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한국 산에 빠진 뉴질랜드인 앤드류 더우치 씨

"백두대간 종주하다 한국인 진한 情에 푹 빠졌죠"

2018-11-01 19:01:41

앤드류 더우치 씨가 우리나라 고지도를 배경으로 '한국 100대 명산'을 소개하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설명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고 했던가. 그는 첫눈에도 어질고 사람 좋아 보였다. 부창부수. 그의 한국인 아내 역시 참하고 단정해 보였다. 경남 양산시 물금읍 E아파트 그의 집에서 그와 그의 아내를 함께 만났다. 대학에서 영어학을 전공한 그녀가 통역을 맡아 줬다. "부산서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그가 손수 타 준 냉커피 맛이 그럴싸했다.

한국의 산이 좋아 정착 15년째
2007년 친구와 백두대간 종주 성공
직접 쓴 '영문안내서' 2쇄까지 찍어 

앤드류와 로저의 공저 책 표지.

낙동정맥 트레킹 20주 만에 완주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모두 정복
한국 산 소개 홈피 운영·책 준비

■백두대간 종주 후 안내서 펴내


뉴질랜드인 앤드류 더우치(Andrew Douch) 씨는 국내 산악인들 사이에 제법 유명한 사람이다. 산을 잘 타기로 소문났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산을 가슴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에서 20, 30대 청춘을 다 보낸 것은 오로지 한국의 산하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조국 뉴질랜드에는 한국보다 훨씬 광활하고 야생이 살아 있는 산들이 많을 텐데 왜 하필 한국의 산에 '필'이 꽂힌 걸까?

"뉴질랜드 산에는 산 그 자체밖에 없어요. 그런데 한국의 산은 달라요. 산뿐만 아니라 산에 사는 사람이 있고 다양한 문화가 있고 이야기가 있어요."

그는 한국의 산은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뉴질랜드 산에는 사시사철 푸름만 있는 것도 큰 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단순히 산을 '잘 타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 산악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의 직업은 영어 강사. 그는 아마추어 산악인이지만, 산을 정말 좋아할 뿐만 아니라 산에 대한 인문학적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2010년 친구 로저 셰퍼드와 함께 국내에서 이란 영문 안내서를 펴냈다. 1쇄 5000부가 다 팔리고 2쇄를 찍었을 정도로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앤드류와 로저가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남쪽 백두대간(740㎞)을 꼬박 70일간 종주한 뒤 한국의 삼림문화를 소개한 가이드북이다. '산악문화를 통한 한국의 아이덴티티 탐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수많은 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을 토대로 자료조사를 거쳐 스토리를 입힌 새로운 차원의 백두대간 안내서다.

■낙동정맥도 완주

2000년 한국에 처음 온 앤드류는 1년 뒤 뉴질랜드로 돌아갔다가 2003년 다시 한국에 왔다. 원래 트레킹을 좋아한 그가 소백산을 등산할 때였다. 커다란 배낭을 멘 등산객들로부터 "백두대간 간다"라는 말을 듣고 처음 백두대간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 뒤 등산 친구 로저와 의기투합해 2007년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그는 충북 황학산 괘방령 산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날은 바지도 찢어지고 몹시 힘든 등산을 한 날이었다. 날은 어둡고 잘 곳도 마땅찮았다. 그런데 마침 괘방령 산장이 신축 중이어서 인부들에게 음식과 막걸리를 푸짐하게 얻어먹고 숙소까지 제공받았다.

"그때 한국인들의 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뒤로 1년에 한 번은 꼭 그곳에 가서 자고 오곤 합니다."

백두대간 등정을 통해 한국 산의 매력에 푹 빠진 앤드류는 2009년 혼자서 낙동정맥 트레킹에 나섰다. 주말만 되면 산을 찾아 부산 몰운대~태백시의 구봉산까지 450여㎞를 20주 만에 완주했다.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면서 하루 최고 37㎞까지 걷는 강행군을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낙동정맥이 백두대간보다 더 흥미로웠어요. 부산~울산은 시티 하이킹 구간이라 도시 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주왕산~태백산 구간은 원시적인 조용함 속에 혼자 걷기에 정말 좋았어요."

낙동정맥을 완주한 앤드류는 내친김에 산림청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에 도전했다. 그는 2015년까지 불과 4년 만에 청량산, 월악산, 속리산, 울릉도 성인봉 등 100대 명산을 '정복'했다.
2018년 옥스팜 트레일워커(구례) 완주 기념 사진물.
■100대 명산 집필 중

그는 'Korean Trails'라는 제목으로 영문 홈페이지(www.koreantrails.com)를 운영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는 각 시·도별 100대 명산을 자신이 찍은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산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라 산과 관련된 사람, 종교, 문화 등 스토리를 곁들여 흥미진진하다.

특히 그의 글에는 산인(山人)들에 대한 관심이 특별하다. 경북 청량산 관련 글을 보면 '산꾼의 집'을 소개하고 있다. 이곳은 산꾼이자 달마도 명장 1호인 이대식 씨가 운영하는 가정집이자 갤러리로 이 씨가 직접 만들거나 빚은 기념품과 도자기, 달마도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앤드류는 진행 중인 '미션'이 하나 있다고 살짝 밝혔다. '한국의 100대 명산'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 그는 요새 틈만 나면 사진을 토대로 기억을 더듬고 자료조사를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현재 40% 정도 작업을 진행 중인데 내년 중반까진 탈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한국에 온 지도 벌써 15년째다. 지난해에는 5년 동안 사귀던 사람과 결혼하고 신혼집도 꾸몄다. 그래서 요즘엔 산행하는 재미가 더 늘어났다. 아내도 종종 그의 산행에 동행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앤드류가 한국에 온 이유는 비교적 단순했다. 동아시아 쪽으로 여행하고 싶었는데, 중국은 너무 크고 시끄러운 곳이고, 일본은 너무 많이 알려져 있었고, 한국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비교적 덜 알려져 오고 싶은 곳이었다고.

이처럼 한국에 온 목적은 단순했으나,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등 한국의 산을 만나면서 앤드류 삶의 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그는 어떤 산으로 걸음을 옮기게 될까? 그의 홈페이지 문패에 쓰여 있는 문장이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산 너머 산이 있다.(Over the Mountain, is a Mountain)'

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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