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5-06-26 16:49:16
영화인들이 ‘더 이상 극장에서의 흥행은 어렵다’고 불평할 때, ‘탑건: 매버릭’(2022)은 ‘그건 당신들의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가 불가능한 임무를 해내기 위해 거칠게 전투기를 조종하는 장면을 거대한 스크린에서 보려고 국내에서만 8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아 티켓 값을 냈습니다. 과연 ‘매버릭’은 근래 나온 오락 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먼 미래에도 회자될 이 명작을 탄생시킨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이번에 또다시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오락 영화를 들고 왔습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레이싱 영화 ‘F1 더 무비’입니다. 이 영화를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보려 합니다.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는 한때 촉망 받던 레이서였습니다. 공격적인 성향의 레이싱으로 천재 소리를 들었던 그는 슈마허 같은 전설적인 인물들과 함께 경쟁하는 최고의 유망주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고의 무대인 포뮬러 원(F1) 우승 경험은 한 번도 없습니다. 경기 중 사고로 크게 다쳐 레이싱 판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도박에 빠져 오랜 세월 방황한 그는 고물 밴을 타고 다니는 떠돌이 신세입니다.
하지만 레이싱 실력만큼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간혹 레이싱 대회에 용병으로 나설 때마다 어김없이 실력을 뽐내 우승합니다. 당연히 스카우트 제안도 받지만,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쪽을 택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시절 경쟁자였던 오랜 친구 루벤(하비에르 바르뎀)이 소니에게 F1 무대 복귀를 제안합니다. 루벤은 자신이 운영하는 팀인 ‘APXGP’에 드라이버가 필요하다며 설득하고, 망설이던 소니는 꿈에 그리던 F1 우승컵을 위해 제안을 수락합니다.
한때 잘나갔고 여전히 실력은 확실한, 그리고 가슴 아픈 사연도 있는 베테랑이 옛 동료의 부탁으로 현장에 복귀하는 이야기.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도입부부터 캐릭터 설정까지 ‘매버릭’과 아주 흡사합니다.
영화는 마치 ‘매버릭’의 흥행 공식을 따르는 듯 비슷한 플롯으로 흘러갑니다. 보통의 레이싱 영화는 상대 팀 레이서와의 경쟁에 집중합니다. ‘포드 V 페라리’(2019), ‘러시: 더 라이벌’(2013)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F1 더 무비’는 ‘매버릭’처럼 나이 든 베테랑과 젊은 후배와의 미묘한 갈등 구도를 이용합니다. 60대인 소니의 눈에는 APXGP 신예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는 풋내기일 뿐이고, 조슈아의 눈에는 소니가 ‘영감’에 불과합니다.
서로를 탐탁지 않아 하던 둘은 결국 하나로 뭉쳐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여기에 엔지니어, 메카닉 등 팀원들의 팀워크도 점차 끈끈해져 한걸음 한걸음 성장합니다. 이처럼 ‘F1 더 무비’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와 흐름은 여느 스포츠 영화나 ‘매버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확실한 매력 포인트로 차별화를 둡니다. ‘매버릭’을 만든 감독답게 화려한 촬영과 편집을 기반으로 한 영상미가 그야말로 ‘킥’입니다.
영화는 사실 경주 장면을 담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미 완성도를 증명합니다. 너무나 실감 나는 촬영과 빠르게 이어지는 쇼트가 단시간에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1인칭 시점을 비롯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큰 화면으로 감상하니 실제 경주용 자동차를 운전하는 듯 매우 실감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주 장면을 적절한 타이밍에 배치한 덕에 러닝타임이 155분에 달하는데도 지루할 새가 없었습니다. 늘어지겠다 싶은 대목은 빠르게 넘어가는 편집도 깔끔하고, 주인공 감정이나 현장의 긴박감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연출이 몰입을 돕습니다.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소니의 전략과 여성 캐릭터의 활용입니다. 노련한 소니는 필요할 때는 F1 경기 규칙의 회색 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반칙성 플레이를 구사합니다. 지능적이지만 상대 입장에선 얄미운 전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소니의 악동적 면모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집니다. 기자처럼 레이싱 전술에 문외한인 관객도 극 중 해설자의 코멘트 덕에 기본적인 흐름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레이싱 영화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던 여성 캐릭터 비중이 높은 점이 인상적입니다. F1 최초의 여성 기술총괄인 케이트(케리 콘던)와 소니의 자연스러운 케미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도 주체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주인공인 소니 캐릭터의 매력도 중요했습니다. ‘매버릭’ 주인공처럼 소니는 실력은 확실한데, 자신의 주관이 너무나 뚜렷합니다. 상부 지시도 잘 듣지 않고, 이따금 ‘급발진’하는 서킷 위의 악동입니다. 이런 캐릭터는 배우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져야 매력적인데, 브래드 피트가 완전히 ‘찰떡’이었습니다. 피트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올해로 62세인 피트는 수개월간 훈련을 받고 직접 레이싱카를 몰았다고 합니다. F1의 전설 루이스 해밀턴이 공동제작자 겸 ‘리얼리티 코치’로 참여해 현실감을 극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F1 최고경영자(CEO) 스테파노 도메니칼리와 현역 선수 및 감독도 출연했습니다.
영화는 여러 위기가 닥치지만 결국 극복해내는 언더독의 스토리 안에 자기 자신과의 경쟁, 동료와의 화합, 인간 승리 등 키워드를 녹여내 감동과 짜릿함을 선사합니다. 전형적인 구조에 클리셰도 일부 있지만, 기시감이 들어 몰입을 해칠 정도는 아닙니다. 시나리오가 탄탄해 개연성이 얼추 들어맞고, 주인공의 서사에 몰입해 자연스레 응원하게끔 만듭니다. 위기와 갈등, 해소까지 일련의 과정이 매끄러우면서 흡입력이 있습니다.
결말부에선 주인공들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퀀스는 긴장감이 극대화돼 문자 그대로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습니다. 기자의 옆자리에 앉은 남성 관객은 얼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응원하다가 탄식과 한숨을 반복하는 등 완전히 빠져든 모습이었습니다.
한스 짐머가 작업한 영화 음악도 각 장면의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에드 시런, 도자 캣, 존 메이어, 블랙핑크 로제 등이 부른 삽입곡들도 잘 들어맞습니다.
영화는 여러모로 ‘매버릭’ 못지않은 오락성을 자랑하는 수작입니다. 자고로 자동차 경주를 주제로 한 영화는 특화관에서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지론입니다. 영화를 볼 의향이 있는 관객은 이왕이면 4DX와 같은 특화관에서 감상할 것을 추천합니다.
제 점수는요~: 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