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6-11-02 10:16:39
'깨진산수'(2026) 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유영 작가. 전통 한지에 그린 산수화를 찢은 뒤 삼각형 단위로 재조합·연결하는 방식이다. 인위적으로 절단된 선들이 삼각형 구성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증식·회복하는 생태적 생명력을 시각화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염분이 적은 물을 뜻하는 기수역 염생식물처럼 '생태적 회복력'은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질서를 표현한다. 작품명은 '푸른 초서'(2026). 김은영 기자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염분이 적은 물을 뜻하는 기수역 염생식물처럼 '생태적 회복력'은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질서를 표현한다. 작품명은 '피어나'(2026). 김은영 기자
세 자녀를 키우는 엄마이자 작가인 유영(39)이 부산 사하구 부산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시간의 형상-살아있는 장소의 초상’을 열고 있다. 중앙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사진을 부전공한 작가가 다대포, 을숙도, 에코델타시티 등 부산 서부산의 해안과 하구에서 포착한 자연과 인간의 흔적을 사진·회화·영상으로 선보인다.
전시는 지난달 27일 시작해 오는 8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바다와 육지, 자연과 인공이 만나는 경계의 장소에서 생명이 어떻게 살아남고 다시 뿌리내리는지를 ‘임계공존’과 ‘생태적 회복력’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한다.
서울 출신인 유영은 결혼 후 거제를 거쳐 2020년 부산 명지에 정착했다. 그는 “부산에 와서 작업 세계가 구체화되고 세계관이 깊어졌다”고 말한다. 특히 초등학생 두 아이와 7세 막내를 키우며 바다 근처에서 생활한 경험은 작업에 생태적 문제의식을 심었다. 일본 오염수 방류 소식 등을 접하며 느낀 불안은 바닷물을 채집해 얼리고 그 결을 기록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기후 위기와 생명 보존, 회복력에 관한 질문을 확장하는 작업인 '시드볼트' 연작 중 '첫숨'(2026). 부산갤러리 제공
기후 위기와 생명 보존, 회복력에 관한 질문을 확장하는 작업인 '시드볼트' 연작(2026). 부산갤러리 제공
유영의 작업은 현장 사생에서 출발한다. 개발로 사라질 수 있는 풍경과 식물을 동양화 재료로 한지에 그린 뒤, 물과 함께 얼려 형상을 남긴다. 이후 그것을 차곡차곡 모으며 사라져가는 장소를 기록하는 ‘Seed Vault(시드볼트)’ 연작을 구축해 왔다.
“자연을 얼려 보존한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개입이기도 합니다. 보존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나중에 저장한 씨앗이 발화할 환경이 아니면 어떡할까 하는 질문과 함께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콘크리트 생태통로를 통해 인공과 자연이 만나는 경계를 시각화한 '임계공존' 작업 '사이의 정원'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유영 작가. 김은영 기자
콘크리트 생태통로를 통해 인공과 자연이 만나는 경계를 시각화한 사진 작품 '사이의 정원_2'(2026). 부산갤러리 제공
작가는 한 장소 안에서 누구의 시간은 소멸하고 누구의 시간은 막 태어나는 상태를 ‘임계공존’이라 부른다. 생태 도시를 꿈꾸며 개간이 진행되는 에코델타시티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아픔과 기대가 공존한다.
이번 전시의 중심은 한국화의 선과 여백을 활용해 다대포와 을숙도의 염생식물, 해조류, 갯벌 풍경을 사진으로 담은 작업 약 16점이다. 작가는 바닷물이 빠진 뒤 남은 풀들의 흔적을 “자연이 남긴 편지이자 언어”로 본다. 한지 질감의 인화지를 사용해 사진 속 여백에 동양화 특유의 숨 쉬는 공간을 더했다.
유영 작가의 ‘되돌아온 시간의 형상’(2026). 다대포의 파도와 해조류가 남긴 흔적을 8폭 병풍 사진으로 담아냈다. 펼쳐진 해조류는 웅장한 바다 산맥을, 희게 피어난 거품은 눈 쌓인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김은영 기자
유영 작가의 ‘되돌아온 시간의 형상’(2026). 다대포의 파도와 해조류가 남긴 흔적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펼쳐진 해조류는 웅장한 바다 산맥을, 희게 피어난 거품은 눈 쌓인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갤러리 제공
그는 “과거의 풍경화가 대상을 재현했다면, 지금의 풍경은 재현 이상의 의미가 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을숙도의 고니와 철새, 매립으로 바뀐 땅을 그리면서도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에 머물지 않고 개발과 생태의 긴장을 질문한다.
유영은 아이들을 돌보며 집 안 한 방을 작업실로 쓰며 작업을 이어왔다. 1년에 한 점을 완성하기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난해 ‘부산, 커넥티드’에서 김용원 작가와 2인 콜렉티브 그룹 ‘루미네아’로 우승하며 큰 전환점을 맞았다. ‘루미네아’ 콜렉티브도 계속 유지하며,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오는 12월에는 가덕도 어업 소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와 금고미술관 특별전도 앞두고 있다.
첫 개인전을 마주한 그는 “작업으로 행복을 찾는 데 오래 걸렸다”고 말한다. 사라지고 변하는 장소 위에서도 살아 있는 생명을 기록하려는 유영의 시선은, 부산의 바다와 도시가 만나는 경계에서 새로운 산수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오후 7시. 문의 051-715-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