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용 방안 못 찾고 기부 효능감 떨어지고… ‘쿨쿨 잠든’ 부산 고향사랑기부금 18억 원

지자체 10곳 활용 계획 없이 보관
모금은 활발, 제대로 쓰지는 못해
“제도 취지 부합 사업 발굴 어려워”
집행내역 공개 등 소통·홍보도 부족
‘지정 기부’ 활용, 기부 효능감 높여야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2025-06-29 16:21:04

지난해 9월 부산시청 직거래장터에서 부산시가 방문객에게 고향사랑기부제를 홍보하는 모습. 부산시 제공 지난해 9월 부산시청 직거래장터에서 부산시가 방문객에게 고향사랑기부제를 홍보하는 모습. 부산시 제공

개인이 고향 등 지역 발전을 위해 지자체에 직접 기부하는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 3년 차를 맞이했지만, 절반이 넘는 부산 지역 지자체들은 정작 조성된 기금의 활용 방안도 세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까지 모금된 약 32억 원 가운데 활용 계획 없이 잠들어 있는 금액만 약 18억 원에 달해, 제도 취지에 걸맞은 활용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부산시와 부산 지역 16개 구·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모금된 금액은 약 13억 3269만 원이다. 모금액은 부산시(10억 2000만 원)가 가장 많았고, 사상구(6130만 원)와 남구(5141만 원), 부산진구(3224만 원)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부산 지역 전체 모금액은 19억 5000만 원으로 2023년(12억 7000만 원)에 비해 1.5배 넘게 늘었지만 정작 지자체에서 활용처를 찾지 못하면서 현재까지 18억 원 가까이 적립된 기금이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시와 16개 구·군이 모금한 32억 1833만 원 중 17억 7565만 원은 올해도 활용 계획 없이 지자체별 별도 계좌에 예치된 상태다.

고향사랑기금의 활용 계획을 아직 못 세운 지자체는 △부산시(6억 1099만 원) △부산진구(2억 1635만 원) △영도구(2억 215만 원) △기장군(1억 7576만 원) △강서구(1억 5117만 원) △금정구(1억 677만 원) △북구(9211만 원) △수영구(7961만 원) △연제구(7244만 원) △서구(6825만 원) 등 10곳이다.

고향사랑기부제로 조성된 기금이 아직 사용처를 찾지 못한 주요 요인은 모금 이전에 사업 분야와 규모, 방식 등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기금을 사용할 수 있는 사용처로 ‘기존 사업과 중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 같은 지침을 이유로 지자체들은 기금 집행을 사실상 미루고 있다. 부산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모금이 특정 시기에 몰리는 등 모금액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사업 규모, 방식 등을 계획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기부 활용 계획을 토대로 이뤄지는 기부자들과 소통·홍보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고향사랑기부제 공식 웹사이트 ‘고향사랑e음’에는 부산시와 지자체별로 개설된 페이지가 있다. 기금을 재원으로 시행되는 사업과 답례품 등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대부분 2년 전 제도 시행 첫해 고향사랑기부제 운영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의 ‘기본 계획’을 소개한 게시물이 마지막이다. 기금 조성 이후 구체적인 활용 방안과 실제 사업 추진 실적 등은 물론 모금액과 같은 기초 사항조차 공개한 지자체가 없었다.

지자체의 사업 추진이 늦어질수록 고향사랑기부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 부호도 제기된다. 기부금 용처가 불분명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당장 기부자들의 기부 효능감이 떨어지고 지속적인 기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이러한 행보는 오래 전부터 민간 영역 비영리 단체에서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한 프로젝트성 지정 기부를 활발하게 펼치고, 기부금 활용 내역 등을 적극적으로 공개해 온 것과 대조된다.

서울에 살면서 지난해 고향인 부산에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기부한 박 모 씨는 “나의 후원이 실제로 고향을 발전시키는 데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알 수 없어 올해도 후원할 지는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금이 활용된 사업도 기존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일상적인 사업과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지자체가 실시했거나 올해 추진 계획인 사업은 △노후 경로당 보수(해운대구) △부산진성 황톳길 조성(동구) △취약 계층 연탄 보일러 교체(사하구)와 같은 생활 복지 분야가 대부분이었다.

전문가들은 특색 있는 사업 발굴과 기부자들의 효능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지정 기부 모금 활성화 등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지자체의 접근이 달라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결국 지자체가 지역 발전에 필요한 특색 있는 사업을 발굴해 기부자들의 기부 효능감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정 기부는 기부자가 지자체의 특정 사업을 선택해 기부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6월 도입됐다. 지난해 전국 25개 지자체에서 55개의 사업에 대해 모금을 진행했는데, 올해 1월까지 15개 사업의 모금이 완료됐다.

전남 곡성군의 경우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곡성에 소아청소년과를 선물해 주세요’ 프로젝트를 통해 3억 8000만 원을 모았다. 이를 통해 지난해 곡성군에서 소아과 출장 진료가 시작됐고, 올해부터는 1960년 이후 처음으로 전문의가 상주하는 소아과가 운영된다.

하지만 부산 지역 지자체에서 진행한 지정 기부 모금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부산시는 이르면 다음 달부터 지정 기부를 활용한 프로젝트성 모금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이수경 부울경권역총괄본부장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지속되려면 기부자들이 기부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기부금이 쓰일 사업이 사회 변화를 반영해야 하고 기금 활용 방안에 대해 지자체가 기부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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