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6-15 09:00:00
동화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이에게 들려주거나 읽히기 위하여 지은 이야기’이다. 물론 어른이 동화를 보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예 어른을 대상으로 한 동화가 등장했다. 글밥이 적고 수채화처럼 맑은 그림을 함께 넣어 동화 형식을 따라가지만, 인생의 경험을 가진 어른이 공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껍지 않은 분량이지만, 책이 전하는 여운은 묵직하고 감동적이다. 부산과 관련 있는 두 작가가 최근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발간했다. 절제된 문장이지만, 따뜻한 마음이 배어있고, 글의 감동은 그림으로 더해진다.
부산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한 최갑진 작가는 현재 함양에서 ‘쉬미수미’라는 문화 공간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이웃들과 함께 산골의 문화를 일구고 가꾸며 즐거움을 찾고 있다. 최 작가의 산골살이 경험은 산골동화집 <햇볕 머문 자리마다 꽃 피는>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사실 이 책은 시골을 배경으로 한 일반적인 창작 동화가 아니다. 노인만 남은 산골의 삶을 동화라는 형태로 전한다. 고단한 삶을 담담하게 전하는 다큐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배우자가 죽고 자식은 도시로 떠나 노인 6명만 사는 산골 동네에서 시작한다. 동네에서 유일한 남자인 대숲 할아버지는 성질이 무뚝뚝하고 붙임성이 없어 할머니들과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다. 대숲 할아버지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산골로 왔고, 아버지는 장남은 농사지어야 한다고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도시로 나간 동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님에게 자기 몫의 땅을 요구했다. 유산이 정리되자 동생들은 아버지의 제사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 마음이 여린 깻잎 할머니, 입이 거친 담벼락 할머니, 보행 보조기가 없으면 걷는 것이 힘든 영춘 할머니, 가장 나이가 많은 칠구 모친 등 산골로 온 사연도 제각각이다. 부모를 살뜰히 챙기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전화조차 하지 않는 자식도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심심한 산골에는 길냥이들과 개구리, 두루미가 자식보다 더 가까운 존재이다.
어느 날 이 동네에 응급차가 오고 대숲 할아버지가 실려 나간다. 할아버지 안부가 궁금했던 할머니들에게 온 소식은 “찾아올 사람도 없으니, 상가는 차리지 않고 조용히 정리하겠다”는 말이었다. 작가는 “허리 숙여 땅을 일구고 생명을 키웠지만 잊혀 가는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삶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유쾌한 할머니들의 대화와 동물의 이야기가 정겹지만,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선 먹먹한 슬픔이 올라온다. 최갑진 글·김설희 그림/작가마을/156페이지/ 1만 4000원.
‘오늘의 작가상’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고은주 작가. 고 작가는 최근 어른을 위한 동화 <느티나무 재판관>을 내놓았다.
<느티나무 재판관>은 책밖에 모르던 하동 시골 아이가 많은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은퇴한 헌법재판관이 되기까지 여정을 담은 창작 동화이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 듯하다.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재판,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주심을 맡았던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이다.
동화는 형배의 어린 시절 동네 친구인 나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2025년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친구 형배는 책을 빌려 통째로 외우고, 마을 어귀 느티나무에서 만나 함께 책을 읽었다. 가난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름표가 달린 교복을 얻어 입었지만 그마저 기뻐했다. 학비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망설일 때 김장하 선생의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갔고, 김 선생으로부터 정의와 인생의 가르침까지 얻는다.
책은 한 개인의 영웅적인 서사, 뛰어난 재능을 칭찬하는 내용이 아니다. 친구의 기억하는 정 많고 마음이 깊은 보통 사람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중목욕탕을 가본 적이 없어 속옷까지 벗어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아들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며 홈런볼과 공정한 판결의 공통점을 아이 눈높이로 설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겹다.
책 속 대화는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진주 MBC 아나운서로 일했던 작가는 경상도의 말맛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경상도의 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고은주 글·김우현 그림/문학세계사/128쪽/1만 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