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의 벽에 막힌 긴급 돌봄 시스템, ‘미리’ 바꿀 수는 없었나?

부산 참사로 드러난 ‘돌봄 공백’

부산시교육청 긴급보살핌센터
최근 3개월 야간 이용자 ‘0명’
방문형 돌봄 서비스 존재하지만
정부 지원 가정 ‘소득 판정’ 요구
긴급 이용 때도 ‘사전 신청’ 필요
기준 맞춰도 ‘매칭’ 안 되면 취소
돌봄 서비스 이용 비용도 ‘부담’
부산 돌봄 체계 점검·개선 시급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2025-07-06 19:20:00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지난 4일 어린 자매가 숨진 부산 기장군 아파트 화재 현장을 찾았다. 정대현 기자 jhyun@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지난 4일 어린 자매가 숨진 부산 기장군 아파트 화재 현장을 찾았다. 정대현 기자 jhyun@

아이들을 나라가 돌볼 순 없었을까. 지난달 24일과 지난 2일 각각 화재로 숨진 부산 부산진구, 기장군 자매의 밤을 지켜줄 국가의 시스템은 있었지만, 부모들은 아이를 맡기지 않았다. 부산에서 한 곳뿐인 24시간 돌봄 시설은 불 꺼진 건물 안에 있었고 말뿐인 ‘긴급’ 시스템 탓에 아이들은 홀로 남겨졌다.

■유일한 24시간 센터, 야간 이용자 0명

지난 4일 오후 10시께 〈부산일보〉 취재진이 찾은 부산진구 양정동 ‘부산시교육청 긴급보살핌늘봄센터’. 부산 유일의 24시간 돌봄센터다. 공간 전체는 54평인데 민원을 보는 공간을 빼면 아이를 돌보는 공간은 30평 남짓하다.

밤늦게 센터를 찾는 아이가 잠을 잘 때는 테이블을 빼고 청사 3층 보건실에 있는 이불을 가져온다. 이불은 최대 3개다. 만 3세~초등학교 3학년 아동 최대 15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지만, 4명 이상의 아이가 함께 잠을 자기는 어렵다.

신청 방법도 쉽지 않다. 센터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온라인 예약의 경우 하루 전까지 부산광역시교육청 통합예약포털이나 늘봄학교서비스를 통해 신청해야 한다. 유선 예약의 경우 당일 4시간 전까지 해당 기관으로 전화 신청이 가능하다. 미리 신청하지 않고 방문하면 센터 이용이 불가능하다.

학부모 김 모(35) 씨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부산에 24시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제도를 알고 야간에 급한 일이 생겨 이용을 고민했지만, 주변에 이용해 봤다는 사람도 없고 시스템 자체도 낯설어 선뜻 아이를 맡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곳 센터의 최근 3개월간 오후 11시 이후 이용자 수는 0명이다. 홍보가 부족해 이용객도 없는 실정이다.

■매칭 실패, 비용도 장벽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는 언제든 가정으로 찾아가 아이를 돌봐주는 긴급 돌봄을 표방하고 있지만 제도는 저소득층에게 더 번거롭게 운영된다. 서비스 이용을 위해선 미리 소득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 양육 공백이 발생하는 가정 중 기준 중위소득 200% 이하인 가구는 행정복지센터를 방문이나 온라인을 통해 정부 지원을 위한 소득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 기준 중위소득 200%를 초과하는 정부 미지원 가정은 오히려 바로 서비스 이용 신청이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엔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어 이용료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

부산연구원 최청락 박사는 “긴급 돌봄을 신청하시는 분들도 사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소득 범위를 확인하고 이용을 해야 하다 보니 갑자기 돌봄이 필요할 때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사후 정산 시스템을 도입하면 급한 상황에 놓인 부모들의 불편함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 등급 판정을 미리 받고도, 급하게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 또다시 ‘미리’ 신청해야 하는 구조도 부모들에겐 벽이다. 아이돌봄서비스는 모바일이나 홈페이지로 신청할 수 있는데 일반 단기 서비스는 4시간 전, 긴급 돌봄 서비스는 2시간 전까지 신청해야 한다.

미리 신청을 마쳤다고 해도 신청이 실제 아이돌보미 매칭으로 이어질지는 장담할 순 없다. 긴급 돌봄 서비스는 신청 후 30분 이내에 수락한 돌보미가 없으면 신청이 취소된다. 지난해 시범 사업 기간에는 전국 기준 긴급 돌봄을 신청한 10명 중 6~7명, 단시간 돌봄을 신청한 10명 중 4명이 매칭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연구원 이예진 박사는 “신청자는 높은 돌봄 수준을, 돌보미는 같은 비용이면 최대한 돌봄이 용이한 아이를 원하다 보니 신청자와 돌보미가 모두 서로 원하는 조건을 맞추기 까다로워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비용도 만만찮다. 서비스 비용은 시간당 1만 2180원이다. 물론 소득 판정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원한다. 중위소득 75% 이하의 가정은 정부가 돌보미 비용 75~85%를, 중위소득 200% 이하의 가정은 10~15%를 지원하는 식이다. 최근에 화재로 두 아이가 숨진 기장군의 가정은 자영업을 하며 아이를 돌봤는데 자영업자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추산하면 두 자매를 맡기는 데 1시간에 1만 3702원이 든다. ‘그냥 아이를 데리고 일을 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부산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아이돌보미 서비스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야간에 일을 하려는 돌보미 숫자를 늘려야 할 것 같다. 두 번이나 유사한 참사가 발생한 만큼 부산의 돌봄 체계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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