다.
영화의전당 광장 테마존에서는 무스비소바, 응온비엣, 오노고로, 구포국수, 타이백스트릿 등 11곳의 면 요리를 골라서 맛볼 수 있다. 이밖에도 푸드존의 주옥같은인생(팥빙수), 치락스(치킨난반), 천지를먹다(물회) 등 13곳과 푸드트럭 15곳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음식이 선보인다. BFFF 박명재 프로그램 디렉터는 “영화의전당이라는 공간에서 영화와 음식을 즐기는 문화가 부모에서 자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길 바란다. 또한 요식업을 하는 분들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사람들로서 자리매김하고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 기간 영화의전당에 오면 평소 만나기 힘든 음식 장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미식 도시’ 부산을 보고, 먹고, 즐기시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