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계 봉준호' 정유미 감독, 한국 영화 자존심 살렸다… 칸영화제 초대장

'안경'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 공식 초청
깨진 안경 맞추는 과정 내면과 화해하는 서사
2009년 감독주간 이어 칸영화제 두 번째 진출
장편 극영화 초청 0건, 영화계 위기론 속 낭보
"상업영화에 묻힌 고군분투에 박수와 지원을"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2025-04-17 18:30:00

내달 개막하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정유미 감독의 애니 '안경' 스틸컷. 매치컷 제공 내달 개막하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정유미 감독의 애니 '안경' 스틸컷. 매치컷 제공

한국 애니메이션계 젊은 거장 정유미 감독의 신작 ‘안경’(Glasses)이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 공식 초대장을 받았다. 앞서 한국 영화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올해 경쟁, 비경쟁, 미드나잇 스크리닝 등 모든 부문의 초청장 리스트에 단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전해진 정유미 감독의 비평가주간 초청은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킨 낭보로 평가받는다.

정유미 감독의 ‘안경’이 초청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은 프랑스 비평가협회가 주관하는 부문으로, 협회 소속 평론가들이 참신하고 작품성 있는 영화를 엄선해 초청 상영한다. 새로운 영화 언어를 보여주는 감독의 작품을 중심으로 1962년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전 세계에서 10편 안팎의 작품이 초대장을 받아 칸영화제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문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미 감독의 ‘안경’은 젊은 여성이 깨진 안경을 다시 맞추는 과정에서 내면의 그림자와 마주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받아들이는 심리 성장 서사를 담은 1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내달 개막하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정유미 감독의 애니 '안경' 스틸컷. 매치컷 제공 내달 개막하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정유미 감독의 애니 '안경' 스틸컷. 매치컷 제공

정유미 감독의 칸영화제 진출은 이번이 두 번째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전공한 정 감독은 앞서 2009년 ‘먼지 아이’로 제62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최초로 초청됐다.

정 감독은 칸영화제 외에도 ‘수학시험’(2010)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초청된 후 ‘연애놀이’(2013) ‘존재의 집’(2022) ‘서클’(2024)로 베를린에 모두 4차례 진출한 독보적 커리어를 이어왔다. ‘연애놀이’로는 2014년 제24회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2023년엔 ‘파도’로 로카르노영화제에 초청되며 또 하나의 ‘최초’ 타이틀을 더하기도 했다.

내달 개막하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정유미 감독의 애니 '안경' 스틸컷. 매치컷 제공 내달 개막하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정유미 감독의 애니 '안경' 스틸컷. 매치컷 제공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애니계 봉준호'로 불리기도 하는 정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먼지 아이’를 그림책으로 출간, 2014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라가치상 대상(뉴호라이즌 부문)을 수상하며 그림책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림책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가치상은 뉴호라이즌을 비롯해 픽션, 논픽션, 오페라 프리마 4개 부문에서 수상작을 선정한다. 이듬해에는 ‘나의 작은 인형상자’로 픽션 부문 라가치상을 받아 2년 연속 수상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제78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은 5월 14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되며, 상영작 중 두 편을 선정해 최우수 단편영화상과 카날상을 수여한다. 심사는 스페인 영화 감독 로드리고 소로고옌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위원단이 맡는다.

'애니계의 봉준호'로 불리는 정유미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인 남편 김기현 감독과 함께 부산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치컷 제공 '애니계의 봉준호'로 불리는 정유미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인 남편 김기현 감독과 함께 부산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치컷 제공

부산이 고향인 정 감독은 KAFA 동기인 김기현(제작사 매치컷 프로듀서) 감독과 결혼해 2018년부터 부산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제 개막에 맞춰 내달 14일 칸으로 향할 예정인 정 감독은 “칸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게 영광스럽다”면서 “(이를 계기로)관객을 만날 기회가 늘어나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이어 “칸 이후 한국에서도 상영을 많이 하고 싶다”며 “관심을 갖고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공식 포스터. 매치컷 제공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공식 포스터. 매치컷 제공

한국 영화 위기론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해진 낭보에 대해 영화계에서는 단순히 축하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필남 영화평론가는 “굉장히 반갑고 축하할 일”이라면서도 “상업영화의 그늘에서 고군분투했을 감독의 작업 과정을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이어 “외로운 작업일 수밖에 없는 독립영화나 애니메이션계를 향한 관계 기관의 제도적 지원과 관객 발길이 뒤따르는 게 제대로 축하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영화계에서는 초청작 발표를 앞둔 학생부문(라 시네프)에 우리나라 작품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이 부문은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단편영화를 대상으로 초청작을 선정하고 상영작 중 3편을 뽑아 상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윤대원 감독의 ‘매미’(2021), 황혜인 감독의 ‘홀’(2023), 임유리 감독의 ‘메아리’(2024)가 이 부문에 초청받아 윤대원·황혜인 감독이 2등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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