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기자 sjy@busan.com | 2025-04-16 18:12:41
바람이 세차게 분다. 맞서면 부러지고, 굽히면 본연의 모습이 사라진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하늘 끝까지 곧게 뻗은 대나무는 말한다. 속을 비워 살아냈다고. 편백나무는 말한다. 잔 가지를 스스로 잘라 살아냈다고. 두 나무는 고난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견뎌내 숲을 이루고, 그 안을 찾은 생명들의 숨결까지도 정화한다. 대나무 숲에 서면 마음이 맑아지고, 편백나무 아래 서면 숨이 깊어진다. 쉼이 필요한 때 나무에 기대본다.
■태화강 국가정원
울산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태화강 국가정원은 한때 공업도시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울산의 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곳이다. 2020년 순천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서 대한민국 생태복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태화지구와 삼호지구로 나뉜다. 태화지구에는 자연주의 정원, 초화원, 무궁화정원, 작약원 등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4월 중순에 찾으니 꽃이 많지 않았다. 사방에 핀 꽃 천지를 기대하고 갔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겠다. 꽃구경은 축제가 열리는 5월 즈음에나 가능할 것 같다.
태화강 국가정원 전체의 백미는 단연 ‘십리대숲’이다. 이름처럼 십 리, 즉 약 4km에 걸쳐 펼쳐진 대나무 숲은 무려 10만 9886㎡의 면적을 자랑한다. 울창한 숲을 이루는 약 50만 본의 대나무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 오랜 세월 자생해 온 대나무 군락으로 만들어졌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 정원’이라 할 만하다.
십리대숲 안에는 간단히 쉴 수 있는 죽림욕장과 대나무 낙서 게시판 등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저녁에는 야간 조명을 설치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대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선 눈이 맑아진다. 하늘로 쭉 뻗은 대나무의 자태가 시원시원하다. 단 두 달 만에 일생의 키를 다 자라는 대나무의 맹렬한 성장 속도가 주는 쾌감이랄까?
숲 중간에 설치된 나무 벤치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면, 대나무 숲은 신비로운 숨소리를 들려준다. 댓잎이 바람에 부딪혀 내는 소리는 파도 소리 같이 청량하다. 음이온이 많이 나와 건강에 좋다는 안내판 문구가 사족처럼 느껴진다.
대나무 숲에서 나와 숲 전체를 조망하기 좋은 장소는 만회정이다.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 뒤편, 오산 기슭에 자리한 이 정자는 조선 중기의 문인 만회 박취문(1617~1690)이 말년에 지은 휴식처였다. 그가 벗들과 교류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다듬던 공간이었던 이 정자는 1800년대 소실되었지만, 2011년 복원됐다.
전통적인 통칸마루형(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 약 24㎡의 작은 정자이다. 그 위에서 바라본 태화강과 대나무 숲의 풍경이 일품이다. 반짝이는 윤슬과 바람에 대나무 숲이 일렁이는 풍경을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물멍’하기 안성맞춤이다.
정자 옆으로 난 ‘은하수 다리’를 건너면 삼호지구로 이어진다. 낮에는 태화강과 대숲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밤에는 다리 전체를 감싸는 색색의 조명이 마치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다리 일부에는 투명 유리 데크가 설치돼 있어, 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바로 내려다보는 짜릿한 경험도 가능하다. 낮과 밤, 각각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은하수 다리를 건너 삼호지구로 넘어가면 쭉 뻗은 태화강변이 나온다. 태화지구와 비교하면 인적이 드물어 조용하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가 나온다. 강변 보행 도로는 조금 지루하다. 시원한 강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로 이동하기 좋은 곳이다.
보행자는 강변 길이 아닌 숲속정원 방향으로 걷는 길이 더 나을 수 있다. 숲속정원과 맨발걷기 구간 등 군데군데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다. 조용한 강변에 비해 주변 차량 소음이 들리는 것은 단점이다.
삼호지구의 끝자락에는 40~50년생의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자리잡은 은행나무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바로 옆 대나무 숲과 대조되는 풍경이 멋스럽다. 가을에 노란 은행잎의 물결이 기대된다.
■창원 편백 치유의 숲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장복산 아래에는 58ha 규모의 ‘편백 치유의 숲’이 조성되어 있다. 40~50년생의 편백나무가 숲을 이룬 곳에 치유센터를 설치해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치유의 숲에는 아이들도 수월하게 30분가량 걸을 수 있도록 데크로 이어진 어울림길(1.3km)부터 장복산 능선을 따라 3시간가량 등산을 즐기면서 창원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두드림길(5.4km)까지 총 6개의 코스가 있다.
길을 걷다보면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트 향기에 저절로 머리가 맑아진다. 햇볕이 좋은 곳에 자리잡은 편백나무는 나무 아래 부분부터 줄기와 잎이 무성하지만, 그늘 진 곳의 편백나무는 영양 공급을 위해 아래 줄기를 스스로 가지치기 한다. 가지 친 부분에 병충해 등을 막기 위해 내뿜는 것이 피톤치트이다.
곧게 뻗기 위해 잔가지를 버리는 단호함, 그리고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성장하는 지혜. 상쾌한 피톤치트에는 명쾌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자신을 지키며 사는 것이 산뜻하다는 것을.
치유센터에서 명상장으로 가는 길에는 편백나무 아래 녹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봄여름에는 연초록의 새 잎이, 가을에는 하얀 녹차꽃으로 물드는 곳이다. 새로 난 녹차 잎을 따서 먹어보면 쌉싸름한 맛이 별미다.
걷는 것만으로 심심하다면 치유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산림치유사와 함께 숲속 걷기와 명상, 족욕, 마사지, 공예 수업 등을 할 수 있다. 편백나무 사이 뻥 뚫린 하늘 아래 명상을 하는 시간과 치유센터에서 직접 추출한 편백나무 오일을 이용한 마사지와 족욕 등이 인기가 많단다. 초등생 자녀와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맘숲’, 64세 이하 성인의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쉴숲’ , 65세 이상을 위한 ‘활력숲’,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놀숲’ 등 참여자에 따라 4개 프로그램으로 나뉘며, 약 2시간가량 진행된다.
참가비는 5000원~1만 원으로, 사전에 창원시 홈페이지 통합예약서비스나 전화(055-225-4241)로 예약하면 된다.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