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이만기의 인생은 씨름이다] ③ 천하장사 될 운명

어머니는 날 두 번 죽이려 했다

2011-09-30 09:35:00

이만기 교수의 선친 이규상(2006년 작고) 씨와 어머니 전봉희(88) 여사.

스무살 나이에 천하장사가 되고보니 질시의 눈초리도 많았다. 실력보다는 운이 좋아서 되었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하기야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씨름 선수가 된 것이 기적같은 일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 곡소마을이다. 마을 뒷산은 의령의 진산 자굴산(897m)이다. 마을 앞쪽으로는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학교를 파하면 책보따리를 대청마루에 휙 던져놓고 친구들과 소먹이러 가는 게 일이었다.

소꼴을 베다가 배가 고프면 입술이 보랏빛으로 새파래지도록 진달래꽃을 따먹었다. 5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먹는 것조차 부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린시절에도 건장하고 신체가 컸을 것으로 여기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의령 모의초등학교 때는 얼굴이 새카맣고 몸피가 작아 키로 매기는 번호가 늘 앞에서 10번 이내였다. 빼빼 말랐지만 뼈대만은 굵었다. 살아계셨으면 올해 아흔둘이실 선친 '규자 상자' 어른은 어려운 살림에도 줄줄이 딸린 자식들을 그리 배 많이 안 곯리고 잘 건사한 부지런한 분이셨다. 또래 어른들 가운데 덩치도 크고 근력도 좋았다.


늦둥이 부끄러워 독초 먹어

나무서 추락 맞아 죽을 뻔

어릴 때 말랐으나 뼈대 굵어


어머니 전봉희(88) 여사는 가끔 막내인 나를 그윽하게 보시며 까닭모를 미소를 짓곤 한다. 나중에 그 의미가 뭔지 알고는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나를 두 번이나 죽이려 하셨다.

실제 어머니는 강한 분이다. 의령 모의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이웃집 다람쥐를 잡으러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높은 데서 떨어졌다. 잠시 기절을 했던 모양이다. "만기가 죽었소." 동네사람들이 어머니를 불렀다. 삼베를 짜던 어머니가 뛰어왔는데 몽둥이를 들고 계셨다. 병신이 될 양이면 때려 죽인다고 했다. 겁이 나 벌떡 일어나 뒷산으로 도망쳤다.

알고보니 그 때 못 일어나면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고 보고 일부러 그랬던 것이다. 도망을 가는데 얼굴에 피가 주르르 흘렀다. 이마가 많이 찢어졌다. 머리와 이마의 경계라 흉터가 있는 줄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낳은 큰 형님 만오(71)는 혼인을 시켜 면소재지에 살게 했다. 큰 며느리가 첫 아이를 가졌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 것도 잠시. 한 달 뒤 서른아홉의 어머니가 덜컥 일곱째를 임신한 것이다.

어디다 말도 할 수 없고, 요즘처럼 산부인과가 있어 수술을 받을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였다. 손주와 아들을 같이 키우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볼썽사나운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말도 않고 자굴산으로 올라가서 언덕을 구르기도 여러 번 했다. 한 번은 어머니의 옷이 험해 아버지가 어디서 그렇게 미끄러졌냐며 화를 내시기도 했단다.

구르고 뛰는 것이 효험이 없자 어머니는 독하다는 약초를 드시기 시작했다. 백 가지가 넘는 처방을 했는데도 뱃속의 아이는 건재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나다. 형제들이 모이면 내가 씨름을 잘 하게 된 것은 어머니가 그 때 한 운동과 드신 이름모를 보약 때문이라는 우스개가 늘 나온다.

장조카 보다 딱 한 달 늦은 1963년 7월 29일 매미소리가 우렁찬 한여름에 태어났다.

이런 사연 때문인지 큰 형님은 자기 아들보다 늦은 막내 동생을 끔찍하게 아꼈다. 한번은 형님이 아버지에게 아들을 마산 둘째 집에 유학을 시킬 요량인데 막내 동생인 나도 함께 보내자고 했다.

아버지는 "만기는 냅둬라. 내 밑에서 농사시킬끼다. 다 나가버리면 적적해서 우째 사노"라며 반대 하셨다. 아버지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면 지금쯤 영농후계자가 되어 고향마을을 지켰을 것이니 운명이란 참 묘하다.

4학년 겨울 방학 때 마산으로 갔다. 달랑 옷보따리 하나 들고 마산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친구같은 장조카와 20리 길을 걸어 면소재지로 갔다. 뒤돌아 자굴산을 보니 코가 시큰했다. 칼바람이 불었지만 바람 속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몰려왔다. 정리=이재희 기자 j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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